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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호 2010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한국전통문화학교 金 奉 建총장





 전통문화라고 하면 흔히 `보수적이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특히 각박한 현실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씨름하다보면 전통문화의 가치는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문화가 없는 민족은 결코 오랫동안 번성할 수 없었다.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일을 경제적인 개념으로만 따질 수 없는 이유다.

 영국, 프랑스 등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들은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우리나라도 현대에 들어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심에 金奉建(건축74 - 78)동문이 있다.


 지난 10월 19일 한국전통문화학교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金동문은 1983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문화재와 인연을 맺었다. 20여 년의 세월동안 유난히 굵직한 일들을 많이 맡았는데 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장으로 있을 때는 불국사, 석굴암, 창덕궁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필요한 실무를 맡아 성공시켰다. 또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지을 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세계건축가협회(UIA)와 함께 국제 공모전을 개최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가 있었던 일은 1990년대 초 정부가 발표한 경주고속전철 건설계획을 수정케 한 일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주의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고속전철 건설계획을 발표했는데 金동문이 이끄는 연구팀이 끈질긴 연구와 노력 끝에 이를 백지화하도록 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천년 가까이 수도의 자리를 지킨 도시는 흔치 않아요. 그런 면에서 경주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도시죠. 그런 도시의 심장을 관통하는 고속전철이 생긴다니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반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무런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해선 안 되잖아요. 그래서 문화재연구소에 있던 우리팀이 6개월 정도 야근하면서 경주 외곽으로 고속전철을 돌리는 방안을 만들어 제시했어요. 학계와 언론이 지지를 많이 해줘서 결국 우리가 만든 계획안이 정부안으로 채택됐죠.”

 이 사건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논쟁에서 최초로 보존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면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바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전에는 건물 하나, 유물 하나 등의 단일 요소를 문화재로 보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문화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이다.

 “우리가 제시한 계획안은 하나의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으로서 인정하고 보존하도록 한 최초의 정책이었는데 그것이 성사돼 정말 기뻤어요. 문화재 관련된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기도 했죠.”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화재 전문가이지만 金동문이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됐다. 1985년부터 2년 간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시절, 金동문은 주말이면 오픈마켓에 놀러가곤 했다. 그때 유독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는 작은 생선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1백년의 전통을 지닌 가계였다고 한다. 그 작은 가게를 통해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조차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됐고, 이는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자국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영국인들의 마음이 `비틀즈'와 같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후 문화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 귀국 후에 우리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일에 전념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후 金동문은 문화재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면서 한국전통문화학교 설립에도 참여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를 만드는 근거법인 `설치령'을 만들고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짰다. 그렇게 설립된 한국전통문화학교에 10여년 만에 다시 돌아와 총장으로 취임하게 된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이전에 제가 계획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라고 제게 큰 임무를 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막상 학교에 돌아와 보니 문화재 관련 전문 인력을 육성한다는 당초의 취지와 달리 실기교육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앞으로 현장 실기교육을 강화해 기존의 대학들과 차별화된 전문 인력을 길러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진취적이고 개방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교양 강좌를 다양화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우리 학생들이 비록 전통이라는 것을 한 손에 쥐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으로 사고하기를 바랍니다. 전통문화를 공부한다고 해서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글로벌한 인성을 가진 인재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국내 최고의 문화재 전문가인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문화재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우리의 문화재 중 종묘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종묘대제를 통해 아직도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는 종묘는 과거와 현재의 삶이 함께 얽혀 있는 문화재라는 이유에서였다.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종묘는 평소에 쓰는 공간이 아닌, 죽은 자들을 위한 곳이에요.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종묘 앞에 가면 경건함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죠. 수평적으로 길게 뻗은 공간만으로도 절제의 미를 느끼게 해주는 종묘는 유교 건축의 백미이기도 하지만, 다른 문화재와 달리 아직도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문화재들이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과는 다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종묘는 굉장히 중요한 문화재라 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종묘의 경우처럼 진짜 문화재라면 하드웨어인 유형문화와 소프트웨어인 무형문화가 조화를 잘 이뤄야한다고 말했다. 오래됐다는 외형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아낼 수 있어야 진정한 문화재라는 것이다. 전통문화 보존이라는 과거 속에 살지만 늘 새로운 생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그이기에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된다. 〈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