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호 2010년 1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鄭在貞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 취임하신 지 1년이 지났는데, 학교 계실 때와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일이 무척 많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퇴근 시간은 일정치 않고 토, 일요일도 없어요. 학술대회가 대개 주말에 열리거든요. 쉬는 날이 거의 없다보니 조금 힘들죠.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70여 명의 직원들이 매년 80여 개가 넘는 행사를 치르고, 60∼70권의 책을 발간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나 한국학중앙연구원처럼은 아니더라도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 언급하신 것처럼 국내에 국사 관련 연구 기관이 많지 않습니까. 사업 중에 겹치는 일도 있는 것 같은데, 동북아역사재단만의 특징이라면.
“상당히 많이 다르죠.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 사료 수집과 편찬이 주 임무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학의 본산이면서 한국학을 세계화하는 연구단체죠.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을 둘러싼 주변 국가와의 역사 갈등 문제를 조정하고 화해하는 일을 하죠.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역사 갈등이거든요. 한국사뿐 아니라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몽골 등의 역사도 연구하면서 어떤 점에서 견해가 다른가를 찾고 상대방과 논의하면서 견해의 일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합니다.
또 하나는 영토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특히 독도 하면 국민적 관심사 아닙니까.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이 해마다 되풀이되는데, 그에 대한 역사적 경위를 밝히는 것은 물론, 한국의 영유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논리를 강화하고 또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밖에 최근 크게 부각되는 것 중에 하나가 동해 표기 문제죠. 일본해로 돼 있는 것을 동해로 표기를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작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 통합되기보다 각자 역할을 계속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통합할 수도 없죠. 각 기관마다 본연의 임무가 있거든요. 특히 우리 재단의 경우 연구만 하는 게 아니고 정책 개발과 실행까지 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에 원인은 뭐고 경과는 어떻고 앞으로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해 줘야 하거든요.
그 다음 실행까지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교과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평소에 일본의 교과서 집필자나 편집자 또는 정부 관계자를 만나서 우리 의견을 전달합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심지어는 국제사회에 동해와 독도 표기를 확산시키는 일을 직접 하거든요. 매일 전 세계 사이트를 검색해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해당 관리자에게 연락해 시정작업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다른 기관에게 하라고 하면 하겠습니까. 할 수도 없죠.”
- 그럼에도 시민 단체인 `반크'보다도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그건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죠. 역사나 영토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라서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경우, 혹은 산하 기관이 나서는 경우, 오히려 상황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가 정면으로 부딪친 게 좋은 예죠. 그러면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구와 정책개발로 대응을 하면서 한편으로 하기 어려운 일은 NGO, 특히 `반크'와 긴밀하게, MOU를 맺어서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구한 자료를 제공하고 그분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거죠. 상당히 잘 짜여진, `윈윈' 게임을 하고 있다고 봐요.
사실 역사관련 NGO나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일은 우리 고유 업무 중 하나예요. 우리나라의 역사, 영토관련 시민 단체는 1백% 우리 재단과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고 실제적으로 지원받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 알려지면 결코 좋지 않기 때문이죠.”
- 말씀이 나오셨지만, 최근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갈등하고 러·일 간에도 북방영토를 놓고 분쟁 중이죠. 이렇게 갑자기 각 국간에 영토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서냉전이 심각했던 1980년 후반까지는 영토 문제가 동서 양진영 중 어디에 속하는 지에 따라서 컨트롤이 됐어요. 예를 들어 우리는 일본과 자유진영에 속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공산진영에 속한다, 이런 마인드 때문에 영토 문제가 세계 구조 속에 묻혀 있었죠. 냉전이 종식되면서 각 국가들의 내셔널리즘이 상당히 강화됐어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생긴 거죠.
또 하나는 1990년대 들어오면서 해양질서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12해리를 기준으로 하다가 2백해리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선포하니까 이제는 작은 섬 하나도 아주 중요해진 겁니다. 그 주변의 2백해리가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되면 상당한 영토가 확보되는 거 아닙니까.
세 번째는 자원 문제입니다. 요즘 자원확보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특히 육지 자원의 고갈로 인해 해양 자원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배타적 경제수역에 사활을 거는 거죠.”
- 동북아 지역에서 기존에도 동북아 안보체제나 그런 구상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영토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에도 동북아 국가끼리 협력체제를 구축한다던지 연구 협조를 할 필요가 있지 않나요.
