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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2010년 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李 賢 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과 과학기술특별보좌관 일을 동시에 하시느라 바쁘시겠어요.

 "한림원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가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보좌관 일은 대통령께 건의하고 자문하는 역할이라서 요즘에는 청와대로 매일 출근해 업무량을 소화하느라 조금 바쁩니다(웃음)."

 
 - 2007년부터 한림원 원장을 맡고 계신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1994년 설립된 국가 최고 과학기술인들이 모인 민간 학술단체입니다. 이학, 공학, 농수산학부, 의약학부, 정책학부로 나눠서 약 5백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 부문별 전문성을 활용해 국가 과학기술정책연구와 자문사업을 비롯해 기초과학진흥사업, 국제교류증진사업, 과학기술인명예의전당사업, 젊은과학자상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상을 시상하는 일을 하고 있죠."


 - 1월 28일부터 스웨덴왕립과학한림원과 공동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스웨덴한림원에서 물리ㆍ화학ㆍ경제학 노벨상을, 생리의학상은 스웨덴의 카롤린의학연구소에서 심사하고 있어 이를 염두에 두고 일년에 한 번씩 교대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신경과학을 주제로 카롤린의학연구소에서 교수 3명, 우리나라에선 KIST 申喜燮신경과학센터장, 모교 약리학교실 徐維憲교수 등 9명이 참석하십니다. 미국 과학한림원과도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있고요."


 - 젊은 인재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많이 진출하기 위한 사업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학술진흥 사업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해 강연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회원 중 외국인을 1백명까지 모실 수 있는데, 현재 66명이 계십니다. 이 중에 37명이 노벨상 수상자들입니다. 이런 석학들의 강의를 듣기 위해 과학고 학생과 일반 대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이 옵니다. 또 준회원으로 많이 활동하고 있는 40대의 젊은 학자들이 주로 건의하는 게 한림원 각 분야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서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를 허물기 위해 모든 분야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자주 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과학기술특보로서 하는 일을 설명해주신다면.

 "과학기술 전 분야에 대한 대통령 자문과 건의를 통해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대변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요즘 사회적인 현안들이 과학기술과 관련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결정을 할 때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해야합니다. 또 과학기술계 인사들과 기관단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대통령께 전달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죠."


 - 통합 교육과학기술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 분야가 홀대받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도 있었는데, 요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습니다. 당초 정부에서는 교육부의 초ㆍ중ㆍ고등학교는 각 지자체에서 관할하고, 입시부분은 대학교육협의회가 담당하게 되면 과학기술부가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안되고 있어요. 교육사안은 거의 매일 일어나는 반면 과학기술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밀리는 경향이 있죠.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만들어 과거 과학기술부가 총괄하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체제를 바꾸고 행정조직을 갖춰달라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은 자주 뵙나요.

 "청와대에서 직접 찾아뵈는 건 어렵고요. 주로 지방에 행사가 있을 때 KTX를 많이 타고 다니시는데, 열차 안에서 한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이때가 가장 좋은 기회죠. 대통령께서 현장에 나가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자투리 시간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 요즘 과학기술계 분들의 가장 큰 불만은 무엇입니까.

 "대덕연구단지나 서울의 KIST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들의 불만이 가장 크죠. 90년대 이후 출연연의 연구과제중심제도(Project Based-System)가 도입되면서 연구원이라 할지라도 외부에서 연구과제를 받아서 연구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급여의 많은 부분이 연구과제비에서 나옵니다. 또 하나는 대학교수의 정년이 65세인데 반해 연구원은 61세까지입니다. 게다가 연금도 못 받아요. 이러한 여건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소로 오지 않고 대학으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어요.

 초기에는 출연연과 기업간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 산업기술이 크게 발달했는데 최근 들어 침체분위기입니다.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투자대비 가시적인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이다, 조직을 개편한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민간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에 좋은 방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보는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우리의 고유한 원천기술을 많이 개발해야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초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 기초연구도 정부지원이 필요하겠죠.

 "盧武鉉정부 때부터 연구비가 굉장히 늘어났습니다. 현 정부도 강한 의지를 가지고 2012년까지 GDP의 5%를 기초연구 분야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 중 절반을 원천기술 개발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 연구비가 5천억원에서 올해 6천5백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정부예산을 30% 인상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죠. 앞으로 신진학자와 여성과학자들도 많이 지원할 계획입니다."


