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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2004년 1월] 뉴스 본회소식

원숭이띠 동문 10人의 新年 소망



 

무엇보다 정치가 안정되길 바란다

金成(20년생·42년 京城高商卒)이수그룹 명예회장·본회 고문

 새해에는 정치 같은 것에 무관심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국제적인 사건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되고, 이라크 사태도 하루빨리 진정되어 진정한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요즘의 우리 나라 정치 혼란이 앞으로 있을 4월의 총선 탓이라고 한다면 나는 유권자의 권리를 포기해서라도 정치와는 무관하고 싶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내 마음 같다고 한다면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추잡한 정쟁 다 집어치고 4월의 총선을 위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정책 경쟁이라도 펼쳐주었으면 한다.
 새해 들어 그동안 침체했던 투자나 소비가 살아날 징후가 보인다고 하니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와 사회 안정이 필수적이다. 4월의 총선을 치르다 보면 올해의 반은 정치 바람으로 지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루빨리 정치가 안정되어 사회의 모든 역량을 경제 발전에 쏟아 넣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모든 요소들이 사라지기를 염원하면서 나는 내가 소속돼 있는 기업의 발전을 위해 현역으로 이바지하고 싶은 것이다. 매년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지만 들어맞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도 새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것만이 불확실한 장래를 극복하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새해에는 세계 경제도 좋아지고, 우리 경제도 좋아진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정치적인 안정이 절실한 것이다.


이웃 돕는 일에 욕심 부리고 싶어

孫一根(32년생·51년 法大入)한국일보 상임고문·경원대 겸임교수

 나는 회갑을 맞은 해부터 주위에서 더러 나이를 물으면 곧잘 『서른 둘(32년생)』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모두들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그 뜻을 알아차리곤 박장대소하기 일쑤다. 노령기에 들어서 가장 큰 비극은 몸은 늙어 가는데 마음은 늙지 않는데 있다고 한다. 이 언밸런스의 갭이 여러 가지 정신적인 갈등과 신체적인 질환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안티에이징(Anti-Aging)에 관한 연구가 새로운 학문으로 정립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노화방지학」인 셈이다.
 그러나 무작정 장수만 하면 뭘 할 것인가? 어떤 죽마고우와 담소하는 가운데 『이제 1백세까진 너끈히 살아 남는 시대가 왔구먼』 했더니 이런 대답이다. 『혼자만 오래 살아 봤자 뭘 해. 대화할 상대가 있어야지』
 내가 과욕을 부린다면 가진 돈은 풍족하지 못하나 내 이웃과 동창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 뭔가 좋은 일 할게 없을까 하고 항상 골똘히 생각하고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40여 년간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안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연말에 송년이나 신년 연두사설을 맡아 집필하게 되면 그전의 사설을 참고삼아 읽어보게 된다. 거기엔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몇 가지 몇 가지 있다. 「다사다난」, 「과도기적」, 「심기일전」 등이다. 지난해의 사회상을 풍자한 사자성어 가운데 「우왕좌왕」이 가장 많다고 한다. 정말 어지러운 한해를 보내며 나의 띠인 새해엔 내 욕심도 채워졌으면 싶다.
 원래 원숭이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영특하고 총명하다고 한지 않는가. 새해에는 조그마한 일 하나라도 우선 우리 동창회를 위해 문자 그대로 英明한 아이디어를 짜내어 성사시킬 작정이다.




현실보다 꿈을 그리며 산다는 것


白祐榮(44년생·67년 文理大卒) 한국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고등학교 시절 화가가 될까 했다. 석고 데생을 처음 해본 날, 잘 그려지지 않는 것에 크게 실망하여 포기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소설가가 되고자 했다. 글을 열심히 써보았는데 그 역시 재주가 없는 것 같았다.
 신문기자가 됐다. 당시로는 기자가 되는 것 자체가 어려웠으므로 신이 났다. 그러나 기자의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은은하나마 알게 됐다. 「나」라는 사람은 현실보다 꿈을 그리며 산다는 것을. 그런 탓인지 50중반에 신문사에서 나왔다. 40년 전의 꿈이었던 글을 쓰기로 했다. 뒤늦게 쓰는 글이 잘 될 리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기를 부리기로 했다. 밤을 새며 썼다. 그렇게 1년여를 끙끙대던 어느 날 밤, 나는 발견했다. 정신 없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소설 속 캐릭터들이 원하는 바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드디어 깨우쳤다. 소설은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캐릭터가 쓴다는 것을.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지난 글들을 찬찬히 다시 훑어나갔다. 수시로 캐릭터들의 느낌이 내 뇌리를 파고들었고 상당 부분을 고쳐야 했다. 그 뒤로 글이 잘 안써지면 캐릭터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곤 했다. 그러면 저절로 글이 됐다. 소설은 수많은 캐릭터가 있다. 주인공만이 아니라 단역까지도 뚜렷한 성격을 가져야 하고 그들도 중요하다. 그들 전부가 독특한 캐릭터를 지녀야 한다. 한데 그게 쉬울까?
 현실로 말하면 대통령만 중요한 게 아니라 야당 당수와 정치가도 기업가도 언론인도 공무원도 일반국민도 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빼어난 캐릭터 하나가 나라 전체, 소설 전체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신년에는 좋은 캐릭터들을 만나야겠다.


