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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2010년 10월] 문화 꽁트

관계의 構圖




 박 기사는 자신의 택시가 뿜어내는 흰 전조등 불빛이 생맥주집에서 새어나온 불빛과 맞닿는 인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삼십 대 중반의 남자를 차도로 밀어내며 박 기사의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른손에 포장된 치킨을 든 삼십 대 남자는 취기를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면서도 왼손만큼은 중년 남자의 팔을 끼고 놓지 않았다.

 박 기사는 중년의 남자 가까이로 천천히 택시를 몰아갔다. 그들의 실랑이를 마냥 기다리기에는 주위가 너무 심심했다. 아파트 상가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생맥주집과 차량이 끊긴 길에서의 두 남자를 제외하고는 바람의 흐름만이 살아 있을 뿐이었다. 교대시간도 넉넉한 참이라 무료함이 더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택시가 다가드는 소리에 삼십 대 남자가 흘낏 돌아봤다. 아뿔싸, 그 틈을 비집고 중년인이 삼십 대 남자의 옆을 지나쳐 택시로 다가서서는 택시의 뒷문을 열어 젖혔다. 아주 순간적인 일이었고 그 결과는 차문이 열린 것 하나가 다였다. 그러나 그 변화에 삼십 대 남자는 저항의 의지를 잃고 중년인이 떠미는 대로 비틀대며 택시로 내몰렸다.

 “제발 …, 부탁드립니다”

 오른손에 치킨 포장 백을 든 삼십 대 사내가 왼손으로 택시의 지붕 쪽을 짚으며 버티고 서서는 혀 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이를 말인가. 내가 오죽하면 그러겠어. 조금만 기다리라구. 일이야 곧 있지 않겠어?”

 말을 하면서도 중년인은 삼십 대 남자를 차 안으로 밀어 넣으려 용썼다. 삼십 대 사내는 중년인의 완력에 밀려 맥없이 차 안으로 쓰러졌다. 중년인에게 다짐 놓고 싶어하는 사내가 몸을 일으키려다 탕 하고 닫히는 차문에 막혀 맥없이 고개를 떨궜다.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

 박 기사는 손님이 타고 내릴 때마다 사뭇 묘한 감상을 느꼈다. 택시를 기다리는 잠재적 고객은 인도를 걷는 다른 인간 군상과 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택시 차창을 하나 사이에 두고 그의 공간과 완벽하게 차단된 다른 세계의 인간일 뿐이었다. 그 군상 중의 하나가 택시의 문을 여는 순간, 차단막에 구멍이 뚫리며 비로소 자신과 관계된 한 인간이 탄생했다. 그 인연이라야 `어디 갑시다'하면 `예' 하고 차를 몰아가는 것밖엔 아니었다. 숱한 손님이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일상의 사소한 인연인데, 그로부터 발생되는 감상이 왜, 일상의 감상처럼 의식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는지 박 기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손님이 택시 문을 열고 그의 영역에서 물러날 때도 그랬다. 구체적인 한 사람이 다중 속으로 섞여들어 자신과의 인연을 끝내는 그 반복되는 과정이 습관처럼 그저 자연스러워야 당연했다. 차창과 차문이라는 차단막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숱한 과정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의식 밖의 일이어야 옳았다. 그러나 박 기사는 익명의 누군가가 익명의 손님이 될 때 마치 자신의 옷매를 뚫고 가슴을 훑는 손길처럼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예민한 성격 탓인지도 몰랐다. 뒷자리 손님 혹은 손님들과의 사이에 놓인 등받이 하나가 마치 차창이나 차문의 차단막처럼 그의 신경을 위무해주는 걸로 미뤄 다른 이유는 없어보였다. 간혹 앞자리를 고집하는 손님을 맞을 때 느껴야 하는 불편함만 봐도 그랬다. 투명한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구별해낼 수 있는 그의 `예민한 성격'은 낮은 등받이라는 불완전한 차단막조차도 완벽한 차단막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손님과의 실재적인 관계를 이어주는 룸 미러에는 이 불완전한 차단막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뒷자리 손님을 편안히 맞을 수 있는 것이 등받이 때문이라는 그의 결론은 현실을 떠난 심리적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룸 미러를 통한 간접적인 맞시선-그가 보는 것은 손님의 상체 전체이지만 손님은 그의 눈밖에 볼 수 없다는 그 맞시선이야말로 그가 느끼는 편안함의 원인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 기사가 `성격 탓'을 하는 이유는 야릇한 감상을 정면에서 해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룸 미러에 역시나 등받이에 방해되지 않는 손님의 모습이 있었다. 사내는 취기 탓인지 머리를 뒤로 기대어 눈을 감은 채 무릎 위의 치킨 봉투를 꼭 끌어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대동 아파트요' 하고는 내내 그 자세인 사내가 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차창을 열었는데도 차 안에는 튀긴 닭고기 냄새에 묻어 역한 페인트 냄새가 가득했다. 아마도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일 터였다. 목욕을 하고 나선 길이겠지만 오랜 직업이 가져다준 인생경로처럼 그의 몸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냄새일 것이었다.


 “저는 말입니다, 손님. 오늘 기분이 좋습니다.”

