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朴鍾哲 고문치사 사건'을 잘 아는 동문이라면 吳演相(의학75 - 81)내과 원장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朴鍾哲(언어84입)동문이 죽었을 때 사망 선고를 한 의사로, 물고문이 자행됐던 당시 대공분실 509호의 상황을 언론에 밝혀 '朴鍾哲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해 吳동문은 한국기독교협의회에서 제정한 '제1회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朴鍾哲사건'때 중앙대병원 전임강사였던 吳동문은 이후 교수 생활을 하며 당뇨 예방에 힘써 왔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WHO 아시아ㆍ태평양지역 당뇨예방사업단장을 비롯해 중앙대병원 당뇨센터장, 대한당뇨병학회 총무이사 등을 맡았고 KBS 건강프로그램인 '비타민'에 출연했다.

 그런 吳동문이 최근 노래와 무협지를 당뇨 치료ㆍ예방 비책으로 들고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朴鍾哲사건' 언론에 밝히기도

 지난 8월 20일 서울 흑석역 인근의 개인 병원에서 만난 吳동문은 지인들에게 나눠줄 당뇨예방 노래 '힘내라 당뇨인' CD를 굽고 있었다. 기자에게도 한 장을 건넸다. 노래를 만든 사연에 대해 묻자 바로 반주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인생 백세 길다 하지만, 골골 백세 정말 힘들어. 백 평짜리 아파트 살면 뭐하나, 내 몸 속은 엉망인걸. 당뇨체질을 속상해 말고 나의 하루 되돌아보세. 건강, 불행, 행복의 선택 내게 달렸네. 내 몫이 칠할, 의원은 삼할, 判雅洗我尊(올바름을 판단해 나를 씻고 존귀하게 만들자)"

 흥겨운 중국 민요 리듬에 북소리가 가미돼 귀에 착착 감겼다. 吳동문은 "아시아에서 1억장 이상이 팔린 대만의 국민가요 '애평재회영'을 개사해 만들었다"며 "한 번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아주 중독성이 강한 노래"라고 소개했다.

 "노래만큼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빨리 다가가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도구가 없는 것 같아요. 제 바람은 당뇨병 환자가 줄어드는 것이거든요. 당뇨 진료를 잘 한다고 해서, 좋은 논문을 발표한다고 해서 환자 수가 줄어들지는 않아요. 예방을 통해서 줄일 수 있죠.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중독성이 강한 노래를 선택해 당뇨 예방에 나서게 됐어요."

 吳동문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당뇨 환자고 10%는 당뇨가 될 수 있는 위험군에 속한다. 이 정도 수치면 가족 당 한 명 꼴로 당뇨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당뇨는 인슐린이 부족해 걸리는 병으로 오랜 기간 고혈당 상태가 유지되면 실명, 신장기능 장애, 신경병증 등이 나타난다. 당뇨의 원인으로 고열량ㆍ고지방ㆍ고단백의 식단과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을 꼽고 있다.

 "당뇨만큼 생활습관과 밀접하게 연관된 질병이 없어요. 한 입 먹는 거에 따라 몸에 변화가 오잖아요. 달리 말하면 생활습관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습관을 고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마음을 움직여야 습관도 바꿀 수 있을텐데 이를 위해 노래와 무협지가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吳동문이 언급한 무협지 '大糖俠 傳記'는 현재 시니어포털사이트인 유어스테이지(www.yourstage.com)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 유어스테이지닷컴을 운영하는 시니어파트너즈 김형래 상무는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가 좋을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이 소설은 吳동문의 부탁을 받아 중앙고 선배인 오현길 작가가 썼다. 吳동문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이야기 줄기를 잡는데 자문역할을 했다. 등장인물은 당뇨병 치료제 인슐린에서 따온 '인수린' 그리고 '자생력', '무가당', '적정량'. 그에 대항하는 敵은 '함박아', '피자', '소시지' 등이다. 우리말과 영어 표현을 음차한 것이다. 이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지만 재미를 더할 뿐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무협소설의 기본을 유지하면서 당뇨 정보가 있고 혈당 관리 요령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10명 중 2명은 당뇨 위험군"

 무협 장르 선택에 吳동문의 개인적 취향도 한 몫 했다. 吳동문은 중고등학교 시절, 번역돼 연재되던 무협지를 기다릴 수 없어 원본까지 찾아 읽었을 정도로 무협지 마니아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했지만, 당뇨를 이기는 건 초인에 가까운 의지와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협지 주인공과 맞는 부분도 있고 당뇨를 앓는 많은 사람들이 무협지를 좋아했던 40, 50대층이라 이 장르를 택하게 됐어요. 소설을 통해 당뇨 치료와 예방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吳동문은 지난해 초 25년간 몸담았던 중앙대병원을 나와 개인 병원을 열었다. 어떤 이들은 개원의로 나서면서 한 번 튀어 보려고 이런 일을 벌인다고 수군거렸다. 吳동문은 주변의 이런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에서 당뇨에 대해 강의를 하다보면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졸고 있고요. 환자들 역시 평생의 습관에서 반대 방향을 권장하니까 듣는 순간 반감을 갖더라고요. 방법을 달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노래와 무협지죠. 여기에 무슨 영리적인 목적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당뇨 환자들이 줄어들면 의사인 저만 손해보는 길인데요."

 앞으로 吳동문은 병원 홈페이지(www.oys.kr)에 '전자 당계부'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환자 개인이 하루의 일과, 가령 기상 시간, 식사 내용 및 시간 등을 슬라이딩 바를 이용해 간략하게 입력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진료하는 시스템이다.

 "무협지 결말을 보면 주인공 인수린이 당뇨 무리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본인도 당뇨에 걸립니다. 스승인 지바고 도사가 인수린에게 무승당비결이란 책자를 건네줘요. 책을 받아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백지에요. 지바고 도사가 이렇게 말해요. '그 안에 너의 하루를 적어봐라. 식사시간, 운동시간, 수면시간, 주사 횟수 등을 자세하게 적다보면 나중에 네가 필요한 것이 나올 것이다' 그 내용을 현실로 구현한 거예요. 당뇨 치료는 자기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소설 연재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전자 당계부' 서비스를 할 예정입니다."

 吳演相내과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조만간 의사와 간호사가 출연하는 '힘내라 당뇨인' 뮤직비디오도 볼 수 있다. <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