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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2010년 6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李相禹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 지금 나라 안팎이 정말 복잡합니다.

 "올 것이 한 번 왔으니 잘 견디고 잘 건너가면 됩니다. 얼마 전 해군에서 강연할 때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희생당한 분들은 정말 안됐지만, 국민들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습니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지 못하면 오히려 그 분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국방개혁에 힘을 쏟으라고 강조했습니다."

 - 정부가 강력한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金正日위원장이 오판한 것 같습니다. 6ㆍ25전쟁을 일으킨 金日成 前수상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남조선노동당을 조직한 당시 북한 내각 부수상이었던 朴憲永이 '한국사회는 남로당이 장악했으니, 전방에서 일을 한 번 터뜨리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적화통일이)될 것'이라고 金日成수상에게 보고하다 보니 그대로 믿었던 거죠. 막상 전쟁을 일으켰는데, 남한에서 기대와 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압록강까지 후퇴하게 된 金日成수상은 그제야 '속았구나'라고 생각한 거죠. 이번에도 金正日위원장이 똑같은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싶어요. 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면서 북한은 대남 전략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전까지는 군사력으로 어떻게 해보고자 했지만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한국과 경쟁이 안 되니 전략초점을 군사전에서 정치전으로 바꿔 대남 침투공작을 시작한 겁니다."

 - 정치전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80년대 운동권에선 포섭한 학생들을 가두투쟁요원과 사상투쟁요원으로 나눴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포섭해 사투요원으로 만들고, 데모도 시키지 않았어요. 이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언론사와 대학원에 많이 보냈죠. 대학원을 졸업하고 소위 좌경화된 교수들이 다시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새 추종자들을 조직적으로 키워나갔습니다. 그렇게 20년 정도가 흘렀으니, '이제는 뭔가 좀 되겠다' 싶어 한 번 시험해본 거죠. 지난번 광우병 사건 때 일어난 촛불시위가 그중 하나입니다. 그 많은 사람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조직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자신감을 조금 얻으니까 이번에는 군사적으로 공격하면, 자기네(친북 성향의) 사람들이 함께 나서 말리면 한국정부가 북한에 강경 대응을 못할 것이라고 계산한 거죠. 그러나 우리 상황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요. 지금 정부가 흔들리지 않고 강경하게 나가니까 북한이 당황한 것 같아요. 우리 정부가 조바심을 내지 말고 의연한 태도로 행동하면 북한도 분명히 다시 생각할 겁니다."

 李의장은 인터뷰 시작 전 이런 민감한 사안보다는 개인 이야기를 많이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한 만큼 인터뷰는 심각한 얘기들로 이어졌다. 지난 37년간 외무부, 통일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방개혁을 3차례나 이끈 그로서는 '평화질서'를 위해 북한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북한을 또 어떻게 포용해야하는지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줬다. 국방선진화위원회는 국방개혁안을 만들고 있으며,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국방, 통일, 외교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있다.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말씀드리죠.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 후 1978년 개혁개방을 단행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그때 개혁개방을 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겁니다. 북한은 조직력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을 것이고 지금쯤은 북한 주도로 통일국면을 맞는 상황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개혁개방을 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정치전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계속 늦추다보니 이제는 북한이 방향을 돌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죠.

 그동안 국방정책의 기조가 북한이 한반도의 안정을 주도하는 전수 방어체제였다면 이제는 우리가 안정을 주도하는 억지전략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북한의 위협은 우리의 대응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지지 않도록 모든 영역에서 압박하면 북한도 결국 굴복할 것입니다.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이라는 孫子의 말이 있습니다. 방어정책은 싸워서 막는 것이지만, 억지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억지전략이라고 하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그러는데, 방어는 상대방이 쳐들어온 것을 열심히 싸워 지키는 것밖에는 안 되지만 억지는 그쪽에서 도발을 하면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춰 필요할 때 이를 쓸 의지가 있다고 천명해 처음부터 상대방이 도발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를 때렸다가 놔뒀다가, 또 필요하면 다시 때리는 것을 반복하지 않았습니까.

 통일의 전제조건은 한반도의 안정인데 그 안정을 북한이 이끌어가고 우리가 좇아가선 안 되죠. 북한 주민은 적이 아니라 우리 동포인데, 어떻게 전쟁을 합니까. 억지전략으로 통일정책을 주도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우리 손으로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통일로 이끌어 나가야죠."






 - 현재의 대북제재 상황에 남북은 서로 손해를 봅니다.

