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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2011년 3월] 문화 꽁트

버스에서



 서울역 환승주차장에서 젊은 사내가 검은색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둘러매고 버스에 올라탔다. 짙은 갈색 피부에 푸른 눈을 가진 젊은이였다. 한 눈에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버스에 타자마자 날렵하게 입구 바로 옆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맞은 편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내게 그의 모습은 한 폭의 정물화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중앙극장을 지날 즈음 알 수 없는 음악소리가 사내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죽였다. 소곤거리는 것이 말소리인지 흥얼거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때 기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야. ×만한 게 어디서 전화질이야. 당장 전화 안 꺼!”

 기사의 고함소리에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앞쪽으로 향했다. 모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기사의 눈치를 보았다. 통화를 하던 사람들도 핸드폰에서 입을 떼고 침묵을 지켰다. 버스 안이 갑자기 조용해져 진공 상태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사에게 욕을 먹은 사내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사내가 잘못한 것인지 기사가 객기를 부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기사가 소리를 질러댔을 때 버스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고, 휴대폰 통화 금지라는 표지는 어디에도 붙어있지 않았다. 기사가 화를 낸 대상이 사내인지 아니면 전화를 걸고 있는 불특정 다수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왜 욕해요? 욕하면 나빠요.”

 “이런 무식한 ×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알아듣지 못한다니까. 한국에 왔으면 얌전히 일이나 할 것이지, 노동자 주제에 왜 싸돌아다니면서 전화질이야.”

 기사는 사내를 외국인 노동자로 단정하고 하인을 다루듯 했다. 욕설의 내용으로 보아 공격의 대상도 분명해졌다. 그렇더라도 기사가 왜 그처럼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부어 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처럼 당당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 전화하고 있어요. 왜 나한테만 욕해요? 전화하면 안 돼요?”

 순간 기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운전 중이 아니라면 사내에게 달려들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화난 기사의 얼굴 위로 `깨끗한 자동차, 친절한 기사, 안전한 버스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사랑 받는 버스가 되겠습니다'라는 전광판의 자막이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기사의 얼굴에 전광판의 자막이 겹쳐져 묘한 여운을 남겼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사내에게 이야기를 걸려다가 행여 싸움을 키우지나 않을까, 그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버스 안을 가득 메웠다. 정적을 깨고 사내가 입을 뗐다.

 “한국 사람들 이상해요. 백인들에게 친절하게 하면서 왜 우리들에게 욕해요? 한국 사람들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아요? 레이시즘, 내쇼날리즘, 센트럴리즘 너무 강해요.”

 낯선 용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내는 인종주의, 민족주의, 중심주의를 기사의 태도에서 읽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한국에서 살면서 느낀 서러움을 토설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사는 분명 사내를 주변인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의 적대감과 배타주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민족주의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중심주의에서 온 것일까?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고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애국계몽기에 발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한말 애국계몽운동가들은 외세에 맞서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독립운동사상의 단초를 제공했다. 해방 후 6·25전쟁, 남북분단, 경제개발 등의 시기에 민족주의는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경제적인 기적을 가져다주고,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과 의식의 확산을 이루어 낸 원동력이 됐다.

 그 결과 효율성과 결과 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세속적 성공과 상류사회 진입을 위한 경쟁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일류', `서울', `강남', `서구'는 한국사회의 목표가 됐다. 21세기에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잔존하는 민족주의와 중심주의는 인종차별적 문화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조장하고,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도약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아득한 옛날 우리 조상들은 동부대륙에서 다른 민족과 섞여 살다가 한반도로 이주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시기에도 우리 민족은 타민족의 이주로 그들과 섞여 살았다.

 고구려는 통일제국을 이루면서 여러 부족들을 복속시켜 이주민들이 원주민보다 많았다.

 발해는 말갈족과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돼 건국한 나라이고, 고려시대에는 여진족, 거란족, 발해유민 등 귀화자가 20여 만명에 이르렀다.

 조선조에는 임진왜란과 명조의 멸망 그리고 청조의 등장으로 중국의 수많은 학자들과 장수들이 조선에 귀화했다. 그들은 사대부의 나라 조선만이 중화주의를 꿈꿀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다.

 최근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1백10만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은 7백만명을 넘어섰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부강하고 민주주의도 정착돼 살기 좋은 나라로 인식하고 한국을 찾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주민들을 이방인 취급하고 주변인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내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살아온 세월이 읽혀졌다.

 김재영의 `코끼리'에서 본 히말라야의 풍경과 식사동 가구단지의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따사로운 햇빛, 아름다운 꽃, 눈부신 설산, 푸른 달빛으로 상징되는 히말라야의 풍경은 흐리멍덩한 하늘, 깨진 벽돌더미, 냄새나는 바람, 공장의 소음, 페인트 냄새, 옻 냄새, 새빨간 염색물과 대비되면서 이주 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현주소를 선명하게 했다.

 사내는 우리 사회에서 주변부를 겉돌고 있는 타자이다. 그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에 왔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손에 얻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층위는 매우 복잡하다. 한국인의 중심주의는 한국인들에게 일류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중심부와 주변부로 이원화되고, 경계 안과 밖의 차이가 뚜렷하게 구분됐다. 사내는 경계 밖의 존재하는 인물로 주변부로 수용하려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그를 경계 밖의 인물도 아니고 주변인도 아닌 진정한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기에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다. 나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면서 가슴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멍한 눈으로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분당에는 무슨 일로 가지요?”

 “서현동에 영어회화 가르치러 가는 길입니다. 나 노동자 아니에요. 대학에서 영어 가르치고 있어요.”

 “대학 선생이 왜 과외를 하나요?”

 “대학에서 돈을 적게 주어요. 방학 때 과외를 해야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래도 먹고 살만큼은 주지 않나요? 우리 학교는 상당한 정도의 연봉을 주는 것 같던데….”

 “결혼했어요. 부인 취직 못해요. 월세 내고 생활비하고 남은 돈 부모님께 보내요. 과외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갑자기 낯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학에서 대부분의 외국인은 대우교수로 채용돼 강의교수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나는 그것을 당연한 일로 알고 있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과외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보지도 못했다.

 버스가 판교에 들어섰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인지 기사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서현역 부근을 지날 때까지도 기사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운전 중에 저렇게 오래도록 저렇게 큰 소리로 통화해도 괜찮은지 걱정이 됐다.

 서현중을 지날 즈음 옆 차선의 승용차가 버스 앞으로 잽싸게 끼어 들었다. 기사가 놀라서 급제동을 걸면서 욕설을 퍼부어 댔다. 사내의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가 가까스로 원위치로 돌아왔다. 사내는 기사를 보면서 아주 점잖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운전 중에는 전화 안 돼요. 욕하면 나빠요.”

 기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기사가 한 마디 하기 전에 내가 끼어 들었다.

 “기사님, 젊은이 말이 맞는 것 같소.”

 순간 기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사내의 점잖은 충고에 한 방 얻어맞은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