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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호 2010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이제는 노벨상을 기대하며



 필자가 모교인 서울대에 갖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은 관악1회 졸업생이란 것이다. 1972년 입학해서 교양과정부를 저 멀리 공릉동에서 다니고 본과인 사범대를 용두동에서 2년을 다닌 뒤에 관악캠퍼스가 처음 문을 연 1975년에 이사를 와서 1976년 2월 26일 첫 졸업식을 운동장에서 했으니 관악1회 졸업생이라고 자랑해도 하자가 없을 것이다. 그런 모교를 자주 찾을 기회가 없었지만 지난 봄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을 때에 교수회관 옆 솔밭식당에서 우리 영어교육과동창회에 참석하느라 교정을 돌아보니 보통 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몇 년 동안 외지에 나가 있다가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찾아보면 가장 놀라는 것이 교사와 교실이 너무 작고, 그렇게 넓어보이던 교정이 줄어들어 마치 난장이 마을에 온 것 같아지는 것이라는데, 근 35년 만에 다시 찾은 교정은 곳곳에 나무들이 자라고 우거져서, 예전 삭막하게 보이던 강의실 앞 창문에 나뭇가지들이 걸려 운치를 더해주는 것이, 이제야말로 첫 이사 때의 그 어색함을 벗고 완전히 역사가 있는 아카데미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자란 것은 나무의 키만이 아니었다. 필자가 2001년 영국 런던의 특파원으로 있을 때에 더 타임스 신문에서 본 모교의 대학순위는 세계 1백50위 언저리였지만 2005년 처음으로 1백위권 안으로 들어온 뒤에 2009년 47위까지 올라갔다. 2010년 올해는 평가기준이 논문의 인용수를 새롭게 추가하는 바람에 순위가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는 50위권 안으로 평가받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외국에서 매긴 대학 순위가 보편적인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모교가 국제적인 수준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모교의 키가 많이 자랐다는 뜻이라고 하겠다.

 가을이 돼 모든 나무의 잎이 떨어지면 비로소 나무의 실체가 드러난다. 작은 나무들의 잎에 가려 진정한 크기를 몰랐다가 작은 나무들 사이에서 멀리 우뚝 서 있는 큰 느티나무를 발견하는 것처럼 우리 모교의 키가 학교 졸업 35년 후에 그처럼 커진 것을 확인하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 듬성듬성하던 강의실과 연구실 건물이 관악산 골짜기를 꽉 메웠고, 밤에도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는 모습에서 다시 우리 사회의 큰 느티나무가 된 것이리라.

 느티나무는 오랜 연륜의 상징이다. 느티나무는 많은 이들에게 휴식과 성찰을 준다. 반세기 이상 머물렀던 옛 교정을 떠나 관악산에 둥지를 튼 지 35년, 관악캠퍼스는 아주 큰 느티나무다.

 어느덧 2010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다 발표된 이제 서울대학교라는 느티나무에서 모교 출신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쾌거로 학문의 열매가 새롭게 맺히기를 기대해본다. 사실은 상보다는 그만큼 국제사회에 대한 큰 공헌을 기대하는 것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