 "얼마 전 통일연구원에서 이번 제재조치로 우리는 경제의 0.1%, 북한은 14%가 교역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조금만 참고 대처해주면 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지 않는다고 전제할 때, 전면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한국군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북한과의 전쟁을 배제하라는 지침을 위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군이 안이해진 부분이 있는데, 이번 개혁을 통해서 새로운 지침을 내리면 군도 금방 고칠 것입니다."

 - 군의 합동성을 강화하고 유연한 부대체제로 개편돼야할 것 같습니다만 ….

 "유연성과 전문성의 조화가 합동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군령체제 개선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선진화위원회에서는 제4세대 戰場환경에 맞는 지휘체계를 연구 중입니다. 현재 강도 높은 개혁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민의 시각과 국가 차원의 시각으로 조정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국방예산도 우리가 더 많지만 정신전력에 문제가 없습니까.

 "그게 앞서 말씀드린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친북세력의 효과입니다. 북한 선전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로 설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생각이 금방 바뀔 겁니다. 북한에 대해 잘 아는 어느 젊은 교수가 말하기를 '우리 언론에서 이북에 대한 자료화면을 방송에 내보낼 때마다 북한의 연출된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우리도 모르게 북한 선전을 해주는 셈이죠.

 그래서 이 교수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북한 뉴스를 여과 없이 보여준 적이 있답니다.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 보게 되는 이북 뉴스는 어느 한 대목만 보는 경우가 많죠. 예전에 남북 축구경기에서 북한이 남한에게 0대 2로 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북에서는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뉴스 마지막 부분에 북한이 진 이유가 남조선 사람들이 북한의 몇몇 선수들에게 독약을 먹여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강력히 비난하고 끝맺거든요. 우리는 앞부분만 봤으니 모르잖아요. 끝까지 뉴스를 보니까 북한의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학생들이 바로 느끼게 되니 이것 이상의 교육은 없다고 봅니다."

 - 남남갈등은 꼭 좌익이 아니라 일부 리버럴한 사람들이 휩쓸려 증폭시키는 것 아닌가요.

 "4ㆍ19, 5ㆍ18, 6ㆍ10민주항쟁 등을 보면 당시 민주화 투쟁을 위해 데모했던 사람들은 '독재하지 말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하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공산주의자는 자유민주주의를 타도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군사독재를 타도하자고 하면서 민주화세력에 얹힌 거죠. 그 다음 통일전선전략원칙에 따라 리버럴한 사람들을 공략하면 쉽거든요. 사실 이념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친북적인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남남갈등의 한 가운데에 교묘히 끼어들어와 이들을 조정해 대정부 투쟁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겁니다. 정치전에서는 우리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북한과는 게임이 안 되요."

 - 안보리 회부 등 북한 압박에는 중국의 설득이 꼭 필요한데요.

 "제가 소장을 맡고 있는 신아시아연구소에서 중국 측의 제안으로 한중 전략대화를 3번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분들은 모두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중국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요. 작년 12월 열린 전략대화에서 중국대표가 '6자회담으로 핵 문제를 해결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핵을 버리고 망하는 북한보다는, 핵을 가지고 살아남는 북한을 선택해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북한에게 핵을 제거하라고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받았습니다.

 사실 중국, 미국, 일본에게는 북한 핵 문제는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위협적입니다. 중국분들에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북한 핵을 제거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한다'고 하니까 상당히 놀래요. 4천9백만명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정밀유도무기로 사전에 제거하겠다고 그랬습니다. 즉, 억지전략을 사용하겠다는 것이죠.

 지금 중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미국과의 G2정상회담을 통해서 세계를 리드하려는 의지가 최고조에 달해있는데, 북한을 지원하면 위치가 흔들릴 수밖에 없죠. 그리고 중국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에요. 중국이 우리를 몰아붙여 우리가 미일동맹 쪽으로 더 가깝게 가 한미일 공조체제로 나아가면 중국도 걱정이 커집니다. 어쨌든 중국은 상하이 엑스포와 G2의 위상 때문에 우리를 외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 통일 문제는 어떤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독에서 정치혁명이 일어나 서독과 합의 통일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렇게 통일할 수도 있습니다. 金正日위원장이 권력에서 물러나면 나머지 핵심 권력자들이 중심이 될 텐데, 제가 보기에는 이들은 안목이 넓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한국과 타협하지 않으면 자기네들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요. 우리도 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신변을 보장해주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독일의 예를 다시 들게요. 당시 동독의 정치가 중 한 명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동베를린에서 계속 데모가 일어나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이걸 진압하면 오늘 하루는 넘어갈 수 있지만 내일 되면 또다시 데모할 텐데, 만약에 오늘 진압하지 않으면 동독은 어떻게 될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를 간파한 서독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신변 안전을 보장하고 연금도 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회의에서 이 말을 꺼냈더니, 참석자 대부분이 먼저 말을 못 꺼냈지 동의하더라는 거예요. 동독과 서독의 합의통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동독과 접촉하는 창구역할을 담당할 인물을 한 사람 지명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같은 사람이 계속해서 그 역할을 맡도록 여야간 합의를 봤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우리를 믿지 않는 이유가 매번 장관급회의를 할 때 다른 사람이 오니깐 속내를 털어놓을 수가 없잖아요. 우리가 그런 식으로 이북에게 신뢰를 주고, 북한 지도층에게 약속을 한다면 독일처럼 갈 수 있다고 봅니다."





