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호 2010년 5월] 문화 꽁트
전 복

그녀가 월세집에 살아보기는 처음이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듯이, 다달이 생돈 내면서 살기는 너무 아까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셋집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듣던 대로 별난 동네였다. 전세 매물을 운운하면 부동산 중개업자가 대놓고 무시했다.
"사모님, 이 동네는 전세가 없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언제나 수요가 공급의 열배쯤 되는 동네인데, 사모님이 집주인이라고 하면 전세 매물 내놓겠어요? 월세 얼마를 내도 좋으니 집만 나오면 즉시 연락달라는 대기자가 수십 명인데요. 이 물건도 오늘 안에 나가요. 정말이에요. 얼른 결정하셔야 해요."
나중에는 그녀도 중개사의 말을 불신하지 않았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전세로 돌릴 수 없겠냐고 어설픈 흥정을 붙여보려다가 아까운 매물만 날리는 일이 두 번이나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매물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달려가지 않으면 30분 안에도 거래가 성사되는 동네였다. 강남도 아니고 심지어 대형 아파트 단지도 아닌데, 높은 명문대 진학률을 자랑하는 명문고등학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동네의 부동산 시장은 용광로와도 같았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이사 문제를 마무리지어야 할텐데 하고 조바심을 내고 있을 무렵에, 그녀는 공인중개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살고 계신 집 사진 좀 찍어서 이메일로 얼른 보내 주세요. 얼른요! 사모님 잘 하면 오늘 봉 잡으십니다."
길게 설명할 시간도 없다면서 얼른 사진이나 찍어서 보내라는 중개사의 띄엄띄엄한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돈은 많고 성격은 깐깐하고 자식들은 모두 외국에 살고 있는 한 사모님께서 잔디밭이 딸린 예쁜 단독주택을 임대 매물로 내놓으셨는데, 집주인 부부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집을 깨끗하게 잘 관리해줄 만한 사람을 구하는 조건으로 임대료를 획기적으로 싸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평소 살림 실력을 볼 만한 '현재 살고 있는 집' 사진을 보내주면 공정한 심사를 거쳐서 임차인으로 선정되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요즘 세상에 그런 식으로 부동산 거래를 하는 사람도 있나? 싶어서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전광석화와 같이 사진을 보내기는 했다. 그녀는 잘 정리돼 있는 부엌과 거실을 찍은 다음, 안방과 화장실 사진도 더 찍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서 옷장과 냉장고 문을 열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두 아들이 계약의 걸림돌이 될까 우려해서, 그녀는 한평생 군대처럼 완벽하게 훈련받은 두 아들의 정리정돈 솜씨까지 거듭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오디션에 합격한 것 같은 기분으로 얼떨떨하게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사한 첫날, 그녀와 남편은 오징어와 산사춘으로 작은 축배를 들었다.
"살림 잘하는 마누라 덕에 좋은 집에 살게 된 것을 축하하며."
"살림 만세."
새로 이사한 집에서 첫 명절을 보내면서,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겼다. 집주인 앞으로 오는 명절 선물이 끝도 없이 밀어닥치는 것이었다.
그녀는 호사스러운 백화점 포장지를 입은 갈비며 과일, 생선들을 줄줄이 받아들고 당황했다. 잠시 넣어둘 냉장고도 마땅치 않은 지경이었다. 여전히 살아서 헤엄치고 있는 전복이 제일 큰일이었다. 그녀는 시차를 열심히 계산해서 집주인의 현지 시각으로 아침이 밝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아이구, 저런. 이 일을 어쩌나. 협력사에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서 보내지 말라고 그럴 수도 없고."
집주인 마나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제분이나 친척분께 가져가시라고 하면 어떨까요? 모두 다 좋은 물건들인데요…."
"마땅히 줄 만한 사람도 없는데, 새댁이 그냥 적당히 드셔."
"사모님, 전복도요? 생전복인데요?"
남들이 모두 곤히 자고 있는 깊은 밤중에, 그녀는 혼자 선물 보따리들을 풀어 보면서 실성한 여자처럼 혼자 웃었다. 전복은 서른 마리나 됐다. 아이들은 살살 녹는 열대과일 세트를 제일 좋아했고 남편은 고급 와인을 끌어안고 기뻐했지만, 그녀에게는 전복, 전복이 최고였다. 첫날은 썰어서 생으로 먹고, 이튿날은 버터에 구워 먹고, 나머지는 얼려 뒀다가 때때로 죽을 끓였다.
