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394호 2011년 1월] 문화 꽁트

꽃게 아가의 연평도 외출




 꽃게 아가는 엄마를 애타게 부르다 그만 잠에서 깨었어요. 엄마는 요즘들어 아가의 꿈에 자주 나타나 손짓을 했어요. 육지로 오라는 소리인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오래전에 육지로 나가셔서 아직껏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아가는 몇 번이고 엄마를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갯벌집을 떠나기가 왠지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요.

 오늘은 엄마를 찾아 나서리라고 아가는 굳게 결심했어요. 살금살금 갸웃갸웃 기어갔어요. 좌우앞뒤를 잘 살피며 육지로 올라왔어요. 찬란한 햇살이 참으로 눈이 부셔요. 까만 갯벌에만 있다가 하얀 육지로 나오니 현기증이 났어요. 그래도 엄마를 찾아야지 하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었어요.

 하얀 굴꽃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반짝였어요. 여기저기 나뒹구는 돌멩이조차 아가를 반기는 듯 재갈거려요. 모든 게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여요. 엄마가 꿈속에서 자꾸 오라고 손짓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어요. 이렇게 환하고 멋진 곳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엄마가 고마워 아가의 마음은 들썩였어요.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쾅' 하는 굉음이 울렸어요. 눈이 멀 것 같은 빛과 연기가 목을 숙인 자라처럼 아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어요. 한참을 지나 살그머니 눈을 떠 봤어요. 또다시 `펑펑! 퓽퓽!' 하는 소리가 지옥을 왔다갔다하게 했어요. 마음속에 걱정 한 조각, 근심 두 조각, 불안 세 조각이 차례차례 마음탑을 쌓았어요. 갯벌집과는 참 다른 세상이 좀 무섭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궁금도 했어요.

 `무슨 일이 난 걸까? 그냥 갯벌집으로 돌아갈까?'

 순간 망설였지만 엄마를 만나야 하리라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불안의 탑쌓기를 그만둘 수 있게 해 줬어요. 어쨌든 견디기로 했어요.

 이때 또 다시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 같기도 하고 대포소리 같기도 한 굵은 소음이 귀가 찢어지듯이 울렸어요. 매운 연기가 가득차고, 건물이 흔들리고, 집채가 날아가고, 사람들이 쓰러지고, 보온병이 새까만 탄피처럼 나뒹굴고, 수십 발의 포성이 장대비처럼 쏟아졌어요. 평화로운 섬이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엄마는 왜 하필 이때 날 오라 하셨는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만나야 하리란 생각은 변함이 없었어요. 어디선가 시끌벅적 큰소리가 들렸어요.

 “아이고 할매! 포격연습인 줄 알았는데 실제 상황이라요. 얼른 이곳을 떠나야 한답니다.”

 “오매, 어쩐다냐? 우리 보람이 재워두고 나왔는디. 시상에, 이를 어째? 에미도 없는 것을 내가 데리고 있다가 황천길로 먼저 보내는 것 아녀? 보람아, 아이고 내 새끼….”

 할머니는 손녀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까만 포연 속을 뚫고 보람이가 자고 있는 집을 향하여 바삐바삐 걸음을 옮기셨어요.

 “지금은 한미연합포격 연습이 아닙니다. 실전 상황입니다. 북한에서 우리를 선제공격했습니다. 연평도에 거주하시는 주민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인천 부두로 향하는 연락선에 승선하셔서 더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에서는 급박한 음성이 마을 전체에 큰 비상이 걸렸음을 알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겁고도 빠르게 먼지를 흩날리며 움직였어요. 난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6·25전쟁 이후 이 섬에 살면서 가장 무섭고도 끔찍한 시간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전에는 천안함 사태로 백령도를 놀래키더니, 이제는 연평도를 포격해? 하여간 김정일 그 놈을….”

 아저씨들은 툴툴거리며 양팔로 커다란 짐보따리를 짊어지고 선창가로 향합니다. 아주머니들은 아이들을 엎거나 걸리며 종종걸음으로 따라갑니다.

 “가긴 어딜간다는 거야? 한 발짝도 걷기 힘든데. 이래저래 죽을 목숨! 난 잔뼈가 굵은 내 고향을 떠날 수가 없다니께. 갈테면 할망구나 가드라고.”

 허리가 꼬부라져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해소 섞인 쉰 목소리로 할머니를 향해 외치십니다.

 “바다에 나가야 하는디 이게 뭐랑가? 젠장! 창고에 꽃게도 다 썩어 불텐데…, 대체 이게 뭔 일이다냐?”

 부두가에서 배를 손질하다 만 보람 아빠도 퉁퉁거리며 집을 향해 허겁지겁 돌아가다가 보람 할머니를 만나셨어요.

 “어무이, 보람이는 어쩌고 혼자 계신다요?”

