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호 2010년 11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문학번역과 국가브랜드

국경이 느슨해진 글로벌 시대를 살면서 이제 국제경쟁력과 국가브랜드는 문화 차원을 넘는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는 세상이 됐다. 한국도 이른바 한류를 통해 문화의 경쟁력이 상당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문화 장르의 중심에 있는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까닭에 세계 문화시장에서 숙명적인 핸디캡을 안고 있다. 한국어는 운명적으로 소수자 언어이기 때문이다. 소수자 언어를 극복하고 메이저 언어에 끼어서 함께 뛰어야 한다는 당위는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절체절명의 명제가 되고 그 방법으로서의 번역은 중대한 사명으로까지 인식된다. 다른 일반도서와 달리 문학작품이 과연 번역될 수 있겠느냐 하는 고전적인 딜레마도 이제는 운명적인 것처럼 간주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번역의 딜레마란 원전의 의미를 어떻게 그대로 지키면서 옮길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지키면서 옮기기는, 한마디로 말해서 불가능하다. 언어는 곧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사고는 같아도, 방식이 다른, 다른 언어를 통해 사고방식 자체를 똑같이 복원한다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며, 또 무의미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번역의 주체이며, 주체적 문학관이다.
이제 번역은 원문 중심, 생산자 중심에서 벗어나 당해국 언어, 전통, 관습에 능숙한 시각에서 그곳 소비자 중심으로 가슴을 열어야 한다. 그들이 읽고 그들이 감동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도 해석의 키를 줘야 한다. 현지 독서소비층들을 위한 새로운 번역가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정부산하 공공기관으로서 한국문학번역원은 2001년 발족 이후 지금(2010년 9월 현재)까지 29개국 언어로 된 5백62종의 문학작품을 번역 지원했고 이중 4백37종이 출간됐다. 그 이전 번역금고(1996년 5월 6일 발족) 시절과 문예진흥원 시절까지 합산하면 8백종을 상회한다. 한국문학이 한국어로 쓰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감안할 때, 이러한 수치는 괄목할만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성과는 몇 가지 요소를 전제로 성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첫째는 이른바 콘텐츠를 구성하는 한국문학 자체의 질적, 양적인 발전이다. 다음으로는 역시 번역가들의 놀라운 성장을 거론할 수 있다. 영어를 비롯해 오늘 접촉, 번역 가능한 국내외의 번역가들은 그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다수(물론 이들 중 대부분은 현지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경우다)인데, 한국어로 된 작품을 외국어로 옮기는 번역가들(최소 한 권 이상의 실적이 있는 분들)은 약 2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른바 기성 번역가들로서, 차세대 젊은 번역가들을 포함할 경우의 숫자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한국문학번역원에는 번역아카데미가 개설돼 있어서 차세대 번역가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2006년 개설 이후 연인원 2백명 가까운 학생들이 이 과정을 수료했거나 이수 중에 있다.
정규과정, 특별과정, 단기과정, 심화과정으로 운용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어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한국어가, 외국어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외국어가 강의되면서 번역에 필요한 조화로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한국문학에 대한 열정, 그것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다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 열망의 끝에 문화선진으로서의 한국의 얼굴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