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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2011년 5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서울대 된장' 빚는 디비이식품 姜 炳 錫대표



 “아직까지 수익을 낸 적이 없습니다.”

 디비이식품 姜炳錫(식품공학70 - 74)대표가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적잖이 당황스럽기만 한데 정작 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모든 재료는 질 좋은 국내산이어야 하며 방부제 등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단기적인 매출을 위해 값싼 재료로 따로 제작해야 하는 세일행사용 상품은 만들지 않는다.' 姜동문이 고수하는 경영 원칙들이다. 일명 `서울대 된장'으로 불리는 상품을 만드는데 `돈 때문에' 모교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은 할 수 없지 않느냐며 姜동문은 오히려 반문했다.

 

 姜동문이 만드는 `맑은손맛 된장'은 원래 모교 농과대학 식품공학과에서 연구·개발한 `서울대 된장'을 모태로 한 제품이다. 모교 농과대학 식품공학과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된장 제조공장을 만들어 매년 일정량을 실험생산하고, 교직원들에게 소량씩 분양해 왔다.

 그런데 2003년 수원에 있던 농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옮기게 되면서 식품공장 이전을 놓고 식품공학과 내에 논란이 벌어졌다. 관악캠퍼스가 좁아서 식품공장을 새로 짓는데 어려움이 있을 뿐더러 공장을 맡아 책임 있게 운영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격론 끝에 공장을 관악캠퍼스로 옮기고, 姜동문이 식품공장의 이전과 운영의 실무를 담당하는 부공장장을 맡게 됐다. “우리 학교에서 만들던 된장인데 캠퍼스 이전 문제 때문에 만들기가 어렵다는 얘기는 없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이걸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죠.”

 하지만 막상 학교에 와서 보니 학생들이 실습하는 수준으로는 좋은 상품을 만들 수가 없었다. “모교에서 만든 자랑스러운 식품이니까, 몸에 좋은 거니까 우리 서울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많이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학교 내에서 만드는 수준으로는 상품화하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그는 2004년 생산과 판매를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디비이식품이라는 회사를 창립했고, `맑은손맛 된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제조·판매하기 시작했다. 3년 전에는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생산이 가능하도록 파주에 공장을 새로 짓고 모든 시설을 옮겨왔다. 그가 새로운 공장 부지로 파주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식품공장은 주변 환경이 좋아야 하는데 파주의 임진강변은 서울에 인접해있으면서도 물과 공기가 맑고, `장단콩'으로도 유명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모교에서 생산하던 된장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버텨오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된장보다 염도가 낮아 엄마들이 아기 이유식에 사용할 만큼 상품에 대한 평은 좋았지만 판매량은 생각보다 쉽게 늘지 않았다. 유명 백화점이나 유통업체에서 접할 수가 없기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널리 홍보가 되지 않았다.

 백화점 판매를 안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백화점에서 수없이 실시하는 판촉행사를 위해 별도의 상품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건 `합법적인 사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1년 6개월 간의 입점 기간동안 그는 단 한번도 할인행사를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과감히 백화점 판매를 포기했다. 지금은 회사 홈페이지(www.dbekorea.com)와 모교 생활협동조합의 매점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가격이 일반 된장제품에 비해 두 배 정도 비싼 것도 문제였다. 그러나 재료를 알고 나면 절대로 비싼 게 아니라고 姜동문은 항변했다. “지금 국내산 콩은 1㎏당 1만원 정도 합니다. 중국산은 4천원, 미국산은 1천5백원 정도 하죠. 우리 된장은 100% 국내산 콩을 사용해 만들고, 몸에 좋지 않은 어떠한 첨가물도 넣지 않아요. 소금도 자염을 씁니다. 짠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미네랄을 구하기 위해 소금을 먹는다고 보면 더 좋은 소금을 먹어야죠. 자염이 천일염보다 7∼10배 정도 비싸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죠.”

 여기에 공장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수익이 없다”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됐다. 제품보관실은 항상 6℃를 유지하기 위해 온도조절장치를 풀가동해야 한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길었잖아요. 기름값도 비싼데 한 달 난방비만 1백만원이 넘게 들었죠.”

 

 서울시립대 원예과 1학년 때 선배들 따라 학생운동에 참가했다가 학교를 쉬게 된 姜동문은 재수를 하고 모교 식품공학과에 진학했다. 朴正熙대통령 시절 내려진 휴교령으로 어차피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을 뿐더러 농촌이 발전하려면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넘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식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모교 재학시절에는 친구들과 `행복한 농촌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느라 소위 말하는 이념동아리에 가입해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姜동문은 회고했다. 그는 모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그때의 좋은 추억으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그의 꿈은 전통문화를 잘 가꾸면서도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농촌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농촌을 버리지 않게 하면서도 된장이라는 식품을 테마로 관광산업을 활성화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그는 수익이 생긴다면 꼭 모교에 환원해 식품공학과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는 끝까지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실 지난해에 싼 재료에 대한 유혹을 못 이기고 미국산 콩을 배정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 콩을 사지 않고 버티고 있죠. 포기하면 쉬울지 모르지만 그럼 이걸 만드는 의미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떼돈을 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못해요. 서울대 명성에 먹칠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에게는 잔인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당분간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그가 좀 더 버텨주기를, 끝끝내 미국산 콩을 사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가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진짜 먹거리를 계속해서 제공해주기를 희망해 본다.〈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