우리 터전 지킴이로 모두가 나설때

朴槿子(32년생·55년 美大卒)여류화가회 고문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나. 우리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만년에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그린 폴 고갱의 대작 제목인데, 그림 제목치고는 참으로 길다. 허나 탄생과 죽음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도 대단하지만 그 제목은 작품을 초월하여 우리들에게 선문답 같은 사유의 시간을 놓여준다.
 한 인간, 또는 한 나라 역사의 기록이나 해석은 사실에 어느 정도 진실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일까. 피난시절 모교는 부산에 가교사가 있었다. 미술대학은 송도 바닷가에 있었기에 언어적인 수업으로는 얻을 수 없는 미적 사심을 다양한 바다모습을 통해 젊은 우리들에게 심어주었고,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개인 날에는 바다 어디에서든 대마도가 보였던 것 같다. 내가 듣기로는 대마도는 우리 땅이었다고 했다.
 70년대 초 해남 尹善道선생 고택을 방문했을 때, 유물들 중에는 독도와 대마도가 분명 우리 땅으로 그려져 있는 지도가 오랫동안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일본보다는 우리 땅이 더 가까운 대마도는 어떻게 된 사연으로 일본 것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얼마 전 대마도 역사기행으로 이어졌는데, 나와 같이 대마도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70여 명이나 이르렀으며 학문적인 강의와 열띤 토론이 여독마저 잊게 했다.
 한때 우리 땅이었던 대마도는 중앙 정부의 무관심과 당파싸움 속에서 우리 지도 밖으로 사라져간 것을 알게 되면서, 어쩌면 지금도 똑같은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다. 천문학적 숫자의 정치비리들이 연일 시끄러운데, 그 액수의 일부만이라도 지적재산 축적에 쓰이지 못함이 슬프다. 단군 이래 가장 작은 땅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그나마도 독도가 위험하고 중국의 역사왜곡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참으로 심각하다.
 대마도는 바야흐로 한국관광객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동문이 된 세 아들 잘 성장하길 기원

全玲惠(44년생·67년 音大卒) 경희대 교수

 이번 방학에는 쇼팽의 음악을 좀더 공부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갖지 못했던 경험과 테크닉, 보다 넓어진 이해심으로 훨씬 아름다운 쇼팽의 음악을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한동안은 베토벤의 음악 속에서 지내왔다. 그에 관한 연구서적들을 읽으며 강연연주, 독주회, 제자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 등을 가졌고 독일 베토벤 페스티발 참가를 통해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의 시대를 숨쉬어 보는 경험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베토벤 쏘나타 연주회의 실황이 CD(Sony Classic)로 출시되는 조그마한 수확도 있었다.
 교수활동 외에 내 생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매주 교회 예배시 드리는 파이프오르간 반주이다. 매주 토요일 이 오르간을 통해 주일예배 음악을 준비하는 일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작은 봉헌이며 소망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소망은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경희대에서 후학들을 잘 돌보는 일과 우리 부부의 건강, 그리고 모교 동문이 된 세 아들이 각각 자기들 분야에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잘 성장하는 일이다. 음대를 졸업하던 해 대학주보에 쓴 나의 졸업소감에서 인용했던 윌리엄 위즈워즈의 시구가 생각난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 바라보는 내 가슴 뛰어라/ 어려서도 그러하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며/ 나이 들어서도 그러하리/ 내 생명의 하루 하루가 타고난 경건심으로 이어지기를…」
 쇼팽의 음악과 오르간의 아름다움 안에서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고대한다.


