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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2011년 5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梁 建 감사원장




 - 경치가 참 좋습니다.

 “서울 시내에 이런 사무실이 없을 것 같아요. 바쁠 때도 창 밖을 내다보면 마음이 착 가라앉고요. 참 좋습니다.”

 - 부임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3월 11일이니까 아직 두 달이 채 안 됐죠. 그런데 굉장히 오래된 것 같네요.(웃음)”

 - 업무 파악은 ….

 “기본적인 것은 대충 파악을 했어요. 차 드시죠.”

 - 은퇴할 시기에 관운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전혀 뜻밖의 일이었어요. `세상일에는 우연한 요소가 많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친구들이 격려를 많이 해줍니다. 힘든 자리를 맡았다고 걱정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대부분의 동기들이 여유롭게 쉬고 있고, 집사람도 사실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공직 경험을 못한 것도 아니고 조용하게 교수로 끝내는 게 좋지, 또 하냐고요.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세상일이라는 게 뭐….(웃음)”

 - 국가에 기여하는 일이잖습니까.

 “예,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지난 번 국민권익위원장을 할 때 미진했던 부패방지 업무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자리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권익위에서 부패방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한계가 있었어요. 감사원이 유사한 성격의 기관이고 훨씬 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이라서 수락했죠.”

 - 취임하신 지 두 달 정도 되셨는데,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우리 일이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공직을 경험했던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감사원은 일반적인 정부 부처와 다른 면이 있다. 국민들이 감사원에 대해 갖는 기대는 각별하다.' 일을 시작하면서 그 의미를 실감합니다. 또 감사원 직원들의 뛰어난 업무 역량에 감탄도 나옵니다. 감사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상 더 보안돼야 할 점도 있다고 느껴지고요.”

 - 그동안 감사원장은 법조계나 경제관료 출신이 많았죠. 원장님은 학계 출신이고 또 시민단체 활동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주는 강점이라면.

 “학자는 지식인 그룹의 대표라고 할 수 있죠. 지식인은 남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는 특성이 있잖아요. 사회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크죠. 특히 인문사회 분야 학자들은 문제를 볼 때 국민들의 시각에서 보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넓고 멀리 보려고 하죠. 그런 점이 전문 관료 출신보다는 나은 점이겠죠. 단점은 실무적인 경험이 적다는 것이고요.

 제가 헌법학을 주로 연구했어요. 헌법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균형있게 판단하는 일이죠. 모든 헌법적 판단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감사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헌법학 공부가 그런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나 싶어요. 또 헌법학 자체가 한정된 문제가 아닌 국정 전반에 걸친 것이고 감사 업무도 마찬가지라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하죠.”




 - 어디에 역점을 두시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선진국 진입을 앞에 두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회의 청렴 수준은 뒤떨어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감사원 업무의 핵심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최근 세계적인 감사업무의 동향을 보면 전통적인 회계감사나 비리, 직무감찰을 뛰어넘어 정책에 대한 감사로까지 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상황에서는 공직사회의 비리를 척결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보고 있어요.

 공직사회의 청렴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이 잘 살기 위한 기본 인프라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부패가 없는 나라가 잘 살고, 잘 사는 나라에 부패가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지 않습니까.

 흔히 3대 비리라고 해서 권력·토착·교육비리를 이야기하죠. 고질적인 3대 부패에 관해서는 일과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처벌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아시아에서 청렴한 국가로 뽑히는 싱가폴, 홍콩이 단기간에 이렇게 큰 변화가 가능했던 것도 강한 응징 때문입니다.

 강력한 처벌, 제재라고 하면 강한 물리적 처벌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보다 `비리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힌다'는 `처벌의 확실성'을 인식시켜주는 게 더 중요하죠. 걸릴 확률이 크면 사람들이 나쁜 짓을 안 하게 될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방위산업을 포함한 국방 분야와 교육 분야를 중점적으로 감사할 생각입니다. 국가의 첫째 존립 이유가 국방 아닙니까. 최근 국방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어요. 방산 비리가 심각하죠. 북한을 압도하는 선진적인 첨단 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었는데, 자주포를 비롯해 여러 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잖아요.

