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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호 2004년 6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서울대학교 廢校論(?)

 대학 평준화라는 망령이 떠돌고 있다. 대학입시 과열화와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고교평준화를 단행한 정부가 다시 고교교육과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고 앞장서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의 평준화를 위하여 세칭 일류대학인 서울대를 없애고 다음에는 연세대 · 고려대를 없애어 대학의 경쟁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기득권 계급을 형성한 서울대학교를 없앰으로써 평등사회를 형성할 수 있으며 새 계급대립을 막기 위하여 다음에는 연세대와 고려대를 없애어 학벌사회를 타파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처음에는 모교 출신들 몇 사람이 주장하다 이제는 대통령자문기구의 건의안에도 반영될 모양이라 기가 막힌다. 평등사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대학까지도 평준화하자는 발상은 국가발전이나 국가경쟁력을 희생하면서 기득권층에 대한 한풀이나 열등감 해소를 위한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대학평준화를 부르짖는 이들 소위 「진보세력」은 그들 이념의 실험처였던 사회주의 국가의 교육제도를 모방하자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모스크바대학이나 북한의 김일성대학, 중국의 청화대학 등의 실례를 왜 무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교육의 수월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100대 중점대학을 육성하고 있으며, 청화대학 출신이 최고위층을 거의 석권하고 있다고 하여 청화대학 폐지론을 주장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지 답답할 뿐이다.  학벌사회를 말한다면, 김일성대학이나 모스크바대학, 훔볼트대학 등의 학벌이 공산사회를 지배했었다. 그 이유는 수재들을 모아 교육의 수월성을 확보하여 국가발전과 세계적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중국의 우주과학이나 러시아의 군수산업, 동독의 경제개혁 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프랑스대학이나 독일대학의 평준화를 우리의 모델로 하자고 주장하나 이들 대학은 모두가 수재들의 집합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내부적 경쟁과 졸업자격제도 등의 엄밀함으로 유명하며, 프랑스의 「그랑제꼴」은 프랑스 공무원, 교원과 기술자 양성을 거의 독점하고 있으며 독일의 「막스프랑크연구소」 등이 독일의 엘리트 양성과 과학기술 향상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노동당이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학이나 런던대학을 폐교하자고 주장한 일은 없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자녀들을 일찍부터 수월화시켜 당당히 유수대학에 입학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으며, 가난한 자녀나 계급의 출신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주고 당당히 입시경쟁에서 합격하도록 장학정책을 쓰고 있다. 미국에서 하버드대학이나 예일대학, 스탠포드대학, 프린스턴대학을 폐교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다. 미국은 오히려 아이비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거액의 헌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그동안의 고교평준화 정책 때문에 고교의 평둔화(平鈍化)가 행해졌고, 대학교육이 일반교양교육이 되었으며 많은 대학졸업 실업자를 양산하여 산업화를 좀먹고 있다.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자들 중 우수한 학생을 미리 고교에서 선발하여 이들이 일류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장학정책을 써야만 가난한 수재들이 서울대학교나 일류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텐데 장학정책을 포기함으로써 과거 지방의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단연 많았던 서울대학교가 어느새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 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현상은 서울대학교가 존재함으로써 일어난 폐해가 아니라 고교평준화로 인하여 명문고교를 없앤 결과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서울대학교 출신이 이 사회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으나 서울대학교 출신재벌은 하나도 없고, 사법시험 합격자도 전체의 3분의 1 밖에 안된다. 재벌이나 기업체는 연세대나 고려대에 기부하나, 국립대인 서울대학교에는 기부조차 잘 안하고 있다. 몇 십 명의 기여입학으로 수천 명의 가난한 수재에게 장학금을 주어 천재로 만드는 것이 대학의 이상인데 평등감정을 강조함으로써 가난한 수재를 죽이고 있는 것은 국가적인 손해이다.  서울대학교 졸업생은 이 사회의 일꾼으로 사회에 봉사해왔다. 잘 출세하고 잘 살던 사람만 양성한 것이 아니고 진보정당의 많은 간부와 개혁세력의 주체와 전교조, 교수노조의 구성원을 양성해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한국의 정치발전, 사회발전이 가능했는가를 생각하여 일류대학의 긍정적인 면을 봐야 한다.  교육의 기회균등은 성분이나 재정적인 차별 없이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교육의 헌법이념은 수월성에 있으며 학생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고교평준화 제도는 헌법에 위배되는 포퓰리즘의 소산이요 우리 나라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 정체하게 한 주범이다. 대학평준화는 망국의 길이다. 우리 나라에도 미국의 하버드, 러시아의 모스크바, 일본의 동경, 중국의 청화대학이 나오도록 일류대학을 육성해야 한다.
(김철수, 「헌법과 교육」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