매일 인생의 막 내리는 날인양 살리라

李春媛(56년생·78년 看護大卒)모교 병원 수간호사

 열 두 해씩 헤아려서 이미 4막이 끝나고 바야흐로 5막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클라이맥스는 어디일까?
 68년, 경기여중 입학이란 소식에 아버지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춤을 추듯이 기뻐하셨지만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실감이 안 났다. 80년엔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며 비통에 잠기고 개인적으론 병원에 입사하여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힘들기만 한 시간들이었다. 다행히 꿈같은 사랑에 젖어 상쇄되는 기쁨이 있었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침반을 발견하여 혼란을 감할 수 있었다.
 간호현장에서 치열한 생사의 기로에서 인내하는 환자분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생각하며 서로를 부축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게 됐다.
 이제 5막을 시작하기 전 마음속에 더욱 또렷해지는 건 모든 사람이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이며, 입었던 모든 옷을 벗고 환의 하나만 걸친 우리 환자들을 통해 배우는 것은 살면서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꼭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문제라도 죽음보다는 작은 문제다. 또 한 가지 소위 중년의 책임이라는 것, 다음 세대에 아름다운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차지한다.
 2004년 새해에는 더욱 마음을 추스르고, 거창하게 세대간 책임이랄 것도 없이 자녀들에게나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생각으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여 행해야겠다. 매일 인생의 막이 내리는 날인 양 성실하게 마침표를 찍으며 살고 싶다. 그 속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과 느낌표를 연발하며 살 수 있도록 마음을 푸르고 맑게 가꾸어야겠다. 비록 겉 사람은 후퇴하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한 해가 되고 싶다.


사소해서 되려 소중한 소망 빌고파

金春텣(68년생·90년 經營大卒)동양증권 차장

 마른 풀냄새 같은 게 나는 세밑거리에서 한 해 동안 끌어온 시간들을 물끄러미 돌아다본다. 한참을 뒤척여도 가슴 서늘히 고이는 기억은 없고 따분했던 일과들만 느슨하게 엉켜있다. 빠르게 변모하는 세태에 적응해온 한 마리 카멜레온이었다면 온당할까? 그렇다고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살아 왔던 건 아닌데 각별히 새길만한 기억 하나 선뜻 집히지 않는다는 건 아무래도 좀 섭섭한 일일 것이다. 30대는 가장 바쁜 생의 한때 일거라고, 그 중에서도 내가 속해 있는 직업이 한결 더 할거라는 식의 변명 아닌 넋두리라도 늘어놓아야 할 만큼 그저 뻑뻑한 나날이었던 것 같다.
 사실 대다수 소시민들의 삶이란 그렇게 닮아 있다는 걸 안다. 저마다의 생업에 악착이다 보면 갖고 싶은 취미는커녕 가까운 친구들조차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서로 조금씩 이해를 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별 탈은 없겠지만, 때때로 그 무엇엔가 위로받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득 여행을 떠나본다거나 막연한 일탈이라도 떠올려가며 스스로의 위안을 얻는 나름의 갈래도 여럿이지만 그럴 때 나는 훌쩍 고향으로 내려간다.
 유년의 기억들이 고즈넉이 묻혀있는 그 곳 뒷 강물에 반나절쯤 낚싯대를 드리워보기도 하고, 잠시나마 형내외의 농삿일을 곁들기도 하면서 아주 천천히 흐르는 듯한 시간을 느껴보곤 한다.
 또 한 해가 밝았다. 이미 수없이 겪어온 일인 탓인지 설렘보다 세월의 더께를 한 겹 더 둘러야 한다는 일말의 담담함이 앞선다. 그래도 올해는 모처럼 찾아든 띠해이니 만큼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 다독이고 싶은 소망 하나쯤 빌고 싶다. 사소해서 되려 소중한 것, 가까이 있으므로 더 눈에 띄지 않는 것들, 꿈이란 말로 호명하기엔 너무 거창할 것만 같아 그냥 바람이라 풀이해야 좋을, 오직 나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거 말이다. 필경 그것이 이루어짐을 전제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파트너십 조직의 모델을 생각하며

