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호 2010년 8월] 문화 꽁트
위대한 탐험가

그는 탐험가다.
이 세상에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 치고 그가 모르는 곳은 하나도 없다. 그는 아마존 강의 밀림을 답사했으며,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으며, 에베레스트 산을 가장 험난한 코스로 알려진 남북벽을 타고 등정했으며, 태평양을 동서남북으로 항해했으며, 북극과 남극의 꼭지점에도 서 보았다.
우리가 흔히 오대양 육대주라고 일컫는 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아프리카 남단에는 희망봉이 있고 또 그곳을 경계로 바다가 대서양과 인도양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길이가 4,100km이고 유역면적이 98㎢에 달하는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발원지는 손바닥만한 옹달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남극대륙에도 지의류와 진드기류 따위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그를 위대한 탐험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을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와 페르디난드 마젤란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로알드 아문센 등 역사상 뛰어난 탐험가들과 나란히 놓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이 약점은 실로 치명적이랄 수 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면 열 번, 백 번, 아니 천 번도 넘게 죽고 또 죽었을 만큼 온갖 고난과 갖가지 위험을 겪으며 이 세상 곳곳을 찾아다니고, 그 많은 발견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자산을 인류에게 제공했음에도, 그가 끝내 역사상의 인물로 남기는커녕 우리에게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까닭은 바로 그 약점 하나 때문이다.
그 약점이 무엇이냐고? 현명한 독자라면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단 한 번도 그곳에, 그가 탐험하고 발견한 곳에 실제로 가본 적이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탐험은 나침반과 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책과 공상으로 이뤄진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그가 스스로 주장하고 있고 또 원통하게 여기고 있다시피,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아메리카를 발견한 아메리고 베스푸치, 아프리카 횡단에 성공한 헨리 스탠리, 북극점에 첫 깃발을 꽂은 로버트 피어리 등등 그 위대한 탐험가들보다 언제나 이 세상에 한 발 뒤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에 제임스 쿡 선장보다 먼저 태어났더라면 오스트레일리아는 다른 이름으로 우리의 영토가 됐을 것이다. 그가 프란시스 피사로보다 먼저 태어났더라면 잉카 왕국은 우리의 식민지가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언제나 그들보다 뒤늦게 이 세상에 태어났고, 따라서 언제나 그들에게 선수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이리저리 살피며, 아마 이곳은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니까 아무도 가본 적이 없겠지 하고 책을 뒤져보면 2백년 전에 벌써 존 스튜어트가 다녀간 사실이 있고, 또 저곳은 하도 험난한 오지니까 아무도 감히 찾아갈 생각을 못했겠지 하고 다시 책을 뒤져보면 베이커 부부가 1백년도 전에 벌써 다녀간 일이 확인됐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탐험가란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러한 그에게 미지의 세계, 인류 미답의 세계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탐험가다운 불굴의 의지와 꺼질 줄 모른 정열이 있었다. 그는 아침에 눈만 뜨면 지도를 펼쳐놓고, 사람의 발자국이라곤 한 번도 닿아본 적이 없는 곳을 찾는 데 열중했다. 여기는 어떨까 저기는 어떨까 하고 점찍은 다음, 혹시 다른 사람이 먼저 다녀간 사실은 없는지를 온갖 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그러고는 실망하고, 그러나 다시금 용기를 북돋우며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그러기를 거듭하면서 살아왔다.
그는 비록 한 번도 실제로 찾아나서본 적은 없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경험 많은 탐험가였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원정했으며, 마르코 폴로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중국에 이르는 대모험을 즐겼으며,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항해한 끝에 미국땅을 밟았으며, 필리핀의 한 섬에서 원주민의 창에 찔려 죽은 마젤란의 최후를 지켜보았으며, 코르테스의 원정대를 따라가 아스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비록 서책과 공상을 통한 탐험과 모험의 길이었지만, 그 속에서 그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겪었다. 눈을 감고도 태평양을 항해할 수 있고, 나침반이 없이도 북극점에 도달할 수 있고, 쌀 한 줌 없이도 알프스를 넘을 수 있을 터였다. 그야말로 그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한 탐험가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에게는 찾아나설 미지의 세계가 없었다.
