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호 2010년 10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다. 국치 1백년을 맞으면서도 건국기념일이 언제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도출해내지 못했을 정도로 여론도 분열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같은 민족이고 비슷한 자연적, 국제환경적 여건에 놓여 있던 남과 북이 삶의 질로 볼 때 비교가 안될 정도로 차이 나는 나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었을까? 그 차이에 대한 설명의 열쇠는 두 나라의 정치 체제의 성격 차이에서 밖에는 찾을 수 없다. 남쪽은 1948년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독립함으로써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개발해 발휘하도록 하는 나라가 됐던 반면 북한의 체제는 소수의 지도층을 위해 다수의 인민이 억압당하는 체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은 독립과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던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이룩했던 것이다.
혁명의 제일 요건은 현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부정이 대안 이데올로기를 낳고 권력 주체와 권력 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다. 하지만 혁명의 목적은 낡은 껍질을 벗는 것뿐 아니라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있다. 구체제를 폭력으로 파괴해도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하면 그 혁명은 실패하는 것이며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 혁명으로 평가받는데 비해 러시아 혁명과 그 이데올로기가 실패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척도로 볼 때 1945년 해방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선포로 이어지는 전 과정으로서의 대한민국 건국은 성공한 혁명의 조건을 여러 겹으로 갖추고 있다.
첫째, 우리는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뿐 아니라 미군정 체제에서도 벗어나 독립을 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주권국가가 됐다. 둘째, 왕정 치하의 `백성'이나 일제하의 `신민'으로 살던 경험밖에 없던 우리는 하루 사이 `국민'으로 승격했을 뿐 아니라 남녀 모두가 자유롭게 평등하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진 시민이 됐다. 셋째, 이 공화국이 채택한 이상과 이념은 공산주의나 군국주의적 집산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인격과 재산권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였다.
정치적으로 볼 때 1948년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미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우리의 건국혁명도 다른 나라 혁명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구한말의 여러 형태의 구국 운동,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국내외 독립 투쟁 등 긴 준비기간을 거쳤고 혁명 이상이 현실로 구현되기까지는 건국 후로도 많은 시간과 때로는 폭력까지 수반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6·25전쟁, 4·19, 5·16, 5·18 등 심각한 시련과 곡절, 정권교체와 부분적 개헌을 거치면서도 건국헌법의 이상과 정신이 자체로서 부정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해방을 기조로 하는 헌법체제는 국민적 총 역량의 비약적 증가로 그 위력을 발휘했다.
건국혁명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가 남한으로 제한됐다는 사실은 건국의 환희와 그 혁명적 의미마저 잊게 할 만큼 뼈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적용범위가 제한됐다고 해서 그것이 가지는 긍정적, 혁명적 효과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함을 이 나라의 발전상을 눈앞에 보는 사람은 부정하지 못 할 것이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하면 북녘의 동포들도 그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