 - 한중일 관계도 중요합니다. 전략적 레버리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번 7월 서울에서 중국과 전략대화가 있는데,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세션을 어젠다에 넣었습니다. 중국과 우리가 동맹관계가 되지 못하는 것은 다분히 이념적인 차이 때문이거든요. 제가 농담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만 민주화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그랬더니 안색이 좋지 않아요(웃음). '중국 지도자 중에서 덩샤오핑을 제일 좋아하는데, 덩선생은 2050년까지 중국은 민주화로 갈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이자 준비하는 기간이며, 전 국민에게 시민교육을 시켜 민주화가 이뤄지는 때가 2050년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더니 저보고 낙관적인 것 같다고 하면서도 흐뭇해하더군요(웃음)."

 - 통일 비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통일을 하는데 비용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비용이 든다고 안 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 딸이 대학 간다고 등록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비용을 계산해서 줄까, 말까 생각하는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와 같은 논리죠. 우리 딸이 필요하면 내가 밥을 안 먹고라도 등록금을 마련해야죠. 남북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주민이 배고프다고 하는데, 다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방향으로 가야될 거 아닙니까. 우리가 희생을 감소하고 양보해아죠. 그런데 지금 계산된 통일비용은 그런 걸 다 감안하더라도 과다 책정한 것으로 봐야죠. 북한의 생활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전반적인 수준을 올릴 수 있습니다. 북한의 토지제도를 고치고 영농법을 도입하면 농업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통일비용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요."

 - 개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중ㆍ고ㆍ대학을 수석 입학하고, 수석 졸업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중ㆍ고등학교는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을 했지만 대학은 입학만 수석으로 했습니다. 2학년 때 부친께서 몸이 편찮아 가장으로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 한이 돼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 1976년부터 2003년까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봉직하셨는데, 국내 처음으로 북한정치론 강의를 개설하셨죠.

 "북한 주민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북한을 연구할 수 없었을 거예요. 북한정치야말로 평화질서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강의를 개설하고 공산권 연구협의회를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 형제, 부인과 3녀1남, 사위가 서울대 가족인데, 가훈이 뭡니까.

 "자녀들에겐 '떳떳하게' 살면서 받은 것보다 더 베푸는 삶을 살라고 강조합니다."

 - 매우 건강해 보이세요.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요즘엔 바쁘다보니…,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대학시절엔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자랑하는 이력 중 하나가 서울법대 산악반 초대 회장입니다. 산악반을 창립해 졸업한 후에도 OB산악반인 '한오름'을 만들어 지금까지 80여 명이 활발하게 만납니다. 그리고 법대 건물마당에 링을 설치해 기계체조를 하고 역도반도 만들었습니다. 하와이 유학시절엔 수영과 스쿠버다이빙을 했고요. 한림대 총장을 할 때는 지나가는 길에 승마장이 있어 새벽에 교습을 할 수 있느냐고 간청해 아침 6시반부터 한 시간씩 승마를 배우고 출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 후배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살아보면 알겠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그리 길지가 않아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기 발전, 자기 성장을 위해서 뜻을 펼치는 노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줍니까. 자신이 바로 서야 어떠한 것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림대 총장시절에는 학생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이라고 해서 翰林五德을 만들었는데, 첫째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自尊, 둘째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나가는 修己, 셋째 공익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爲公, 넷째 대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順理,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博愛)을 지니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 총동창회 부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셨는데, 동창회 발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울대학교는 나라의 리더를 배출하는 엘리트 집단의 요람입니다. 동창회가 그러한 정신을 계속 다듬어가고 지켜나가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엘리트라는 점을 자각하는 책임의식 또는 사명감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을 잊지 않도록 동문들을 계속해서 북돋워 주시기 바랍니다."

〈정리 = 表智媛기자ㆍ사진 = 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