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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호 2010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밴쿠버 영웅은 아닐지라도



 밴쿠버 올림픽에 갔던 김연아ㆍ모태범ㆍ이상화ㆍ이승훈ㆍ이정수 선수를 비롯한 우리 대표단은 세계에는 놀라움을, 5천만 국민에겐 자신감을 안겼다.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228점이 가능하구나! 단거리에서 국내 벽을 못 넘고도 장거리에서 세계 벽을 깰 수 있구나! 꿈같은 기록을 낸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보여준 것은 '우리 한국인, 한다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자신이 처한 조건이 나쁘다고, 여태껏 전례가 없었다고 도전을 지레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밴쿠버의 영웅들은 말없이 말하고 있다. 애당초 좋은 조건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희망과 의지를 갖고 애쓰고 또 애쓰면 길은 열린다고. 세상에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 아직도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선례란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 새로 만드는 미래라고. 큰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더라도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하고, 꿈을 향해 달리는 만큼 멀리 갈 수 있다고.

 젊은 스포츠 영웅들의 기상과 투혼이 국민 전체의 DNA로 뿌리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선 자녀들을 과보호하며 연약하게 키워 캥거루족을 만드는 부모들이 '내 아이도 좀더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생각을 바꿔먹고 행동에 옮겼으면 싶다.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인들 딸이 수천 수만 번 빙판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프지 않았겠는가. 많은 부모들이 김 선수의 어머니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식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 강건하게 키운다면 그것은 개인의 장래를 밝게 하는 일이자 궁극적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밴쿠버 영웅들의 신화는 국민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지만 그것이 곧 국력은 아니다. 요즘 우리 청소년은 키가 부모보다 반 뼘 이상 크지만 체력은 '덩치 큰 약골'이라는 조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시험공부만 하다가 막상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몸과 마음이 퍼져버려 선진국 대학생들보다 뒤쳐지기 일쑤라면 개인도, 나라도 딱하지 않은가.

 허벅지가 모태범ㆍ이상화 선수 같지는 않더라도 몸이 튼튼하면 정신력도 강해지고, 웬만한 역경쯤은 헤쳐 나갈 수 있을 터이다. 대한민국 아이들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단련된다면 올림픽 승전보는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고, 모두가 이승훈ㆍ이정수 선수는 못될지라도 에너지 넘치는 청년들로 나라에 활력이 가득 찰 것이다.

 학교 체력장 연습을 하다가 몇 아이가 사고를 당했다고 체력장 제도 자체를 없애버리는 유약한 나라는 세계를 앞서가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