 - 중점적으로 키워나가야 할 과학기술 분야를 말씀해 주신다면.

 "70년대 중화학 공업시대를 거치면서 포스코 같은 재료산업이 크게 성장했고 뒤이어 기계 및 조선공업이 발달했습니다. 90년대부터 IT강국으로 성장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는데, 그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 제조업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은 앞으로도 절대 포기하면 안되는 분야입니다. 또 전기자동차산업에서 LG화학과 삼성SDI가 2차전지 시장을 세계에서 석권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도 계속해서 키워나가야 하고요.

 반면에 우리가 약한 분야는 소재산업입니다. 2차전지 기술은 세계최고인데 재료의 상당부분을 수입하고 있어 소재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또 한국위성인 나로호가 1차 궤도진입에는 실패했지만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줬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우주항공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원자력 분야는 어떻습니까.

 "이 분야에서 우리는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뛰어난 안정성을 바탕으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쌓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연구한 결과 사상 최대의 해외수주인 UAE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에 요르단과 수출협약을 맺은 연구용 원자로는 우리고유의 모듈로 개발했습니다. 또 송배전이 어려운 사막지대의 나라에 적합한 해수담수화가 가능한 중소형 원전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내년부터 전문가 양성을 위한 대학원을 만들 계획입니다. 관련학과에 대한 특성화 프로그램도 지원할 예정이고요. 또 사용 후 핵원료 재처리와 관련해 자체 처리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미국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 과학기술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선진국 진입을 위해 국민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과학기술은 이미 선진국 수준인데 과학의 생활화, 국민의 과학화가 아직 잘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림원에서 일반인도 세계 석학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개인, 조직, 대학간 소통이 굉장히 제한돼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분야와의 소통 없이는 발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국민소통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도층에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할까요.

 "국민의 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위만 쳐다보며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하향식 마인드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어요. 연구개발 정책도 정부가 다 결정해서 아래로 전달되는 식으로 이뤄지잖아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 줄 테니 참여하라는 것보다는 예산을 줄 테니 좋은 프로젝트를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해야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어요?

 기부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자연스럽게 기부문화가 싹터야하는데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미국은 민간이 주도하는 씽크탱크를 통해서 좋은 정책들을 많이 만든다고 합니다. 저희는 그게 너무 약해요. KDI와 KIST가 있지만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원래 가지고 있는 역량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향식이 아닌 아래에서부터 좋은 정책이나 아이디어를 개발해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민주사회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 이공계 졸업자들이 대기업 다니다가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굉장히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떤 복안이 있을까요.

 "현재 4년제 대학이 2백 개나 되고, 전문대도 1백 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교 졸업생 중 85%가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진학률을 가진 나라입니다. 문제는 졸업생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대학이나 연구기관들이 이미 포화상태인데다 일반적으로 지방이나 중소기업에는 잘 안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올해부터 인문계 졸업생이 일정기간 기술교육을 받아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일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습니다. 또 중소기업이 연구기관의 연구요원을 채용하면 3년간 정부가 인건비의 70%를 대주고 기업이 30% 내도록 해서 연구활성화가 이뤄지도록 할 계획입니다."


 -  중국, 일본에서는 후진타오 주석, 하토야마 총리 등 국가 최고지도자를 비롯해 많은 정부 요직에 과학기술을 전공한 분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이과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활동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기후변화, 녹색성장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과 일본의 이공계 출신 지도자들의 경력을 보면 대학졸업 후 사회 여러 분야에서 실무적인 경험을 쌓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공계 졸업생들은 대부분 그 분야에서만 활동하잖아요. 다양한 경력을 갖춰야 이공계 인력이 폭넓은 분야에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세종시에 국제과학 비즈니스 벨트를 건립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학도시 핵심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가 생기면 많은 석학들과 포스닥 학생들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도시들도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어서 국가발전에 큰 역할을 하리라 봅니다."


 - 개인적인 질문 몇 가지 하겠습니다. 현재 모교 명예교수이신데, 행정업무도 오래 하신 것으로 압니다. 보람됐던 일을 소개해주신다면.

