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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호 2011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통찰과 리더십의 산실



 

 사람들은 새 천년, 새 세기를 맞아 꿈과 희망을 얘기했다. 인간의 이성과 지혜, 기술 발전에 의해 평화롭고 행복한 인류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새 천년의 첫 10년을 지나온 지금 그 같은 희망과 기대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인류의 미래가 과연 장밋빛일까라는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져 왔기 때문이다.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등 지구촌 곳곳은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졌다. 민족·종교 갈등은 증오와 폭력에 끊임없이 기름을 붓고, 헌팅턴이 경고했던 문명충돌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협력체제를 통해 폭력사태와 전쟁을 막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낙관적 자유주의는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결코 발전과 번영의 복음이 아님을 잘 보여줬다. 인류는 지금 빈부격차, 온난화 등 지구 환경문제, 고령화 등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난제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10년에 걸친 남북화해와 공존 실험이 좌초하면서 남북관계는 6·25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남북관계에 관한 한 역사는 진보가 아니라 후퇴의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양극화와 청년실업, 저출산·노령화 등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정치인들이 저마다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되는 게 없다. 사회집단간에는 토론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보다는 이기주의와 정서를 앞세워 증오와 갈등을 키워가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 리더십은 문제의 해결 주체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을 뿐이다.

 `게놈', `붉은 여왕' 등 과학저술로 유명한 매트 리들리는 최근에 내놓은 저서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 앞으로 1백년 인류는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류가 직면한 경제시스템 붕괴, 인구폭발, 기후변화, 테러리즘, 빈곤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낙관론을 받아들이기에는 지금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태가 너무 엄중하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욕구충족을 위해 달려온 인류 앞에 이제 가치와 목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때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학교가 법인화법 통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가장 우수한 인적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서울대가 이들을 최고의 인재로 키워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개인적인 바람은 서울대가 기존의 가치체계 내에서 세계의 주요 대학들과 경쟁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통찰과 리더십의 산실이 나의 모교 서울대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