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호 2011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기부하면 생각나는 인물 `빌 게이츠'

`기부'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빌 게이츠이다. 액수뿐 아니라 기부에 대한 자세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는 대목이 있다.
게이츠는 미국적 부의 돌출이 아니라 사회에 또아리 튼 일반인식의 산물이란 점이다. 미국 각급 학교의 졸업식에는 반드시 장학금 수여가 길게 들어간다. 돈을 맡긴 인물들은 평범하다. 은퇴한 교사나 교수, 학부모, 지역 중소기업인 또는 학교와 인연을 맺거나 우연히 찾아든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다. 액수는 관계없다. 이를테면 은퇴한 영어 선생님이나 교수가 최우수 영어성적을 거둔 졸업생에게 2∼3백 달러를 주는 식이면 족하다.
공공텔레비전(PBS)과 공공라디오(NPR)의 프로그램을 보면 수많은 재단, 개인, 회사가 제작을 도왔노라고 공개한다. 또 1년에 몇 차례 모금기간을 정해 지루할 정도로 돈을 내달라고 방송한다. 우리라면 공공방송이 간접광고를 하느니, 앵벌이짓을 하느니 하면서 원천적으로 불허하거나 욕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부가 없다면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공공방송의 존립과 좋은 프로그램을 기대할 수 없고 민영방송의 부족분을 메우기 힘들다. 특히 이런 프로그램들은 학교교재로 쓰일 정도로 우수하고 다양하다.
지난 2003년 NPR은 뜻밖의 기부 2천6백억원으로 환호했다. 당분간 제작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액수였다. 기부자는 햄버거로 돈을 번 맥도날드의 미망인으로 평생 조석으로 들어온 좋은 뉴스와 음악 프로그램에 대한 보답으로 유산을 기부했다. 물론 조건은 없었지만 굳이 따진다면 지금처럼 방송해 달라는 것이다.
주로 민주당에 정책과 인재를 제공하는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기업인들의 기부금으로 시작했다. 세일즈로 치부한 로버트 S. 브루킹스는 연구소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펴면서 정부에 대한 연구가 긴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장래의 정부 직원을 기르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브루킹스는 이 전통에 따라 역대 민주당 정권에 우수인력을 공급하고 공화당 정권이 탄생하면 이들에게 피난처를 주면서 4년 뒤를 준비하는 역할을 해왔다. 여기서 읽을 대목이 있다. 기부는 누구나 조금씩 참여하는 나눔이다. 또 기부는 가난구휼과 장학뿐 아니라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공공행위이다. 곧 민주주의의 성숙에 필요한 수준급 언론과 연구소 등을 배양하는 젖줄이다.
언론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인식의 전환이 여기 해당한다. 민주주의가 형식적 삼권분립과 선거, 적극적 투표만으로 성숙할 수 없다는 점이 여러 번에 걸친 정권교체를 통해 자명해졌다. 꽤 많은 다른 조건, 특히 돈과 노력이 드는 조건의 리스트가 있다.
이제는 평범한 시민은 물론 돈 가진 사람들이 공적 인식을 넓히고 지갑을 고쳐 잡아 이런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와 미래에는 돈과 노력, 그리고 공적 인식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