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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2010년 2월] 문화 꽁트

똑떨어지는 엉터리 계산*





 권훈순은 공립중학교 수학교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똑떨어지는 수학의 세계를 좋아했다. 同性 친구들이 주워섬기는 아이돌그룹, 패션, 메이크업, 밀고 당기는 연애놀음에는 관심도 없었고 소질도 없었다.

 부모가 공들여 주선한 몇 번의 맞선 자리에서는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변호사, 의사, 고급공무원 등 잘 나가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1+1=2' 이외의 세계를 믿지 않는 담백한 성품의 그녀보다, 내숭 9단에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여자들을 더 좋아했다.

 결국 지금의 남편 이두한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다. 두한은 첫 만남에서부터 훈순의 호봉을 묻더니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는 훈순이 정년까지 벌어들일 수입의 총액과 일시불로 받을 경우 연금 총액, 분할불로 받을 경우 한 달 연금 액수 등을 줄줄이 꿰었다. 백이면 아흔아홉 명의 여자들은 처음부터 셈속을 너무 훤하게 드러내는 이런 남자를 재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훈순으로 말하자면 두한의 그런 면을 솔직함과 믿음직스러움의 징표로 여긴 단 한 명의 여자였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쓸데없이 내숭을 떨 필요도, 괜스레 밀고 당기느라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라고 훈순은 생각했다.

 훈순의 부모는 큰 은행의 행원도 아니고 고작 조그마한 신용금고의 사원인 두한이 훈순에 비해 많이 기우는 것 같아 내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연애라곤 못하는 딸이 나이 서른 셋에 겨우 하나 데리고 온 남자를 쫓아낼 배짱도 가지지 못했다.

 두한은 예식장서껀 신혼여행서껀 허투루 선택하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열 가지 이상을 비교해 보고 가격 대비 효과가 탁월한 것만을 선택했다. 스무 살 때 홀로 자취생활을 시작한 다음부터 의식주를 대충대충 해결하는 라이프스타일에 푹 젖어 있던 훈순은 매번 두한에게 혼이 났다.

 "당신, 수학선생 맞아? 수학문제, 대충대충 풀면 답이 나오나? 당신이 귀찮다고 이 쇼핑몰에서 대충 다 해결했을 경우, 총 2,785,210원이 들어. 하지만 그릇세트는 A타운에서, 주방가전세트는 B인터넷쇼핑몰에서, 냄비세트는 C상가에서 살 경우 총 2,456,970원밖에 안 들어. 차액이 328,240원이지. 하루 종일 땅을 파 봐. 328,240원이 나오나. 정신 차려, 이 친구야."

 훈순의 결혼생활은 자기발견의 연속이었다. 훈순은 자신이 수학의 세계를 좋아하지만 타산적 사고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두한의 계산이 엉터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를 위해,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쪽을 택했다. 이를테면 두한은 가사를 거의 분담하지 않았다.

 "어차피 당신이 당신 먹고 주형이 먹이기 위해서 밥하고 반찬 만들잖아. 거기다 밥 한 공기만 더 퍼 놓아주면 돼. 그게 뭐가 어렵냐? 내가 밖에서 사 먹어봐. 한 끼에 5,000원씩만 계산해도 하루에 15,000원, 한 달에 450,000원, 일년에 5,400,000원이야. 당신이 당신하고 주형이 먹는 밥상에 밥 한 공기 더 퍼 놓는데 얼마 들까? 500원이라고 치자고. 하루에 1,500원, 한 달에 45,000원, 일 년에 540,000원이지. 차액이 무려 4,860,000원이야. 당신은 당신하고 주형이 먹는 밥상에 밥 한 공기를 더 퍼 놓는 간단한 노동으로 일 년에 무려 4,860,000원을 저축하는 거라고. 대단하지 않아?"

 '왜 나는 집에서 밥하고 당신은 밖에서 사먹는다고 전제하는 거지? 그게 증명할 필요도 없는 定理인가? 웃기지 마셔. 당신 계산은 전제가 틀려먹었거든.' 하고, 훈순은 화장실에서 중얼거렸다.

 두한은 청소와 다림질에도 마찬가지 계산법을 들이댔다. 육아에는 조금 다른 논리를 갖다 붙이긴 했다.







 "비교우위라는 거 있지? 아이 키우기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비교우위를 가진 일이야. 내가 주형이를 키우는 데 써야 하는 에너지의 절반만 쓰고도 당신은 주형이를 잘 돌볼 수 있어. 육아 스트레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두 배 많은 에너지를 쓰는 동시에 두 배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남자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여자가 아이를 키울 때보다 네 배 비효율적이라는 얘기야. 다시 말하면 당신이 주형이를 키우는 게 내가 주형이를 키우는 것보다 네 배 효율적이라는 말씀!"

