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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2010년 8월] 기고 감상평

모교 개교 원년 바로 잡기




지난 6월 12∼13일에 시카고에서 열린 서울대 미주동창회 제19차 평의원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하는 중에 뉴욕을 방문한 林光洙총동창회장이 필자에게 준 3백58페이지의 책자 '正統과 正體性 - 서울대학교 開校 元年, 왜 바로 세워야 하는가'를 읽고 동문의 한 사람으로 서울대의 역사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사실 작년과 재작년에 동창회보에 몇 분의 동문들이 기고한 서울대 개교 원년에 관한 글을 보았으나 별로 큰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솔직히 말해서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뚱단지 같이 별안간 서울대의 태어난 해가 1946년이 아니고 이보다 50여 년 전인 1895년이라는 이론과 어떤 분은 고구려시대의 태학(서기 372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필자에게는 그러한 논리와 주장이 다소 황당무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떤 조직체나 기관의 연역을 따지는 데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법적인 면보다는 사실적인 면이 우선돼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서울대라는 이름의 고등교육기관이 법적으로는 1946년에 설립됐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고 이미 기존의 교육기관들이 통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뿌리를 서울대 창립 구성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타당하고 당연하다고 필자는 본다. 1991년부터 시상해온 역대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수상자 명단을 보면 서울대가 설립되기 전에 존재해 서울대 창립의 구성원이 된 각종 학교 졸업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바로 현재의 서울대 개교 원년이 1946년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2∼3개의 기존 교육기관들이 통합해 서울대가 설립된 것이 아니고 1924년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을 포함한 10개의 고등교육기관이 창설 구성원으로 되는 바람에 개교 원년을 밝히는 작업이 완전히 방치, 망각되고 서울대의 법적인 개교 원년인 1946년이 통용돼 고정된 것이 아닌가 필자는 짐작한다. 李泰鎭명예교수가 작성한 개교 원년 재조정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서울대가 지난 60여 년간 지켜온 개교기념일인 10월 15일이 어떻게 해서 정해졌는지조차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고 하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대학교(University)라는 자격을 받으려면 학사와 석사 이상의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이 돼야 하는데 서울대를 구성한 대학과 전문학교 그리고 사범학교들이 모두가 학사와 석사학위를 수여했는지도 개교 원년을 결정하는 데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버드대의 경우 1636년을 개교 원년으로 하고 있지만 대학교(University)로 인가가 난 해는 1780년이기 때문에 펜실베니아대가 이보다 1년 전인 1779년에 대학교로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교육기관으로 중국의 남경학교(기원전 258년)가 있지만 대학교 (University)라는 자격과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888년이다. 그전에는 남경학교는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

1693년에 설립된 윌리엄 앤 매리 대학(College of William and Mary)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교인데 아직도 University라고 하지 않고 College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 대학교의 경우 거의 전부가 개교 원년으로 법적인 개교 원년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적인 그 학교의 개교 원년을 사용하고 있다. 즉 유치원으로 시작됐건 또는 성직자 양성소로 시작됐건 또는 학교명이 바뀌었어도 학교명과는 관계없이 처음 설립된 해를 개교 원년으로 삼고 있는 것이 통상적이다. 예일대는 1701년에 Collegiate School로 개교했으나 수년 후에 예일대가 됐고, 프린스턴대도 처음에는 College of New Jersey로 설립됐고, 컬럼비아대도 1754년에 King's College로 창설돼 30년 후인 1784년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미국에서 법적으로는 가장 먼저 대학교로 인가를 받은 펜실베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도 1740년부터 1755년까지는 Academy of Philadelphia로 존재했다. 브라운대도 1764년에 College of Rhode Island로 개교했다. 이처럼 미국의 유명한 모든 대학교들이 처음에 내린 뿌리에 개교 원년을 두고 있다.

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멕시코국립대는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후 1551년에 설립했으나 맥시밀란 황제가 1866년에 이 대학교를 폐교했다. 그러나 멕시코국립대는 1910년에 다시 개교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루즈벨트 前대통령을 비롯한 수명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멕시코국립대도 개교 원년이 1910년이 아니고 1551년으로 삼고 있다.

서울대가 64년이 지난 이제 와서 개교 원년을 바꾼다는 것이 외부 사람들에게는 좀 우습게 보일지는 몰라도 우리의 당연한 역사 바로 잡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의 뿌리 찾기를 무시하고 방치한 우를 범한 것 보다 몇 배나 더 큰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