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호 2004년 1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민족의 넋 살아 숨쉬는 우리 설 쇠야
또 한 해가 가고 음력은 오는 21일로 癸未年이 다하고 22일이면 甲申年 정월 초하루인 우리의 큰 명절 설이 오고 이 날부터 섣달 그믐날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는 원숭이띠가 된다. 양력은 지난 31일로 2003년이 끝나고 1월 1일부터는 2004년이 됐다.
누구나 1초도 멈추지 않고 나이를 먹는다. 먹고 마시고 흔들며 즐기거나 아파서 아무리 괴로워도 중단 없이 나이는 먹기 때문에 가장 먹기 쉬운 것이 나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먹은 나이가 365일이 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한 살을 먹는다.
10대는 시속 10km로 가고 70대는 시속 70km로 달린다고 하지 않은가? 엄밀히 따지면 자기가 태어난 날 즉 생일이 돼야 한 살 먹는 것이나 설만 쇠면 연초에 났건 연말에 났건 가리지 않고 한 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생일을 기준으로 한 만 연령법을 채택해 왔고 우리도 광복 후 만 연령 법을 도입했으나 그 관념은 살아 있어 얼마 전에도 우리 법대를 졸업하고 판사, 국회 의원도 역임한 변호사 친구가 미국 나이로 하면 60이고 우리 나이로 하면 61세라기에 법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우리의 연령법도 모르느냐고 했더니 머쓱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나이도 하나 먹으며 한 해를 정리하고 새 마음으로 출발하는 설을 우리 민족은 최대의 명절로 보내고자 설빔과 제수 등의 많은 먹거리도 장만해서 조상에게 다례를 올리고 부모님과 집안 어른 그리고 이웃 어른에게 세배를 드린다. 선산에 성묘가 끝나면 윷, 널뛰기 등의 놀이로 온 마을을 순회하며 정월 대보름까지 어려운 보리고개 시절에도 15일간을 즐겼다. 이런 설이 1940년대 초부터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우리를 강점한 일제는 內鮮一體로 朝日 단일화의 목표아래 약력과세 강행으로 일본 관헌과 그의 앞잡이 우리 겨레를 내세워 감시 감독했다. 민족의식이 강한 집안에서는 떡, 유과 등의 제수를 밤에 숨어서 만들고 식전에 모시는 차례도 밤중에 거행하다가도 그들에게 발각되면 호된 곤혹을 치렀다. 이렇던 설이 민족의 광복으로 단기의 연호와 함께 복귀했다가 1961년 5․16 친일 군사 쿠데타로 표준시각도 30분 앞당겨 일본을 따르고 연호도 양력의 서기로 하면서 우리의 설은 비하되어 민속절이니 구정이니 하여 배제시키고 우리에겐 양력설이 아니라 일본 설을 쇠도록 됐다. 그후 32년 만에 문민 정부가 수립되면서 설이냐 신정이냐 왈가왈부를 거듭하다가 우리의 얼은 버릴 수 없었던지 양력설은 하루 휴일에, 우리 설은 귀성과 성묘를 위해 합리적으로 3일을 쇠도록 정부에서 규정함으로써 부모와 조상께도 효도를 할 수 있고 친족간에 친목을 도모하며 우리의 민속놀이와 혼을 되찾게 된 것을 온 민족이 정말 다행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다. 이 호기를 스키니, 눈꽃 등산이니, 동남아 골프니 되지도 않는 양력설에 화닥닥 차례만 모시고 정작 설에는 여름 바캉스처럼 보내는 가 하면 자랑삼아서 우리는 신정을 지냈다고 뽐내는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난 양력 연말을 계미 세모라든가 연초를 갑신 원단으로 묘사하는 것은 틀린 것이며 우리 연령이 미국과 다르다거나 우리에겐 왜 설을 신정이라고 선호하고 우리 설을 뒤지고 낡은 것으로 비하해서 구정이라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넋을 불러일으키고 민속놀이를 즐기는 우리 설을 쇰으로써 쇠퇴해 가는 민족 정기와 인간성 회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생일을 기준으로 한 만 연령법을 채택해 왔고 우리도 광복 후 만 연령 법을 도입했으나 그 관념은 살아 있어 얼마 전에도 우리 법대를 졸업하고 판사, 국회 의원도 역임한 변호사 친구가 미국 나이로 하면 60이고 우리 나이로 하면 61세라기에 법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우리의 연령법도 모르느냐고 했더니 머쓱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나이도 하나 먹으며 한 해를 정리하고 새 마음으로 출발하는 설을 우리 민족은 최대의 명절로 보내고자 설빔과 제수 등의 많은 먹거리도 장만해서 조상에게 다례를 올리고 부모님과 집안 어른 그리고 이웃 어른에게 세배를 드린다. 선산에 성묘가 끝나면 윷, 널뛰기 등의 놀이로 온 마을을 순회하며 정월 대보름까지 어려운 보리고개 시절에도 15일간을 즐겼다. 이런 설이 1940년대 초부터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우리를 강점한 일제는 內鮮一體로 朝日 단일화의 목표아래 약력과세 강행으로 일본 관헌과 그의 앞잡이 우리 겨레를 내세워 감시 감독했다. 민족의식이 강한 집안에서는 떡, 유과 등의 제수를 밤에 숨어서 만들고 식전에 모시는 차례도 밤중에 거행하다가도 그들에게 발각되면 호된 곤혹을 치렀다. 이렇던 설이 민족의 광복으로 단기의 연호와 함께 복귀했다가 1961년 5․16 친일 군사 쿠데타로 표준시각도 30분 앞당겨 일본을 따르고 연호도 양력의 서기로 하면서 우리의 설은 비하되어 민속절이니 구정이니 하여 배제시키고 우리에겐 양력설이 아니라 일본 설을 쇠도록 됐다. 그후 32년 만에 문민 정부가 수립되면서 설이냐 신정이냐 왈가왈부를 거듭하다가 우리의 얼은 버릴 수 없었던지 양력설은 하루 휴일에, 우리 설은 귀성과 성묘를 위해 합리적으로 3일을 쇠도록 정부에서 규정함으로써 부모와 조상께도 효도를 할 수 있고 친족간에 친목을 도모하며 우리의 민속놀이와 혼을 되찾게 된 것을 온 민족이 정말 다행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다. 이 호기를 스키니, 눈꽃 등산이니, 동남아 골프니 되지도 않는 양력설에 화닥닥 차례만 모시고 정작 설에는 여름 바캉스처럼 보내는 가 하면 자랑삼아서 우리는 신정을 지냈다고 뽐내는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난 양력 연말을 계미 세모라든가 연초를 갑신 원단으로 묘사하는 것은 틀린 것이며 우리 연령이 미국과 다르다거나 우리에겐 왜 설을 신정이라고 선호하고 우리 설을 뒤지고 낡은 것으로 비하해서 구정이라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넋을 불러일으키고 민속놀이를 즐기는 우리 설을 쇰으로써 쇠퇴해 가는 민족 정기와 인간성 회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