 "저는 교수의 직무는 첫째 교육, 그 다음에 연구, 마지막으로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꿈이 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미국유학시절에도 교수님들의 강의와 학덕에 감동 받아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70년대 초반에 와서 참 정열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 같아요. 일주일에 4과목을 가르치면서도 힘든 줄 몰랐거든요. 특히 대학원에 수학강의를 개설해 여러 학과의 학생들이 제 강의를 들으러 왔는데, 교수가 된 제자들이 찾아오면 그때 제 강의내용을 지금도 참고해서 가르친다고 말해요. 굉장한 보람을 느끼죠.

 연구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미국에서 이론적인 응용수학 분야를 연구했는데 국내에 와보니 그런 것만 가르쳐서는 학생들의 진로에 문제가 생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화학산업에 중요한 촉매 분야를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중반쯤 고분자 분야가 보편화되면서 좋은 품질을 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좋은 품질을 내기 위해선 고분자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아주 엄밀한 제어를 해줘야 하는데 이 역시 생소한 분야라서 열심히 연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 프로세스 공정 제어가 들어가는 거죠.

 "네. 그렇게 해서 국제적으로 좋은 논문을 많이 낼 수 있었습니다. 봉사라고 한다면 아마 제가 교수 가운데 교무처 행정업무를 가장 오래한 사람일 겁니다. 6년8개월을 했으니까요. 그때 졸업 정원제라고 입학정원의 130%를 뽑아서 2년 내에 30%를 내보내야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교무부처장 시절에 한창 시행되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난리도 아니었죠. 다행히 교수와 학생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서 슬기롭게 해결했던 기억이 납니다. 교무처장이 되니깐 이번엔 민주화 바람이 부는 거예요. 대학을 나갔던 학생들이 복학하게 됐는데, 성적이 안 좋아서 나갔다가 들어온 학생과 형무소에 들어갔다 나온 학생도 포함돼 있었어요. 그래서 이들이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경청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교육과 연구, 봉사를 균형 있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세요.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고, 교수시절 동료 교수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에 산행을 다녔는데 지금까지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되도록 많이 걷고 틈날 때마다 맨손체조를 합니다. 무엇보다 규칙적이고 절제 있는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 가족 가운데 동문이 여럿 있으시죠.

 "저희가 6형제인데 5명이 서울대를 졸업했고, 사촌과 조카들 중에서도 모교 출신이 4∼5명됩니다. 딸 丞胤(경영93 - 97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이와 사위 宋昌炫(사법88 - 93 변호사)도 동문이고요."


 - 좋은 말씀만 해주셨는데, 인생에서 힘들었던 적은 없으세요.

 "글쎄요, 특별히 힘들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 굉장히 낙천적으로 사신 것 같습니다.

 "현실적응을 잘했다고 할까요? 군 생활도 사병으로 열심히 복무했고, 어느 곳에 가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 후학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자기계발을 해서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또 한 분야에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두루두루 소양을 기르고 글로벌시대에 필요한 국제감각을 익혀야 됩니다.

 제가 국제회의에 참석해 보면 한국사람들은 발표는 잘하는데 사람들과 대화할 때 화젯거리가 궁색해요. 외국인과 섞이지도 않고 자기네들끼리 몰려다니죠. 그렇게 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고, 문화생활도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자로서 모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과학기술 하면 R&D인데, 인재양성과 연구개발이 접목되면 엄청난 상승효과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지금 그게 잘 안되고 있습니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모교인 서울대가 앞장서서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말로는 융합이다, 통섭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진 않잖아요. 전기자동차만 보더라도 과거에는 기계공학 분야가 주도했지만 지금은 IT와 화학이 접목되고 고객만족까지 생각해야됩니다. 원전사업도 소재, 전기, 핵연료, 공급처리 분야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사업입니다. 여기에다 수출까지 하게 되면 외교 안보문제도 고려돼야 하고요.

 진정한 융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범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소통입니다. 소통을 잘 하면 융합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재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소통을 잘 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교가 나서서 이에 대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와 재학생들의 의지 그리고 동문들의 지원이 하나로 모인다면 가능하리라 봅니다."





●李賢九원장은

 62년 모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해 68년 미네소타대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73년부터 2004년까지 모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로 봉직했다. 지난 8월 31일부터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李원장은 한국과학재단 우수연구센터평가단 화학ㆍ화공분과위원장,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연구운영위원장, 제어ㆍ자동차ㆍ시스템공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학술원상,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덕명공학상, 한국화학공학회 학술상 및 공로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 석류장과 옥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정리 = 表智媛기자ㆍ사진 = 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