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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2010년 7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모교의 개교 원년 조정은 역사 바로 세우기




 모교의 개교 원년 찾기 운동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일부 역사교수들의 돌발적인 반론제기로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된다. 모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겠지만 반론의 핵심내용은 서울대의 정체성 문제. 1895년에 설립된 법관양성소가 서울대 정체성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국립대학이면서 고등교육기관(대학)이자 종합대학의 성격을 반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요컨대 특정 교육기관의 출발을 곧 서울대 전체의 시작으로 보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법관양성소는 애초부터 관료를 양성하는 직업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진리탐구의 전당이라는 서울대의 건학목표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울대가 미군정 치하에서 통합한 경성대학과 9개 전문대학 중 원년이 가장 빠른 법관양성소는 법학교→경성전수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로 개편되면서 법통이 서울법대로 이어졌고, 커리큘럼과 교육내용도 오늘의 법대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특히 조선왕조가 기독교 이념을 중시했던 서양 근대국가들과는 달리 유교국가로서 법치이념을 존립의 기반으로까지 삼았던 점을 감안할 때, 법관양성소는 우리의 근대적 관립고등교육기관으로 국가운영에 가장 필요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해왔으며, 이같은 인재양성 목표는 건학목표의 충분한 조건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대학은 학문연구와 인재양성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해왔다. 1636년에 교사 1명에 학생 9명으로 문을 연 하버드대는 목사양성소로 출발했다. 일본의 히도츠바시(一橋)대는 1875년 상법강습소로 출범한 것을 개교원년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법관양성소가 진리탐구가 아닌 관료양성위주의 인재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서울대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또한 서울대에 통합된 10개 학교는 1946년 8월 22일 공포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에 따라 '폐지'됐으므로 폐지된 어느 한 학교의 설립시점을 서울대 전체의 개교 원년으로 삼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폐지'라는 말은 법령의 레토릭일 뿐이다. 동 법령 제5조는 오늘날 각 단과대학으로 발전된 기존 고등교육기관(전문학교)들을 열거한 다음 '이 모든 학교는 폐지되며 국립서울대학교에 흡수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서울대학교는 새로운 대학교의 '신설'이 아니라 종합대를 만들기 위해 기존 고등교육기관을 하나로 통합해 새로운 체제로 개편하고 거기에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만약 서울대가 신설된 것이라면 1946년 이전의 역사나 전통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서울대의 각 단과대학들은 1946년 이전에 이미 상당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모교의 역사가 공대, 농생대, 법대, 사대, 의대, 간호대 등 대부분의 단과대학 역사보다 짧게 잡혀 있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이고 기형적이다. 서울대가 구한말의 법관양성소나 한성사범학교 등의 관립교육기관을 모태로 삼지 않은 이유는 이들을 끌어들였을 경우 일제식민시대의 경성제국대까지 껴안아야하는 딜레마 때문이었다. 일제에 대한 거부감을 이유로, 구한말 우리의 자주적인 교육기관의 역사가 서울대 역사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자학적인 역사관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교 원년 찾기는 모교의 잃어버린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다. 〈徐玉植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