“대단히 중요하죠. 사실은 그게 동북아역사재단의 존립 목적이고요. 우리는 인근 국가 간에 역사 갈등을 화해로 전환시키면서 대립과 갈등의 구조를 평화와 상생의 지역공동체로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그러려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돼요. `동아시아'라는 공통분모를 만드는 작업을 우리 재단이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우리 재단처럼 전문기관이 없어요. 다만 우리가 파트너로 삼을 수 있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등 몇몇 단체가 있어 그런 곳과 자주 회의를 합니다.
재단이 주체가 돼서 하는 것 중에 `동아시아史 포럼'이 있어요.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의 학자 30여 명이 매년 모여서 `지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죠. 그런 유사한 국제학술회의를 1년에 30회 정도 개최해요. 그런 것을 통해 확산되는 효과는 지금은 미미할지 모르지만 10년 정도 지나면 굉장할 거라고 봐요. 우리 재단이 국제사회에 뿌린 화해와 협력의 씨앗이 동북아시아의 상생과 공영의 새싹으로 움터 무성하게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 얼마 전 교수로 있는 친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일간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독도문제가 쟁점이 돼서 토론을 하다 보니 일본 학생들은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감정이 앞서 객관적으로 판정패를 당하는 느낌이 들더라'.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독도는 무조건 우리땅이란 인식이 강해 논리적인 교육이 안 돼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올해가 한국 강제병합 1백년이 돼서 한·일 대학생 20명을 선발해 교토에서 서울까지 한·일 관계의 중요지점을 답사하며 토론하는 행사를 가졌어요. 당시 한·일 주요 6개 신문사가 동행취재를 했는데 평가회에서 교도통신 기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종래의 한국 학생들은 한·일 역사관계에 대해 잘 알고 당당하게 일본 학생들을 꾸짖기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한국의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걱정하던 게 현실로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단에서는 독도 교육 홍보를 상당히 강화하고 있어요. 대학생을 대상으로 독도 아카데미를 열어 연 7회 정도의 강의를 진행한 뒤 독도에 직접 데려가 체험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렇게 양성된 학생들이 올해까지 1천2백명 정도 돼요. 또 전국에 20여 개 독도지킴이 학교를 지원합니다. 그밖에 독도 관련 부교재를 만들어 초·중·고교에 보급하는 일을 하죠. 여론을 주도하는 분들을 모시고 독도 탐방도 하고요.
독도 외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동아시아史'란 과목을 만들었습니다. 2012년부터 동아시아史가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부과가 돼요. 일본, 중국에는 없죠. 현재 재단에서 동아시아史 과목에 대한 지침이랄까, 자료도 만들어 주고 교사 연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현재 중·고교에서 역사 과목이 위태로운 수준이죠.
“심각합니다. 일반 교육에서 사라져 가고 있어요. 세계史 교육은 사실 전멸하다시피 했고요. 일본은 고등학교의 경우 세계史가 필수로 돼 있어요. 일본史는 선택으로 해 놨는데, 그래도 85% 정도가 이수를 한다고 해요. 이렇게 되면 역사인식 면에서 일본이나 중국 젊은이와 이야기할 때 밀릴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학생일수록 세계를 상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돼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다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거예요. 10년, 20년 이런 식으로 가면 정말 어떻게 될지 암담합니다.”
- 독도 홍보와 관련해서 좀 더 효과적인 방안이 강구돼야 할텐데요.
“사실은 내년 3월 말이면 일본의 교과서 검정이 발표됩니다. 일본이 현재 민주당 정부라 하더라도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한 두 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독도에 대한 이해도를 심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거든요. 해설서는 정부 고시이기 때문에 법률적 효과가 있어요. 일본의 교과서 필자들도 검정에 합격하려면 쓸 수밖에 없다고 그래요.
3월 말에 그 문제가 터져 버리면 지금 센카쿠열도를 놓고 대치 중인 중국과 일본의 상황처럼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걱정스럽죠. 일본의 경우 독도가 왜 한국 땅이 아닌지 조목조목 반박하는 10가지 포인트가 있어요. 그 대응 방안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왜 독도가 우리 땅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해요.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논리로 무장해 있어야 합니다. 재단 홈페이지에 방문하시면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어요. 꼭 들어오셔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독도 교육 홍보관도 생각 중인데, 예산 문제로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 얼마 전에 이야기를 들으니까 국회의원들도 예산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던 모양인데, 지금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비해 그동안 정부 지원은 미약했던 모양입니다.
“대개 우리와 같은 기관은 설립 당시에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지원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예산이 삭감되는 게 일반적이죠. 그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특히 현장에 가보면 알거든요.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고구려 유적지에 가보면 상당히 훼손된 것도 많고,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공방 중인데 오히려 예산이 줄면 나중에 부메랑이 돼서 국민들의 저항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잘 대비하라는 뜻에서 국회가 예산을 증액해주려는 것 같아요.”
