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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호 2010년 12월] 기고 감상평

한·일 지식인 교류회에 즈음해



 1965년 당시 한·일 국교 정상화 때와 비교해보면, 비대칭적이었던 양국의 관계는 체제가치를 공유한 균형 잡힌 형태로 변화, 발전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일 양국의 사회적 인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실로 역동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한·일 양국이 선진국의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 원칙을 만든다면, 양국의 경쟁력 향상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경제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국은 각자 내부적으로 조정해야 할 난제가 있겠지만, 전반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경제동반자협정(EPA) 조기체결 실현 등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중국 상해EXPO를 참관했습니다. 그곳에서 무엇보다도 저를 크게 압도했던 것은 EXPO에 모여든 군중이었습니다. 하루에 1백만명이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것을 보고 힘이라고 할까, 아니면 氣라고 할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그 압도적인 숫자가 量에서 質로 변화된다면 어떤 형태가 될런지요? 게다가 중국은 전제국가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이점도 손에 넣은 통치모델을 세계에 과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0월 23일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개최됐습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극적인 타결에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주한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는 “한국이 G20 의장국으로서 수뇌정상회담을 개최하게 된 것이 정말 꿈만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한국이 한때는 외국의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였다가 이제는 세계의 정상들을 한 자리에 모아 국제사회의 핵심문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결과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에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한때, 중국에서는 `평화발전론'을 주장했지만, 사실 그것은 등소평이 주장한 `저자세노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싱가포르의 리콴유가 지적한 것처럼 “중국이 이제는 저자세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리콴유는 또한 “이제 앞으로 30∼50여 년간은 미국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것은 미국의 경제력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의 극적인 힘의 변동은 무엇보다도 경제와 금융의 격변에서 촉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도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하게 활약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산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키우는 일입니다. 그 중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육성이야말로 정말 중요합니다.

 문득 1970년대의 프랑스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과 당시 서독 수상 헬무트 슈미트의 우정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 슈미트 수상이 데스탱 대통령에게 밝힌 개인적인 비밀은 자신의 아버지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전쟁범죄나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보복이 계속되고 있던 한 가운데서 독일연방 수상, 더구나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독일 정치가 슈미트 수상이 유태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다는 고백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후일 지스카르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슈미트가 가슴 깊이 감춰뒀던 가장 중요한 비밀을 끄집어내 밝힌 것은 그야말로 유니크한 행동이었지요. 그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은 모든 정치적 파랑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과 한국, 한국과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적인 경쟁 속에서도 한 사람의 인간과 인간이 깊고 돈독하게 키워온 위대한 우정-지스카르와 슈미트 사이에서 맺어진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야말로 글로벌시대의 훌륭한 초석이 되지 않을까요? 〈日文國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