아이들은 바라던 대로 명문중학교, 명문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여름이면 잔디밭에 상을 펴고 고기를 구워먹었다. 밤이면 언덕 아래로 펼쳐진 서울의 야경이 화사했다. 걸어갈 만한 거리에 근사한 카페들도 많았다. 그녀는 정말로 새댁처럼 남편의 팔짱을 끼고 저녁 나들이 삼아 카페에 가곤 했다. 둘이서 너무 무드를 잡다가 하마터면 얼토당토않은 나이에 셋째를 만들 뻔하고 나서야 정신이 확 돌아왔다.
그러므로 해외에 내내 체류하시던 사모님께서 잠시 귀국하시게 됐다고, 한 번 들러 보아도 되겠냐는 연락이 왔을 때 그녀는 국빈이라도 맞이하는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사모님은 집이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모습에 아주 흡족해했다.
"새댁이 아주 야무져. 역시 내가 사람을 잘 골랐어."
"해외에 오래 계시려면 이런 것도 필요하실 것 같아서…."
그녀는 재빨리 멸치와 다시마 같은 건어물들을 꺼내 놓았다. 오랜만에 수협매장까지 가서 꼼꼼하게 골라온 최상품들이었다.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는데…."
사모님은 놀라는 한편 약간 망설이는 표정이 됐다.
"사실은 우리 조카가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말이지…. 조카아이가 내년이면 박사학위를 받을 것 같거든…. 그 다음에는 아마 외국으로 나갈 모양인데, 우리 시누이가 이 집에서 그 신혼부부를 좀 살게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라서…."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눈앞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적어도 둘째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배정받을 때까지는 이 동네에 있어야만 했다.
"사모님, 살림도 안 해본 새댁이 이 집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신혼살림이 뭐 많기나 하겠어. 기껏해야 1년 살고 출국할 거라니까 뭐…."
"모르시는 말씀이에요! 저 지금은 이 정도로 유지하고 살지만 신혼 때는 정말 사고뭉치였어요! 분위기 낸답시고 할 줄도 모르는 중국요리에 도전하다가 솥 태워먹고 불낼 뻔 했어요! 더구나 아파트도 아니고 단독주택인데, 지하실에 곰팡이 안 생기게 신경 써서 환기해줘야 하고, 여름이면 저 마당에 잔디 관리만 해도 하루 종일 걸리는데…."
사모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체면 불구하고 미친 듯이 매달렸다.
"그리고 사모님, 친척한테 집 맡기시면 안 돼요. 차라리 남이 나아요. 친척한테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분명히 말을 하기도 어렵잖아요. 혹시 나중에 뭔가 속상한 일이 생겨도, 친척한테는 시원하게 따질 수도 없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사모님?"
얼마 뒤 부동산에서 새로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연락이 왔다. 월세가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주변과 비교하면 여전히 좋은 조건이었다.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계약기간을 꽉 채워 살면 작은애가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을 수 있었다. 새로 시집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들떠있는 그녀와는 달리, 부동산에 나타난 사모님은 조금 어두운 표정이었다.
"새댁이 워낙 야무지게 집을 관리하니까 다시 계약을 연장하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시누이가 너무 섭섭해하네. 이 집에 꼭 살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나보지…. 그래서 말인데, 명절에 들어오는 선물 말이야, 귀찮겠지만 그건 우리 시누이네 집으로 좀 보내줄 수 있을까? 택배비는 그 집에서 내라고 할게."
그녀로서는 다르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네, 그럼 그 댁 전화번호랑 주소 좀 적어 주세요."
사모님이 주소를 적는 동안, 그녀의 눈앞에 생전복과 냉장찜갈비와 팔뚝만한 영광굴비가 차례대로 흘러갔다.
계약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그녀는 마지막 한 병 남은 와인을 땄다.
혼자서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어느새 와인병이 절반이나 비어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떠오른 남편의 전화번호를 보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남편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그래? 당신 무슨 일 있어? 계약이 안 됐어?"
"아니, 계약은 잘 했는데…, 앞으로는 명절에 들어오는 선물을 친척댁으로 보내달라고 하시네…."
"그런데 왜 울어?"
"딴건 괜찮은데…, 생각하니까 전복은 좀 아까워서…."
"그까짓 전복 가지고! 와인이 아깝다면 몰라도."
전화로는 정나미 없이 소리를 지르더니, 그날 저녁에 남편은 전복을 한 상자 사들고 왔다.
"수산시장에 갔더니 열 마리에 3만원밖에 안 하더라. 뭘 그걸 가지고 우냐."
"전복이 동전만하네."
어쨌든 그들은 전복을 썰고 와인잔을 채웠다.
"살림 잘하는 마누라 덕분에 좋은 집에 다시 살게 된 것을 축하하며."
"전복 만세."
돈 내고 산 전복도 맛이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다. 다행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좋은 숲내음이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