 “에고 애비야, 보람이 자길래 새참 준비하러 잠깐 나왔다가 그만… 싸게싸게 가보그라. 보람이가 제발 무사허야 할텐데….”

 보람 아빠는 넋나간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다가 헐레벌떡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보람아, 보람아?”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가의 마음도 조마조마했어요. 세상에도 자기처럼 엄마와 헤어져 사는 아이가 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아가는 보람이를 보진 못했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어 간절한 기도의 탑을 쌓았어요. 자비 한 조각, 안전 두 조각, 사랑 세 조각….

 포성은 잇달아 들렸어요. 줄지어 날던 바닷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끼룩끼룩 울었어요.

 “아주머니들, 빨리빨리 연락선 안 타고 뭐하세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며 발만 동동 구르는 아줌마들을 거들어 군인 아저씨들이 짐을 들고 함께 선창가로 향했어요.

 유리창이 또다시 흔들리더니 쨍그랑 깨졌어요. “아악!” 사람들의 외마디 비명소리도 들렸어요. 또다시 포성이 주변을 에워쌌어요. 여기저기서 카메라의 플래시가 찰칵찰칵 터졌어요. 차들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상처난 짐승처럼 길게 누워있어요. 주인 잃은 개들이 왕왕거리며 하늘을 향해 컹컹컹컹 짖었어요.

 `아아! 이를 어쩌나?'

 굴바위에 몸을 숨긴 채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아가는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탄식이 새어나왔어요. 잠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어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막막했어요. 밤마다 꿈마다 나타났던 엄마가 지난밤에 안 오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어요.

 `엄마가 자꾸 손짓한 것은 육지로 나오라는 게 아니라 갯벌집에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빨리 오라는 뜻으로 알아듣다니….'

 아가는 자신의 성급한 판단과 행동을 후회했어요. 예지력 뛰어나기로 소문난 엄마가 가장 무서운 시간에 아가를 육지로 불러냈을리는 만무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아가는 어찌해야 좋을지 아득하기만 했어요. 사람들 틈에 끼여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갯벌집으로 돌아가서 엄마를 기다려야 할 것인지 잘 분간할 수 없었어요.

 아가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두 눈을 꼭 감았어요. 엄마는 늘 말씀하셨어요.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는 눈을 꼭 감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라고…. 마음 깊이에서 엄마의 목소리같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엄연한 음성이 아가에게 들렸어요.

 “아가야, 세상은 아주 넓고 복잡하단다. 너의 갯벌집과는 사뭇 다르게 변화가 무쌍한 곳이지. 언뜻 보기엔 하얀 평화가 흐르는 화려한 곳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검은 전쟁으로 얼룩진 칙칙한 곳이지. 너는 엄마를 찾아 육지로 가고 싶겠지만 육지는 무장공자인 너희 꽃게들의 붉은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야. 한 핏줄의 인간들끼리도 정답게 살기 쉽지 않아 티격태격 난리잖니? 엄마는 육지에 없으니 얼른 갯벌집으로 돌아가려무나. 네 엄마는 오직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란다.”

 엄마가 육지에 없다는 말에, 엄마를 꿈속에서만 만나야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란 아가는 화들짝 눈을 떠봤어요.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밤마다 꿈마다 나타나는 엄마를 직접 만나기 위해 공포의 시간을 뚫고 예까지 왔는데 엄마를 못보고 다시 갯벌집으로 돌아가야 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어요. 다리에 힘이 쏙 빠지고 머리가 아찔했어요. 등딱지를 망치로 꽝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단 한번만이라도….

 그러나 엄마는 오직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어요. 침을 꿀꺽 삼킨 아가는 발걸음이 분주한 사람들 틈을 맥없이 빠져나와 엄마와의 만남이 가능한 갯벌집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뗐어요.

 문득 보람이가 궁금해졌어요. 아가는 보람이 할머니와 아빠가 가신 방향으로 잰걸음을 돌렸어요. 고양이가 허물어진 거리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어요. 햄스터가 찍찍거리며 갈팡질팡 헤매고 있어요. 삽살 강아지는 우두커니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모두들 엄마를 잃어버린 듯 슬퍼보여요.

 이때 앙징맞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다가와 슬픔을 일깨웠어요.

 “할머니! 우리 엄마 만나러 가는 거야? 엄마 만나려면 급하게 피난가야 하는 거야? 배타고 나가면 엄마가 기다린대? 보람이 동생도 함께 만나는 거야? 아이 좋아! 빨리 가자. 할머니!”

 아가 곁을 스치며 종알대는 보람이는 가볍게 상기된 얼굴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시는 할머니를 재촉했어요.

 꽃게 아가는 보람이가 엄마를 꼭 만날 수 있길 다시금 기원하며 푸른 꿈이 있는 갯벌집을 향해 사각사각 걸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