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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2010년 6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金雄漢 모교 의대 흉부외과 교수





 모교의대 흉부외과학교실 金雄漢(의학81 - 87)교수는 소아 심장수술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특히 선천성 심장병 중 가장 심한 기형인 반쪽짜리 심장도 살려내는 폰탄수술법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7월에는 체중 2.8kg인 선천성 심장병 신생아의 무수혈 수술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이런 그가 10년째 중국과 몽골 등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해 온 것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소아 심장병 수술의 권위자

 지난 5월 24일 취재차 모교 연건캠퍼스 연구실에 갔을 때 金교수는 막 수술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파란 수술복장에 마스크도 여전히 목에 매단 체 조금은 피곤한 모습이었다. 일주일에 몇 건이나 집도하냐는 질문에 "대중없어요. 한 4건에서 7건 정도?" 조금은 무뚝뚝한 경상도 억양의 답변이 돌아왔다. 경북 안동 출신이란다. 의대에 들어간 동기도 솔직하다.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의대 가기를 원했어요. 막상 들어와 보니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어요.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내부적으로도 무척 혼란스러운 때였죠. 좋아하는 선배들 따라 흉부외과에 들어가 실습하다 보니 그때서야 적응이 되더군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金교수는 의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신학을 택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해외 의료 봉사활동도 신앙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다. 金교수는 주일마다 외국인 노동자 의료지원 단체인 '라파엘 클리닉'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라파엘 클리닉은 1997년 모교 의대 가톨릭교수회와 가톨릭학생회가 뜻을 모아 문을 연 단체다. 모교 金有瑩ㆍ金 典ㆍ安圭里ㆍ金有瑩ㆍ趙相憲ㆍ張仁鎭ㆍ高在晟ㆍ張允碩교수 등이 주요 멤버로 봉사하고 있다.

 "혜화동과 동두천에 진료소가 있어요. 이 곳에서 심장병에 걸린 한 필리핀 노동자 부부의 아기 수술을 부탁 받으면서 직접적인 인연을 맺었죠. 의료봉사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 의료봉사도 하게 됐고요."

 부천 세종병원에서 근무할 때 중국 하얼빈 어린이병원과 맺은 인연을 모교병원으로 와서도 이어가고 있다. 한 후원단체의 행사로 시작된 하얼빈 어린이병원 지원은 단기 행사로 끝났지만 金교수는 개인적으로 틈날 때마다 휴가를 내서 그 곳 의사들을 교육하고 아이들을 수술했다. 그동안 金교수에게 수술 받은 해외 어린이 환자만 1백여 명에 이른다. 모교로 부임해서는 공공사업단에 도움을 요청해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얼빈 어린이병원과 교류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3월에는 그 곳 의사 5명을 데려와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2명을 제가 가르치고 있고요.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에서 이런 사업을 확대하고 좀 더 체계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공공의료사업단은 국내 저소득 가정 지원을 비롯해 매년 한 두 차례 정도 해외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金교수도 해외 봉사활동이 있을 때마다 참여해 지난해에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등 저개발 국가의 심장병 어린이를 고쳐줬다.

 金교수는 "서울대병원이 저개발 국가에 좀더 근본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플랜'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플랜은 우리나라가 전쟁 직후 미국의 미네소타플랜에 의해 의료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을 저개발 국가에 되갚자는 취지에서 구상 중인 사업이다. 즉 저개발 국가 주민들을 치료하는데 머물지 말고 그 쪽 의료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의료 기술을 전하자는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우리의 의료기술이 상당히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아요. 해외 의료봉사를 나갈 때마다 의료기술을 전수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아요. 이게 곧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 진행된다고 하니 참 기쁜 일이죠.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데도 큰 역할을 할거라 믿어요."

저개발 국가에 의료기술 전수

 金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로서 좋은 점이 수술 후 건강해진 모습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만성 질병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반면 심장병은 수술 후 건강해진 모습을 금방 볼 수 있어 만족감이 큽니다. 그래서 한 아이라도 더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1년에 그가 수술하는 심장병 아이들은 2∼3백명 정도. 소아 심장 흉부외과의가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사실 아이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데 아이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40대 후반이 되니까 아기들을 맡길 잘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수술 후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金교수가 수술한 가장 어린 생명은 1.2kg 미숙아다. 심장에 직접 손대지 않는 동맥간개존증의 경우 6백g 미만의 미숙아까지도 해봤단다. 심장이 콩만해 확대경을 보고해야 하는 수술이다. 손 기술이 섬세하지 못하면 어렵다.

 손 기술이 뛰어나니 그림에 소질이 있거나 잘 다루는 악기가 있지 않을까? 金교수는 그런 취미는 없고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등산이란다. 학부 시절부터 산악회원으로 활동해 지금은 모교 교수산악회 일원으로 등산을 즐기고 있다. 재작년에는 서울대병원 간, 콩팥 이식 환우 및 공여자들과 히말라야를 등반하기도 했다. 金교수는 "당시 6천1백89m 높이의 아일랜드 피크를 올랐는데 내 생애 가장 높은 산"이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金교수가 들려준 이야기가 자못 심각하다.

 "지난 주 교수산악회 모임에 나갔는데 한 자연대 교수님이 '요즘 공대뿐 아니라 자연대 우수 졸업생들이 의과전문대학원에 들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걱정하시더군요. 동감합니다. 의대는 천재적인 사람이 필요한 곳은 아니거든요. 우수한 인재가 의대로 몰리지 않게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요."

 金교수는 경북고등학교 졸업 후 모교에 입학해 盧浚亮명예교수, 金容珍교수 등의 지도를 받았다. 의대 졸업 후에는 부천 세종병원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3년 모교로 부임했다. 매주 한 두시간 강의를 하는데 아직도 가르치는 것은 어렵다고. 30대 중반에 결혼해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있다.〈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