 또 하나는 교육계의 비리 문제입니다. 도덕적으로 사회 평균 수준보다 못한 게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실입니다. 청렴 수준이 높아야 할 교육계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죠.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벌써 학부모들이 촌지 걱정을 한단 말이죠. 그 걱정하는 모습을 아이들도 알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어릴 때부터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래서는 청렴의식이 생기기 어렵죠. 그런 면에서 교육비리 척결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육비리 척결에 중점을 두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창의적 교육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기 때문입니다. 교사에 대한 신뢰감이 무너지니까 시험 평가에 대해서 믿지를 못해요. 창의적 교육이 가능하려면 사지선다형 시험에서 벗어난 서술형 시험도 정착돼야 하는데, 주관식 평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 부모들이 많습니다. 결국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신뢰가 가능해야 교육개혁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두 가지 분야에서는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감사를 실시할 생각입니다.”

 - 국방, 교육, 지자체 등 몇몇 분야가 성역으로 치부되고, 성역으로 보호되고 지원될수록 비리도 커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바로 그렇습니다.”

 - 사회 전반의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청렴 문화를 만들려면 어렸을 때부터 도덕성 교육이 강화돼야 합니다. 우리 교육이 공부 잘하는 학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동시에 올바른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해요. 어떤 교육심리학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 3세부터 도덕성 교육을 시켜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처벌과 함께 내부 고발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비리, 부패 사건이 드러나고 적발되는 것은 제보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발 문화가 안 돼 있잖아요. 전통적으로 내부 고발에 대해서는 배신이라고 여기는 의식이 강하죠. 언젠가 타임즈의 송년호 `올해의 인물'에 내부 고발자 여성 3명이 표지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는 내부 고발자를 영웅으로 본단 말이죠. 이런 내부 고발 문화를 어떻게 기르느냐, 작은 것이지만 실제로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국제투명성기구(TI)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청렴도는 1백80개국 중 39위 수준입니다. 늘 40위권에 있다가 재작년부터 39위입니다. OECD 30개국 중에는 22위 수준이니 하위권이죠. 아시아에서만 보면 싱가폴이 5위 내외이고 홍콩이 조금 아래, 일본이 10위권입니다.”




 - 피감 기관과 직원 수는 얼마나 됩니까.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 6만1천여 개에 이릅니다. 중요한 기관만 따져도 5백80개 정도고요. 중앙 행정기관이 49개, 지자체가 2백여 개, 중요 공공기관도 2백여 개가 됩니다. 직원은 1천35명이고요. 국정 전반이 감사 대상이라 업무가 굉장히 광범위하죠. 지원인력을 빼면 8∼9백명이 실제 감사인력인데 이 인원으로 조금 벅찬감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하다 보니, 감사 인력을 늘려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더 필요하죠."

 - 취임사에서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조하셨는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독립성이 잘 안 지켜졌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직무상 독립성은 전반적으로 잘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부 사건에서 그렇지 못하지 않았냐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감사원은 나름대로 그런 비판적인 시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독립성 문제는 감사원 모든 직원들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마음가짐의 문제죠. 저도 독립성을 가장 중요한 직무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씀은.

 “전문적인 실력을 키우라고 주문합니다. 국방 분야를 제대로 감사하려면 국방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있어야죠. 지금까지 전문성을 갖고 들여다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들여다보더라도 모르니까 감사가 어려웠죠.

 또 하나는 피감자의 억울한 입장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육, 국방에 역점을 둔다고 했는데, 계속 드라이브를 걸다보면 반감, 저항도 나올 수 있죠. 어떤 건에 대해서 절차적으로나 방법 면에서 지나치게 되면 본말이 전도돼 해야할 일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그것을 특히 주의하자고 강조합니다. 과정상 작은 실수가 큰 일을 망칠 수 있으니까 그것을 유념하자고요.”

 - 감사가 지나치면 공무원이 복지부동하게 된다는 지적과 실적위주 감사로 흘러서 피감 기관들이 힘들다는 불만도 있었죠.

 “그런 지적에 대해 이해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직원들의 업무 평가방법에 있어 개선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실적 건수 이외의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는 평가방법으로 개선해야죠.”




 - 화제를 돌려보죠. 헌법학 권위자이기도 하신데 현행 헌법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세요.