 훈순은 또한 자기가 왜 수학을 좋아했는지 알게 됐다. 그녀는 어려운 수학문제에 집중했을 때 두뇌가 느끼는 寂寥를 사랑했다. 두한은 수다쟁이는 아니었지만 말발로 누군가에게 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는 아내가 한 마디를 하면 두 마디를 하고 아내가 두 마디를 하면 네 마디를 하고 아내가 세 마디를 하면 아홉 마디를 했다. 훈순은 남편의 언어가 제 두뇌에 일으키는 소란스러움이 극도로 싫었다. 그래서 언쟁의 기미만 보여도 항복하고 말았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늘 먼저 항복한 결과, 훈순은 가사와 육아를 도맡아하면서 제 월급으로 살림을 꾸렸다. 온 가족의 보험료를 제 돈으로 내고 남편이 다니는 신용금고에 적금도 부었다. 남편 월급은 '당연히' 남편이 관리했다.

 결혼 10년, 교사생활 18년째 되던 해, 훈순에게 방학을 이용한 해외연수의 기회가 왔다. 심신에 만성적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훈순으로서는 스위스에서의 한 달 연수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오누이에게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 같았다. 저녁밥을 잘 차려준 후, 남편에게 연수 얘기를 꺼냈다.

 "당신, 그 연수 안 다녀오면 교직에서 잘리나?"

 "그건 아니지만, 난 정말로 가고 싶어. 주형이는 친정에서 봐주신대."

 "가. 좋은 기회니까. 하지만 모든 기회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는 사실, 알고 있지? 내가 당신 없는 동안 지불해야 할 밥값, 세탁비, 청소비는 정확히 계산해서 주고 가셔야 하지 않겠어? 내가 느낄 정서적 소외감과 육체적 고독감에 대한 보상금은 차치하고라도 말이야. 자, 계산기 한 번 두드려볼까? 요새는 밥값이 좀 올랐어. 비빔밥도 7,000원씩 하더라고. 그럼 7,000원 곱하기 3 곱하기 30 이퀄…."

 훈순은 머리를 싸쥐었다. 머릿속에서 수천 마리 벌떼가 윙윙거렸다. 훈순은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안 갈게. 안 갈 테니까, 제발 좀 그만해."

 아들아이 주형은 훈순에게 自明하기 그지없는, 자명하여 그 자체로 發光하는 公理였다. 주형이 잠든 모습을 바라볼 때, 훈순은 수학적 적요의 황홀감을 느끼곤 했다.

 주형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입만 열면 공부, 공부를 강조하던 두한은, 주형이 4학년으로 진급하자 '하교 후 매일 일곱 시간 공부 계획표'와 계산기를 주형이 턱 밑에 들이밀었다.

 "초등 4학년 성적이 평생 성적을 결정한대. 지금 1시간 공부하면 나중에 10시간을 벌 수 있어. 오늘 7시간을 공부하면 나중에 70시간을 더 쓸 수 있는 거야. 1년은 365일이지만 명절이니 생일이니 해서 5일 정도는 빠질 테니까 360일로 치고 7시간 곱하기 360일은 2,520시간, 2,520시간 곱하기 10은 25,200시간이지. 너는 결국 올 1년 동안 매일 7시간씩 공부하는 것으로 나중에 커서 네 맘대로 쓸 수 있는 25,200시간을 저축하는 거야."

 주형의 두 눈이 화등잔처럼 둥그레졌다.

 "3시나 4시에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 7시간 공부하면 10시나 11시가 되겠네요. 저녁밥 먹는 시간 30분을 포함하면 10시 반이나 11시 반이 되고요. 그럼 놀 시간은 10분도 없는 건가요?"

 두한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주형이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이 녀석아. 지금 네가 10분 놀면 나중에 100분을 갚아야 해. 1년은 365일, 360일은 10분씩 놀겠지만 명절이나 생일에는 10시간, 즉 600분을 놀겠지. 고로 하루에 10분씩 360일이면 3,600분, 나머지 5일 곱하기 600분은 3,000분, 합해서 6,600분. 그 10배를 갚아야 하니까 66,000분. 66,000분은 1,100시간. 1,100을 24로 나누면 45.833333으로 똑떨어지지 않으므로 반올림 하면 46일. 46일이면 대략 1달 반. 그러니까 너는 고작 10분 논 대가로 나중에 1달 반을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거야."

 주형이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뚝, 뚝, 흘렸다. 남편이 훈순을 불렀다.

 "당신, 이리 좀 와봐. 아이는 99% 엄마가 가르치는 거야. 당신이 지금 아이 수학을 하루 2시간 봐주면, 1년 중 360일을 공부한다고 가정했을 때…."

 훈순의 머리는 소란스럽다 못해 빠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훈순은 손짓으로 주형을 자기 방으로 돌려보내고는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그 따위 엉터리 계산, 당장 집어치우지 못해?"

 훈순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두한이 따라 들어왔다.

 "엉터리? 남편이 자식 잘 가르치자고 하는 말을 두고 감히 엉터리? 좆도 모르는 게 까부는 거야, 지금?"

 아내의 반항에 당황한 남편이 욕설 비슷한 음절을 뱉어냈다.

 "모르면 뭐 어때서? 좆같은 거 알고 싶지도 않거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훈순의 뿌연 머릿속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공식이 떠올랐을 때처럼.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 중에서 소제목 하나를 빌려온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