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호 2011년 1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역사의 시간, 신화의 시간

2010, 2011… 건조한 숫자의 나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동양식으로 庚寅, 辛卯하듯이, 숫자들도 엄연히 한 해 한 해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에 남다른 개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될는지요. 우리는 보통 0이나 5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로 끝나는 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2011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때,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다고 떠들썩하더니 벌써 11년이나 지났군, 심드렁하기는 해도 정신이 버쩍 든다고 여길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젊은 역사연구자 한 분이 2011이라는 연도를 두고 곰곰 생각하더니, 이 해는 9·11이 일어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요, 소련이 해체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요 하고 줄줄이 나열합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세계사적, 문명사적 전환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10년 전, 20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무슨 대전환이 일어날까 하고 말이지요.
새로운 밀레니엄이 된 지 한참이건만, 일상적인 삶은 우울하다거니 아득한 절망감마저 든다느니,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종말론적 분위기를 풍기는 발언들도 심심찮게 등장하지요. 백두산 화산이 언제 폭발한다더라, 외국의 한 초능력 소년이 2013년 대란설을 말했다더라, 등등.
숫자로 표시되는 연도의 변화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집단적 불안감이 불러일으킨 소동의 하나로 서양 중세사에서 유명한 `서기 천년의 공포'를 들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중세 유럽 사람들은 기원 1천년이 시작되는 순간 세계의 종말이 찾아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999년 말부터 땅을 치고 대성통곡하며, 또 참회도 하며 종말의 날을 기다렸지요. 1천년이 시작됐는데도 세상이 멀쩡한 것을 보자 오히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도 했고요. 무엇이 잘못됐나 하고 말입니다. 특히 재미있는 현상은 역법 체계의 차이로 서기 천년이 시작되는 시점이 지역마다 달랐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한 지방에서 사람들이 한동안 석고대죄하고 통곡하며 나날을 보낸 뒤 잠잠해지고 나면 다른 지방에서 큰 두려움 속에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지방에서 히스테릭한 소동이 시작됐지요. 하여, `천년의 공포'는 마치 너울거리는 큰 물결과도 같이 일었다 가라앉았다 하며 여러 지방을 차례로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크 블로크라는 유명한 역사가는 당시 사람들이 인류의 노쇠현상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이 현상이 사실은 `청년기의 격정' 같은 것이었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에, 무어라고요? 2011년의 사람들이 자기네를 놀린다고 서기 천년의 사람들이 화낸다고요?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로는 `서기 천년의 공포'보다는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말하는 `원형으로의 회귀'가 아무래도 좀더 그럴듯해 보인다는 생각도 듭니다. 끝없이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에 의도적으로 단절을 가하고, 우주창조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정신적, 영적 체험을 하는 것 말입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닐 테고 역사는 계속 진행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난마같이 꼬이고 얽힌 일들이 있다면, 차라리 시간의 흐름을 잠깐 멈추게 하고 신화적 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남북문제건, 경제문제건, 정치문제건 혹은 개개인의 문제건 말입니다. 그것이 뜻대로만 잘 된다면야 2011년은 특별히 개성적인 한 해의 이름이 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