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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호 2010년 5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남북치의학교류협회 洪禮杓상임대표




 "북한도 우리 동포인데, 어린이치과병원을 지어서 북한 어린이와 주민들을 진료하면 어떨까?"라는 누군가의 제안에 2001년 여름, 치과의사 60여 명이 뭉쳤다. 내친김에 남북치의학교류협회(이하 남북치교협)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각자 성의껏 기금을 출연하고 치과용 유닛체어부터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사업이 중단됐고, 2004년에서야 금강산온정인민병원 첫 방문이 이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9월 25일, 온정인민병원 치과진료소가 개소됐다.

 최근 남북치교협 상임대표로 선임된 洪禮杓(치의학65 - 71 홍예표치과 원장)동문에게 근황을 물으러 찾아갔을 땐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좋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부터 건넸다.

 "저는 지난 1월에 다녀왔고, 공동대표인 李丙台(치의학61 - 67)동문께서 3월에 방문한 뒤로는 휴면상태예요. 원래는 온정리마을에 직접 들어가 지정된 병원에서 한 달에 두 번 진료를 했는데, 2008년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은 뒤로는 현대아산에서 지은 금강산구역에서 치과진료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상황이 이러니깐 …, 북에서 초청장이 올 때까지 또 기다려 봐야죠."

 남북치교협은 대부분 모교 출신 치과의사들로 구성된 민간단체다. 물자지원, 학술교류와는 달리 이들은 직접 북한마을에 들어가 무료 진료를 해주고 있다. 현재까지 2천명 정도가 온정의 손길을 받았다.

북한에 어린이병원 건립 목표

 "애초부터 이를 홍보하거나 알리겠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북한이 못 살아서 치료가 절실하다'고 하면 북한 실상이 드러나니 저쪽에서 기분 나쁠 거 아니에요. 또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거기까지 가서 그러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솔직히 주민들 상태는 굉장히 나쁩니다. '아파요'라고 하면 이를 뽑아주는 것 외엔 더 이상의 치료를 할 수가 없어요. 치료는 꾸준히 해줘야 하는데, 한 번에 4명만 갈 수 있고 방 하나에 기기 몇 대로 진료하려니 마음이 먹먹하죠. 그래도 이왕 마음 맞는 사람끼리 열심히 해보자고 했으니, 어린이치과병원을 지어주자는 처음의 목표를 언젠가는 이룰 겁니다."

 다소 무거웠을 북한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눈 뒤 洪동문의 비좁은 사무실이 눈에 들어온다. 종로구 관철동의 어느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치과에 들어서면 대기실까지 한 걸음, 진료실까지 한 걸음, 도서와 자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사무실과 틀니작업실도 한 걸음이면 된다.

 사실 洪동문은 지난 2007년부터 모교 치대ㆍ치대원동창회장으로 더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모교 병원후원회, 발전기금, 치대동창회 등에 기금을 출연했고, 본회 장학빌딩 건립기금으로 5천만원을 쾌척했다. 또 2년 전 모교 어린이치과박물관 건립에도 1억원을 기부했다. 온정인민병원 치과진료소 개소 이후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교회에서 외국인근로자를 진료하고, 1년에 두 번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때서야 洪동문의 꾸미지 않은, 아담한 치과의원이 이해가 간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는 어디든 한 걸음으로 달려나갔을 것 같다. 베푸는 것은 한 걸음이면 된다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두 번은 동창회 모임이에요. 지난주에 치협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동창회 부스를 하나 만들어 동문들의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1년에 두 번 발간되는 회보도 며칠 전 봄호가 나왔고요. 그리고 오는 8월 제주도에서 동문 골프대회를 개최할 예정인데 많이 참석하도록 해야죠."

 인터뷰 와중에도 그는 동창회 소식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다. 동창회장을 맡은 뒤로는 진료시간이 더 짧아지고, 쉬는 날도 많아졌다. 환자를 그만큼 덜 보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도 洪동문은 장학빌딩이 완공되기 전까지 이번엔 부인에게 좀 더 내라고 할 생각이란다. 사실 洪동문의 부인은 동문이 아닌 평범한 가정주부지만 아내와 상의해서 괜찮다고 하면 어차피 우리 가족 거니까 아내가 출연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치의학은 나 아닌 남 돕는 학문"

 "혼자서 정신없이 번다고 해서 그게 다 자기 돈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이 쓰면 그만큼 마음이 편하잖아요. 젊을 때부터 이러한 봉사나 기부활동을 했다면 아마 지금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살 수 없을 거예요(웃음). 30년간 치과의사로 생활하다 50대 중반에 때마침 남북치교협과 인연을 맺고, 그 무렵 아내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면서 '교회에서 봉사활동 하면 나아질 것 같다'고 해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洪동문은 치대동창회장직을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남은 임기 동안 열심히 뛰어다닐 작정이다.

 "대개 시ㆍ구 치과의사협회장을 거쳐 대한치과협회장을 맡는 것이 치과의사로서 큰 영예인데, 행정도 잘해야 되는 직분이라 저와 안 맞더라고요. 교수라는 직업도 학생을 가르치고, 뛰어난 연구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고요.

 동창회 일을 하다 보면 현장답사도 가야되고, 여기 저기 모임도 참석해야되는데 다른 분한테 맡기면 그 분도 하루는 쉬어야 되잖아요. 그럴 바엔 제가 갔다오는 게 낫죠. 그래서 원할 때 쉬거나 하고 싶은 일을 남보단 조금은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개원의가 적성에 맞는 거 같아요."

 3년 전 신임 동창회장 인터뷰에서 洪동문은 '치의학은 내가 아닌 남을 돕는 학문'이란 신념으로 병원을 그만두면 봉사활동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듯 하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기분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현재의 위치에서 그 당시 주어진 일에 충실히 하는 것, 그렇게 사는 게 삶의 활력소이기도 하고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병원을 운영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오래할 생각은 없단다.

 "그렇다고 곧 관둔다는 뜻은 아니고요. 교회에서 진료를 하다보면 한 번에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만나게 돼요. 그러면 시간 나실 때 치과로 오라고 합니다. 여기선 제가 차근차근 잘 봐드릴 수 있으니까 치료비를 안 받고 무료로 해드려요. 그럴 땐 정말 뿌듯하죠. 그래서 한 달에 몇 분 정도만이라도 계속해서 그렇게 무료로 치료해 드릴 생각이에요."〈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