아아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격언은 정녕코 헛말이 아니었다. 마침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곳, 아니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조차 못해본 곳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그곳을, 펼쳐놓은 지도에서가 아니라, 지구의를 심심풀이로 돌리다가 찾아냈다. 이제껏 탐험가들이 찾아가 발견한 곳들은 하나같이 지구 표면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막 탐험의 목적지로 점찍은 곳은 지구의 겉이 아니라 그 속에 있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지구의 중심이었다. 그곳은 분명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전인미답의 세계였다. 위대한 탐험가가 명실상부하게 찾아나설 만한 최적지였다. 그는 무릎을 치며 환성을 내질렀다. 이 간단한 해답을 찾기가 그토록 어렵다니!
그러나 가장 간단한 일이 가장 힘든 법. 장소를 선정하는 일도 그랬거니와, 막상 장소를 정하고 나자 그곳을 찾아가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어디서 출발해 어떤 도정을 거쳐 목적지에 도달하느냐, 말하자면 탐험로를 설정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구의 내부 모양을 알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이룩된 과학적 성과에 따르면 지구는 달걀처럼 세 개의 층으로 형성돼 있는데, 지표면에서 약 30km 깊이까지(달걀로 보면 껍질 부분)를 지각, 거기서 다시 2,900km 깊이까지(달걀로 보면 흰자위 부분)를 멘틀, 거기서 또다시 중심까지(달걀로 보면 노른자위 부분)를 핵이라고 한다.
출발점을 설정할 경우, 지표면은 육지와 바다로 이뤄져 있으므로, 처음부터 땅을 파들어가는 것보다는 바다 속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터였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을 통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태평양의 괌 섬 근방에 위치한 비티아즈 해연이 바로 그런 곳이다. 그러므로 우선 필요한 장비는 잠수복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수심이 11,034m에 달하므로, 잠수복은 엄청난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다음 바다 밑바닥에서 다시 땅을 뚫고 들어가 지각층을 통과하려면 굴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지각층을 통과했을 경우, 거기서 멘틀층을 통과하려면 거기에 따른 압력과 고열을 견딜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고, 거기서 다시 핵층을 통과해 지구의 중심에 도달하려면 또 거기에 따른 압력과 고열을 견딜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다.
필요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탐험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적잖은 양의 식량과 의복이 필요했고, 질병이나 재난에 대비한 구급의약품도 필요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듯이 혼자보다는 둘이서 떠나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터이므로 조수도 한 사람 필요했다. 그러려면 장비며 식량 따위도 두 배로 필요할 것이다. 그밖에도 필요한 것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만큼 많고 또 많았다. 필요한 물품 목록이 공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정도였다.
어쨌든 목록 작성이 끝나자 그는 동네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공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그가 주문한 장비들을 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장 주인이 하는 얘기가, 그 장비들은 아마 영원히 만들 수 없을 거라는 대답이었다. 그를 더욱 실망시킨 것은 그의 탐험에 따라나서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가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는 슬프고 허전했다. 그는 어둠이 내리도록 빈 들판을 돌아다녔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내가 찾아갈 곳은 어디엔가 분명히 있어. 그곳을 찾아내는 거야. 그는 다소 진정된 기분으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동네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문득 갈증을 느꼈다. 거기에 우물이 있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물을 떠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니, 우물에는 하얀 달이 조용히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우물 속은 달까지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하게 깊어 보였다. 그 순간 머릿속이 번뜩였다. 그래, 저곳에 뛰어드는 거야. 달이 저기에 있는 걸 보면, 지구 중심까지는 금방일 테니까. 그는 탐험가다운 용기와 열의와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때 마침 어둠을 밟으며 물을 길러 오던 한 아낙이 무엇인가 우물 속으로 풍덩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뿐, 세상은 여전히 조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