 “여기에 오기 전에는 개헌 문제에 대해 의견도 개진하고 그랬습니다만, 지금 감사원법에 따르면 정치적 중립성이 의무입니다. 개헌이 정치적 문제가 돼서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부적절하고 개인적인 견해는 원장이 되기 전 이미 여러 번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梁원장은 2006년 한양대 교수 시절 대화문화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제문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켜 동시 선거를 하고 4년 중임제를 실시하면 여소야대의 개연성이 축소돼 빈번한 선거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임제는 초선 대통령이 재선에만 몰두할 염려가 있고 재선 대통령은 처음부터 레임덕에 빠지기 쉽다는 단점도 있지만 여러 면에서 5년 단임제보다는 낫다”고 말한 바 있다.

 - 요즘 로스쿨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로스쿨 도입을 가장 앞서 주장한 교수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로스쿨에 들어온 학생들이 변호사 합격을 위해 시험공부에만 몰두하게 되면 로스쿨 제도는 실패한 것이죠.

 로스쿨 제도의 장점을 살리려면 시험 걱정 없이 3년 동안 정말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깊고 넓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변호사 합격률을 졸업생의 75%로 정한 것으로 압니다. 이것은 하나의 마지노선이라고 보고 그것보다 내려가면 시험 준비기관으로 몰락하는 것이죠. 최저 75% 이상은 돼야 합니다.”

 -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시, 행시에 대한 미련은 없으셨나요.

 “대학 다닐 때 소위 운동권에서 활동했습니다. 법대 내의 서클이었죠. 선배들이 1학년 때부터 `사시, 행시 하는 것은 출세주의자들이 하는 거다. 하지 마라.' 그랬어요. 저도 실제 사회 변혁 운동가를 꿈꿨지만, 자신이 없었어요. 학자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길을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 모교에서 가르치고 싶은 욕심은 없었나요.

 “학자들에게 서울대 교수가 된다는 것은 영예스러운 일이지만 그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사립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쭉 해왔는데, 학자로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서울대에 대한 욕심 없이 충실하게 학자 생활을 해왔습니다.”

 - 만약에 학자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셨을까요.

 “대학 시절에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 좌우명을 들려주세요.

 “어릴 때부터 아버님이 `늘 사람은 德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린 아이가 德이란 말을 잘 모르잖아요. 그러면서도 늘 그 말이 하나의 강박관념 비슷하게 각인돼 있었어요.

 나이 들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덕목은 `균형'입니다. 학문에서도 그렇고 인간관계,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 혹시 삶에 영향을 끼친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전기나 자서전에서 감동을 많이 받아요.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요. 金 九의 `백범일지', 張俊河의 `돌베게', 金 山의 `아리랑'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 살아오면서 보람된 순간과 힘든 일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힘든 일을 겪지 못하고 순탄하게 살아왔어요. 그게 제 한계죠. 힘든 일도 겪어봐야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보람이라기보다는 기뻤던 순간이 1987년 6월 시민항쟁에 성공했을 때에요. 시민항쟁이 일어나기 1∼2년 전, 긴박한 시절에 신문 칼럼을 써왔기 때문에 좀 남다른 느낌이었죠. 뭐랄까, 사회적인 의미의 절정감 같은 것을 느꼈죠.”

 - 여가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세요.

 “시간 나면 스포츠, 특히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에 갑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야구선수를 했어요. 정식 등록된 선수였습니다. 포지션은 3루수였고요.”

 - 노령화가 화두입니다. 노년기를 대비해서 세우신 계획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강의를 계속했다면 전공과 관련해 법치주의 관련 책을 쓸 계획이었죠. 건강과 여건이 허락하면 그 책을 쓰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관심은 있었지만 미뤄뒀던 것들이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예요. 우주, 생명 이런데 대한 호기심이 무척 강했고, 지금도 늘 숙제로 갖고 있어요. 은퇴하고 나면 그런 것에 대해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 확실히 학구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혹시 가족 중에 동문이 계신가요.

 “형님(梁精康 치의학58 - 62)이 동문이세요. 치대를 나오셔서 지금도 치과 일을 하고 계세요. 형님 외에는 여동생, 아내, 딸 두 명 모두 여대를 졸업했어요.”

 - 최근 총동창회가 마포에 장학빌딩을 완공하고 서울대 뿌리 찾기 사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평소 동창회에 대한 생각과 조언을 들려주십시오.

 “부실한 동창회원이라서 뭐라 말씀드리기가 그러네요.(웃음) 동창회를 잘 모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장학사업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됐지만, 능력 있는 학생 중에 여건이 안 돼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단 말이죠. 그런 학생들에 대한 장학사업이 동창회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정리=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