李元首(56년생·85년 社會大卒)다솔국제특허 법률사무소 변리사

 내가 전에 다니던 증권회사에서 상당기간 인사업무를 담당하면서 소위 신인사제도라는 선진 인사시스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관련서적들을 보니 경영기법이 발달한 선진국의 기업에 있어서도 조직이나 인사관리에서 갖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점은 우리 나라의 보통기업과 다를 것이 없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의 하나로서 자칭 「인적조합회사」라는 것을 구상하고 실행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됐다. 그 내용의 골격을 말하자면, 일단의 설립자 그룹이 일정액의 설립자본을 조달할 수 있으면 사업의 목적이나 아이템을 정하지 않고 조직구성원의 진입자격과 절차 그리고 조직구조와 업무방법에 관한 기본설계만을 한다. 그러니까 조직의 구성원간에는 일종의 멤버십을 공유하고 일종의 내부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회사는 구성원의 자아실현의 장을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근래 지식정보화 사회가 도래하여 다양한 지식전문가 그룹이 주요한 사회계층으로 등장하고, 인터넷을 비롯한 온라인이 새로운 네트웍의 수단으로 중요시되는 등 사람과 조직의 연결 형태는 전보다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됐다. 물적회사인 주식회사에서도 경영자와 주주와 종업원의 관계가 확실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앞으로 주식회사 못지 않게 업무조직의 일반화된 형태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이는 파트너십 조직의 구조에 대한 모델의 제시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우리의 실정에 맞는 파트너십 조직의 이상적인 모델을 구상해 보고 싶은 것, 이것이 새해 나의 또 다른 소망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에 최선 다할 터

權惠眞(80년생·03년 生活科學大卒)모교 대학원 소비자학과 석사과정

 솔직히 이번 신년은 설레기보다는, 위기의 시대에 더 아슬아슬하게 내몰린 느낌입니다. 대학은 고급 취업학원이 돼가고, 학문에의 순수한 열정과 남다른 두뇌는 점점 기죽어 가는 대한민국.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람과 문화. 비록 사회생활에 뛰어들지 않은 채 비교적 안전한 상아탑 속에 살지만, 공부를 시작하여 서투르고 어설프게나마 역사와 대면하고 선현들의 문제의식과 사유를 익혀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제 짧은 식견에도 너무나 절박하게 다가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잊지 않는 일은 더욱 절실한 듯 합니다. 혜안을 지닌 선배님들께서 이미 강조하셨듯이, 이 자리는 그 어떤 부나 명예와 관계하는 자리가 아님은 이미 확실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연 어디로 가야 할 지 통찰하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검토하고, 오해와 오도를 바로잡아야 할 자리라는 것입니다. 지조를 지켜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며, 사리를 헤아리는 안목과 넉넉한 배포로 「빛 좋은 개살구」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정한 가치를 가려내고 그것으로 세상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요즘 들어 더 자주 새기게 됩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저의 소망 중 하나는 우리 선배님들께서 당신의 필드에서보다 적극적으로 그러한 역할을 다하시는 모습을 통해 세상을 제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 또한 그렇게 치열한 삶의 파노라마 앞에서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찾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짧은 글월로 어리석은 만용을 부리지 않으며, 세상과 인생의 참모습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년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우리 동문 선배님들께 바라는 소망이자 학문의 길로 입문하고자 하는 어느 후배의 삶의 계획입니다.


타인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련다

張敬愛(68년생·91년 師大卒)동아사이언스 과학문화연구센터 소장

 소망 하나.
 『안녕하세요? 동아사이언스 과학문화연구센터 소장 장경애입니다』 『그런데 동아사이언스는 어떤 회사입니까?』 『네, 동아일보 과학동아에서 분사를 한…』
 이렇게 5~10분 정도 설명을 해도 처음 나를 만나는 상대방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속시원한 표정을 짓지 못한다. 새해에는 내가 하는 일과 우리 회사에 대해 너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됐으면 하는 큰 소원을 가지고 있다.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www.dongascience.com)에 들러보시는 것은 어떨지….
 소망 둘.
 「브랜드 YOU!」 삼성종합기술원 孫郁(67년 工大卒)원장님께서 이제는 개인이 브랜드라고 강조하신 말씀이다. 여기에 나는 1백20% 동의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 이름을 걸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1%의 차이만 있을 뿐. 1%는 보통과 명품을 결정짓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1% 차이를 내기 위한 과정은 정말 너무 힘들다. 올해에는 2% 부족하게 살아보고 싶다.
 소망 셋.
 『여자인 주제에 여자답지도 못하고…』
 어떤 남자 어른이 공식적인 회의 중에 나에게 던진 말이다. 내가 그 어른의 이야기에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세상물정을 참 몰랐던 것 같다. 그냥 『네, 어르신 생각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며 비위를 맞추면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난 새해에는 그런 어른을 많이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다.
 소망 넷.
 2003년은 몸과 마음이 참으로 피곤했던 한 해였다. 어느 덧 다가온 2004년에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타인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사람이길 기원해본다. 난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했는데…(믿거나 말거나) 올해는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한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