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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호 2010년 12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2010년에 확인하는 '겨레의 대학'




 서울대학교총동창회는 2010년에 두 가지의 과업을 완성했다.

 첫째는 장학빌딩(동창회관)의 신축을 마무리한 일이다. 공식적인 준공일은 내년 봄으로 잡혀있지만, 서울 마포구 공덕동 오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이면 누구나 서울대학교 장학빌딩의 높고 산뜻한 새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지상 19층, 지하 6층에 연면적 21,272.75㎡로 높이 85.9m에 달하는 장학빌딩은 다른 고층건물들과 함께 하늘의 윤곽(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다. 총동창회가 신축계획에 착수해 5년 만에 쾌속으로 이뤄낸 성과이다.

 새 장학빌딩은 매년 커다란 순익을 내리라고 한다. 이 돈은 모두 재학생 장학금과 교수 연구비로 쓰기로 했으니 그 투자의 학문적 효과는 매우 클 터이다.

 두 번째는 서울대학교 개학 연도가 `1895년'이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모교의 뿌리 찾기를 완성한 일이다. 2년 전부터 총동창회는 林光洙회장의 주도아래 `正統과 正體性 - 서울대학교 開校 元年, 왜 바로 세워야 하는가'라는 단행본을 출간하는 등 개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마침내 모교가 총동창회의 제안을 검토해 개교와 개학 연도를 분리하는 절충안을 채택하고 1895년을 `개학 연도'로 결정한 것은 지난 10월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1895년은 파란만장한 한해였다. 이 해 5월에 조선정부는 전문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를 개학했는데 그 1회 졸업생 중에는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던 李 儁열사도 있다. 이후 법관양성소는 법학교-경성전수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으로 이어진다.

 1895년은 왜적이 궁궐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전국적인 의병운동이 촉발된 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1895년은 단순히 서울대학교의 개교 원년을 되찾는 한해가 아니다. `겨레의 대학'으로 거듭나서 민족의 숨결을 계승하라는 임무를 부여하는 한해이다.

〈安炳璨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