 박 기사는 룸 미러를 흘끔 살피고 상대를 의식한 말문을 열었다. 앞자리 앉았던 젊은 남자 손님을 제외하고 뒷자리에 앉았던 모든 손님에게 똑같이 말을 건네 왔으면서도 전혀 질리지 않는 음색이었다. 때론 손님이 일찍 내려 말을 끝내지도 못했고 어떤 손님에게서는 핀잔만 들었던 뒤라 그만할 법도 했으나, `예민한 성격'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부정하는 또 하나의 행위를 그는 서슴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일, 그녀를 만납니다.”

 룸 미러의 손님은 반응이 없었다. 박 기사는 예상했다는 듯이 손님을 무시한 채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벌써 이십 년이 지났습니다만 …,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입니다.”

 박 기사는 서울 변두리 고지대에 살았는데 그가 사는 집 바로 아래 한 학년 밑 여학생이 살았다. 그의 방에서 창을 열면 한 자 건너 한 자 아래가 바로 그녀의 창이었다. 올려보고 내려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그녀의 슬픔을 매개로 손을 맞잡고 올려보고 내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리고 한 자의 높이와 한 자의 거리는 그녀의 집에 계부가 들어서면서 허물어졌다. 술주정뱅이에 노름에 빠졌던 계부와 여관 카운터 일을 맡게 된 그녀의 어머니가 집을 비우면서 둘은 남몰래 그녀의 집을 신혼집으로 삼을 수 있었다. 가족의 불행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절대적이었다.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녀의 졸업을 기다리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해댔지만 그녀의 계부가 밑 빠진 독이라, 벌이란 벌이는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 그의 계부에게로 건네졌다. 저축 하나 하지 못한 채로 입대를 하게 된 그가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기고 제대를 했을 때, 마구 흐느끼며 중병에 걸린 어머니의 수술비를 위해 돈 많은 남자의 아내가 된 처지를 털어놓는 그녀를 마주해야 했다. 그 후로 그는 악착같이 돈 버는 일에 매달렸다. 제법 목돈이랄 수 있는 적금 만기가 다가올 시점에 그의 앞에 나타난 그녀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 덕에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며 역시나 흐느꼈다. 적금을 해약한 후에 그는 돈벌이가 되는 중동의 건설 현장으로 떴다. 반 년 후 눈물로 얼룩진 편지지에는 큰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돈이 없다는 사연이 절절했고 역시나 그가 받는 월급은 모두 그녀에게로 송금됐다. 귀국 날짜를 연기해가며 중동에 있다가 귀국한 후 택시를 모는 그에게 그녀는 때때로 멍든 얼굴로 나타나 능력은 없지만 자상한 남편을 얘기하며 울었다. 하룻밤 그에게 안겼다 아침을 맞은 그녀는 그의 품에서 한없이 울다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발길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는 얘기였다.

 “한 달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합니다. 초기라서 다행이지요.”

 말을 마칠 때까지 박 기사가 룸 미러로 확인한 사내는 처음 자세 그대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 기사는 익숙한 레퍼토리를 쏟아냈다.

 “내일, 그녀를 만납니다. 주위에선 저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하지요. 낫살이나 처먹어서 뭐하는 짓이냐고, 뒤에선 병신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도 압니다. 손님, 손님이 보시기에도 제가 이상한 놈입니까?”

 대답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박 기사는 룸 미러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하 -, 몇 동으로 모실까요?”

 “뒤로 돌아주세요.”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내가 불쑥 말을 받았다. 박 기사는 의외라는 얼굴로 룸 미러를 봤다. 사내는 치킨 봉투를 부여잡고 고개를 세워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사내의 머리칼이 다소곳이 흔들렸다. 밖에서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도 튀김기름 냄새와 술 냄새, 페인트 냄새가 어우러진 차내의 공기를 정화시켜 주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유입돼 들어오는 공기의 신선함 때문에 무뎌지는 코의 감각이 되살아나 악취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를 돌자 길게 드리우는 전조등 불빛 앞에 허름한 가옥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사내가 차문을 열었다.

 “전화를 하시지요. 사모님께서 수고하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아이가 깰까봐요.”

 사내는 치킨 봉투를 부여안고 차에서 내렸다. 박 기사는 차를 돌리는 척 하며 사내의 발길 따라 전조등을 비췄다. 아파트 담에 붙은 가로등 불빛은 조명 역할을 하기에는 사내로부터 너무 멀었다. 사내의 앞, 다닥다닥 붙은 가옥 가운데 하나에서 불빛이 켜졌다. 택시 소리와 전조등 때문에 사내의 아내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아니면 남편을 기다리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아낙이 몸을 일으키느라 불을 밝혔는지도 몰랐다.

 사내의 모습이 집안으로 사라진 즈음, 박 기사는 핸들을 돌렸다. 룸 미러를 거쳐 뒷유리를 지나 손에 지폐를 든 사내가 비틀거리며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다. 박 기사는 쫓기는 사람처럼 가속 페달을 밟았다. 만원 가까운 택시비가 사내나 그의 가족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인지는 몰라도, 박 기사는 룸 미러로 보이는 불 켜진 집이 차창의 차단막에 걸리지 않은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