- 아무래도 이사장님이 오셔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그런 게 아닐까요.
“그건 절대 아니고 우리 연구원,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준 덕분입니다. 특히 올해 우리 재단은 자부할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고 봅니다. 한·일 강제병합 1백년을 맞는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했어요. 국회의원, 언론인, 학자를 동원해서 심포지엄도 열고 정책 의견도 내고 이런 저런 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거의 매주 재단 활약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 이번에 일본에서 조선왕실의궤 일부가 사실상 반환됐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반환이냐 양도냐에 말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일단 돌려받는 것에 대해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란 점에서요. 일본에서는 조선총독부가 관여해서 강제로 또는 의도적으로 반출한 문화재가 있다면, 그 경위가 확실하다면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 동경 아카사카 오쿠라호텔 내 슈코칸이란 사설 박물관에 있는 `이천오층석탑'을 반환하겠다고 하더군요. 조선총독부에서 가져간 거라서 기록이 모두 남아 있어요.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반출된 문화재가 어떻게 나갔는지 경위를 파악하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거기에 맞춰 반환을 요구해야 실효성이 있습니다.”
- 아시안게임에서 중국과의 축구경기를 보니, 우리가 한·일전에 열광하듯이 중국사람들이 한·중전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동안 한·일간 문제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중국은 소홀했고 또 우리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한 경제교류는 중국과 많이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데, 양국 국민간의 이해확대 방법은 뭐가 없을까요.
“그게 우리 재단이 고민하는 것이고 나아가 정부도 그걸 가장 어려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봅니다. 외교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고요. 일본하고는 원한 관계가 깊고 여러 문제가 있지만, 패전 후 일본과 해방 후 우리나라가 같은 체제 속에 있으면서 어떤 면에서 공유하는 점이 많아요. 정부레벨에서는 싸우더라도 민간레벨에서는 의기투합해서 같이 행동하는 분들이 꽤 있죠.
그런데 중국은 그렇게 안돼요.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인데다가 일당 독재국가다 보니 정부의 역사인식과 배치되는 이야기를 하면 부딪치게 되요. 그걸 완화할 수 있는 시민레벨 또한 채널이 거의 없죠.
지금부터 그런 관계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중국의 학자, 학생, 오피니언 리더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회의도 하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신뢰를 쌓아 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개인적인 질문을 드릴게요. 이력 중에 동경대에서 한국사로 석사학위를 받은 게 특이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근대사, 특히 일제시기를 연구하고 싶었는데 식민지 시대사 연구는 국내에서 하기 힘들었어요. 첫째는 기피대상이었고 둘째는 핵심 자료가 없었어요. 지금은 국내에서 모든 자료가 수집되고 복간돼 나오지만, 당시에는 밖에 나갈 수밖에 없는 그런 측면이 있었죠.”
- 학창시절 연애담이나 에피소드는.
“아내를 학교에서 만났어요. 학과 후배(金順惠 역사교육71 - 75)예요. 소위 `CC(캠퍼스 커플)'였죠.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유롭게 손잡고 다니지만, 우리 때만해도 그렇게 하면 손가락질 당했어요. 학교에서는 모른 체 하고 지냈죠. 답사도 자주 다니고 그러다 보니 서로 감정이 생겨 결혼으로 이어졌죠.”
- 책을 많이 집필하셨는데, 요즘 구상하고 있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압축해 쉽고 재미있는 책을 써보고 싶어요. 뭐랄까 서울역은 수도의 창구이자 대한민국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죠. 또 해방 이후 한·일 관계에 대해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도 구상 중에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본회에서 추진했던 개교 원년 조정 사업에 대해 평가를 해 주신다면.
“뿌리를 찾는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높게 평가합니다. 1895년 법관양성소, 한성사범학교로 연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찬성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어떻게 보느냐와 관련된다고 봐요. 이미 조선 말기, 갑오개혁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이 성립되는데 그때도 사실은 우리 스스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고 교육입국 운동도 했거든요. 그래서 근대적 학교도 만들어졌고요. 그 움직임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없었다면 자연적으로 서울대로 연결됐을 거예요. 1907∼1908년 애국계몽기 때 민립대학 설립 운동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서울대의 전사를 19세기말로 연결해서 잡는 것은 무리가 없는 시도입니다. 서울대의 역사를 한국인 스스로가 추진한 근대 교육운동에서부터 기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옳다고 봅니다.”
〈사진·정리 = 金南柱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