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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2010년 7월] 문화 꽁트

카프카와의 대화






 어느 날 꿈속에서 나는 어느 공동묘지에 있었고, 그곳은 내가 늘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카프카가 묻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카프카의 유령을 만났고, 슬프고, 약간 이상한 그 꿈에서 우리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나:당신을 만나기 위해 당신이 묻혀 있는 이곳 프라하 슈트라슈니츠의 유대인 공동묘지까지 먼 길을 왔다. 그리고 오는 길에 당신이 한때 살았고, 그곳에서 많은 단편을 쓴, 중세에 연금술사와 황금 세공사와 성의 일꾼들이 살았던 '황금 소로(zlata ulicka)' 22번지에도 잠시 들렸다.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을지?

 카프카:한데 무덤밖에 없는 이곳이 우리가 얘기를 나누기에 괜찮을지?

 나:더없이 괜찮다. 마치 살을 파고드는 것 같은 이곳의 적막함과 평화로운 느낌이 너무도 좋다.

 카프카:나도 내가 죽어지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다행히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어 인적은 끊기고, 까마귀들만 묘비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카프카:저것들은 언제나 나의 좋은 친구들이었지.

 나:당신이 죽은 지도 벌써 80년이 넘었다. 그사이 어떻게 지냈는지?

 카프카: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지냈냐니? 죽음은 마치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영원한 잠을 자는 것과도 비슷하다.

 나:나는 전에는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후에 우리가 유령으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기울고 있다. 단지 소망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 유령은 우리가 흔히 유령에 대해 그리는 것처럼 현세의 삶에 관여하는 그러한 유령이 아니라 단지 이곳의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러한 유령이다. 그것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그 가혹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카프카: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 역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어떤 식으로 지속되는지, 혹은 종결되는지 알 수 없다.

 나:당신의 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보다는 당신의 작품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선 당신은 결국 당신의 목숨을 앗아간 결핵으로 인해 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었다. 병의 그림자가 당신의 삶에 너무도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

 카프카:나는 오랜 동안 커다란 고통을 겪었고, 고통은 내가 결국 껴안아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글쓰기는 내게 나의 고통을 치유하지는 못하지만 둔화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나는 소설 속에서 인물들을 그려냄으로써 현실 속의 나의 고통의 어떤 부분들을 지울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발자크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느끼고 '고리오 영감'에 등장하는 의사 비앙숑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비유적으로 말한 것과도 비슷할 것이다. 나 자신 또한 "내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의사는 내가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라고 했다.



 나:당신의 작품들 속에서도 그것이 여실하게 드러나지만 당신이 육체적인 병 외에도 가장 크게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인 것 같다. 그것에 대해 당신은 "또 다른 어느 날 짧은 낮잠 후 눈을 떴을 때, 내 생이 아직 확실하지 않을 때, 어머니가 발코니에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묻는 소리를 들었네, '무엇을 하시나요?' 한 여인이 정원에서 대답하지, '정원에서 간식을 들고 있는 중이어요.' 나는 사람들이 생을 영위해 나가는 확고함에 놀랐네"라고 어떤 편지에서 표현했다. 그리고 "모든 사물들이 불확실해져버려 실제로 내가 소유했던 것이라고는 이미 손안에 쥐고 있거나 입안에 들어가 있는 것, 혹은 적어도 손이나 입을 향해가는 도중에 있는 것에 불과했다"라고 했다. 당신에게는 현실의 모든 것이 낯설고, 그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

 카프카:그렇다. 내게는 모든 것이 환영과도 같았다.

 나:아마도 입센이 임종의 침대에서 창밖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신의 희곡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혼동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카프카:현실의 그 무엇도 엄연하지 않다는 사실은 내가 현실을 감당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나:나 또한 늘 나 자신과 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환영처럼 여겨진다.

 카프카:어쩌면 우리 모두가 환영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 뿐인지도 모르지.

 나:좀 더 사실적인 것을, 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 얘기를 해보자. 당신의 보다 직접적인 면이 노출된 당신의 편지들을 읽은 후 가장 놀라웠던 건 그 엄청난 양이다. 가족과 일과 관계된 사람들, 그리고 친구들과 연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두 합하면 천 통이 훨씬 넘는다. 그렇게 많은 편지를 쓰게 만든 것은 어떤 이상한 열정처럼 보인다.

 카프카:이상하다면 이상한 열정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심경을 토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 내 앞에 너무도 길게 펼쳐져 있었으니까.

 나:한데 그 편지들은 당신과 상대를 연결시켜주기보다는 당신 스스로 그들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한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들 역시도 '대립적인 세계 사이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어떤 점에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자 없이 살 수도 없지만 여자하고도 살 수 없는 나의 무능력'에 대해 얘기한 것처럼 나는 누구와도 공유하는 삶을 꿈 꿀 수 없었다.

 나:당신의 삶은 어떤 끝없는 지연의 과정으로 보인다. 연인과의 약혼도 계속해서 유보되며 끝내는 무산될 뿐이다. 그래서인지 당신은 자신의 인간관계에 있어 어떤 미숙함과 가식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카프카:뭔가를 해결하고 매듭을 지을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처음으로 보행 연습을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내게 삶은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였다. 내가 더욱 오래 살았다면 나는 신비주의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글쓰기에 대해, 문학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강한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신은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당신의 생활은 당신이 글쓰기에만 몰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카프카:나는 '글 쓰는 도구와 램프를 갖고 밀폐된 넓은 지하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앉아' 있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나:그럼에도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태와 현실과의 깊은 괴리가 당신 작품의 한 원천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카프카:그럴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실 역시 나의 작품 속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녹아들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내야 했고, 내가 쓴 글들 속의 인물들이 나 대신 그 변명들을 하게 함으로써 나는 그 뒤로 숨는 편을 택하기도 했다.

 나:당신이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의 어떤 구절, 즉 "오늘 그대에게 '화부'를 보냅니다. 거기에 나오는 어린 청년을 호의로 맞아들여 그대 옆에 앉힌 다음 그의 소원대로 그를 칭찬해주세요"는 당신의 현실과 작품의 경계가 사라지는 어떤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내가 펠리체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지난번에 아이젠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옆에서 '카알은 뭘 하고 있지?' 하고 말했습니다. 뒤돌아보니 내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 남자가 혼잣말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도 혼잣말이었습니다. 카알은 내 소설에 등장하는 불행한 주인공입니다. 악의 없이 내 곁을 지나가던 그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과제를 제기함으로써 나를 비웃은 셈입니다. 그의 말을 격려로 여길 수는 없으니까요" 하고 쓴 것도 작중 인물과 현실의 인물이 뒤섞이는, 내 안에서 현실과 그 너머에 있는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당신과 함께 이곳 공동묘지에 있는 것 또한 꿈속의 어떤 장면처럼 여겨질 뿐이다.

 나:간간이 들리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들게 할 뿐인 것 같다.

 카프카: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어떨지?

 나:그렇게 함으로써 그사이에 짙어가는 안개 속에서 당신과의 영원한 작별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