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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2010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모교 작곡과 林憲政교수




 2009년 12월, 모교 관악캠퍼스 국제대학원 뒤편에 위치한 음악대학 예술관 건물을 찾았다. 방학이어서 그런지 사방이 조용했다. 3층 교수연구실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드니 309호 林憲政(작곡70 - 76)교수 연구실이 눈에 들어온다.

 국내 최고의 연주실력을 자랑하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부천필)에서 1989년부터 20년간 최장수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활약해온 林憲政교수. 현재까지 국내에서 20년 이상 한 오케스트라를 맡은 지휘자는 林교수가 유일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교 재학시절 그는 국내 처음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고, 1974년 작곡 부문에서 처음으로 제14회 동아콩쿠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초로 '말러 전곡' 4년간 연주

 그의 이름을 떠올릴 때면 빠지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말러 교향곡 전곡을 완주한 지휘자'로서 지난 1999년부터 4년동안 '말러 신드롬'을 일으키며 청중이 제 발로(?) 음악홀에 오도록 만들었다.

 "왜 말러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고, 단원들도 하고 싶어서 하게 된 거지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이렇게 어려운 연주를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이 들으러 올까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못하죠. 그걸 깼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우리가 믿었던 것은, 어려운 음악일지라도 연주가 좋으면 사람들은 분명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신념이었어요. 그래서 행복한 마음으로 임했고, 관객들은 우리의 진정한 소리에 공감하며 역사에 남을만한 연주를 해냈다고 생각해요."

 林교수가 이끈 부천필의 뛰어난 연주실력은 초창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부임한 지 1년이 채 안되던 1990년, 부천필은 교향악축제에 출연해 브람스 교향곡 제3번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20년간 부천필을 떠나지 못한 것은 제 음악인생을 바친 곳이기도 하지만, 연주를 제일 잘하기 때문이에요(웃음). 처음 부천필을 맡아달라고 의뢰 받았을 때 '무조건 하자. 젊은 사람이 무엇을 재고 있어. 잘 만들면 되지'라는 패기와 열정 하나로 단원들과 똘똘 뭉쳤습니다. 그러던 중 교향악축제에 한 번 출연해보라고 해서 열심히 해봤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고, 지금까지 그 명성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단원들과 이처럼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서로간에 부딪치는 일은 없었을까. 20년간 변함없는 하모니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간단했다. 특별한 기술도, 뛰어난 리더십이나 언변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주어진 악보를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밖엔 없었다고 한다.

 "음악은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지 강압적이어선 안돼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뚫어져라 악보를 쳐다보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관련 책을 보며 이렇게도 분석해보고, 저렇게도 구상해봅니다. 그렇게 집대성한 것을 연습실로 들고 가서 단원들에게 '이렇게 한 번 해보면 어떨까요?' 하면서 호흡을 맞추는 거죠. 제가 열심히 준비해오지 않으면, 단원들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요. 우리가 감동받을 정도로 좋은 연주를 하면 듣는 사람도 감동받을 것이라고 늘 얘기하죠."

 언제까지 부천필을 지휘할 것이냐는 질문에 林憲政교수는 2009년 초에 단원들에게 선언한 것이 있단다. 부천에 좋은 음악홀이 완공되면 지휘자의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한 것이다. 명예롭게 퇴임한 지휘자가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을 지켜본 林교수는 자신이 먼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원래 계획은 올해 부천음악홀이 완공되면 그 시기에 맞춰서 자리를 넘겨주려고 했어요. 100년, 200년 가는 오케스트라의 미래를 위해서 정점에 있을 때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재정적인 문제로 공사가 계속 지연되고 있어서 잘 마무리될 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부천홀 완공되면 명예롭게 퇴임"

 이런 바쁜 와중에도 林교수는 모교에서 음대 작곡과 지휘전공 주임교수로 제2의 '마에스트로 임헌정'을 꿈꾸는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하러 간 날에도 학생들은 그의 방에 놓인 피아노를 치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林교수는 1년 내내 자신의 연구실은 학생들의 연습실이나 다름없다며 방학에도 늘 이렇게 시끌벅적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치른 기말고사 때 지휘과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시험을 봤는지 궁금했다.

 "당연히 지휘를 보죠. 곡을 분석하기 위해 이론적인 공부는 필수고, 한 친구가 옆에서 어떤 곡을 피아노로 치면 다른 학생은 머리 속에 악기들을 배열해 여기선 어떤 악기가 소리를 내고, 언제 다같이 연주해야 하는지 전체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봅니다."

 단원들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주문한다면, 학생들에겐 무엇을 강조하느냐고 물었다.

 "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어보라고 권해요. 새로운 세계를 도전적으로 찾아 나서는 예술가의 삶에는 끝없는 호기심이 있어야 돼요. 호기심이야말로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거든요. 음악가는 새로운 감각, 새로운 소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어요. 음식을 먹어도 같은 걸 계속 먹으면 물리잖아요. 음악도 어떻게 하면 새롭고 좀 더 맛있게 내놓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는 '나한테 답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틀려요?' 음악엔 정답이 따로 없어요. 열심히 연구해서 스스로 깨우친 학생에겐 올바른 길을 가도록 안내를 해줄 수 있지만, 잘 모르는 학생에게 처음부터 답을 가르쳐준다면 진정한 선생이 아니죠."

 우리나라 교향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최고의 지휘자이자 뚜렷한 음악관으로 단원과 학생들에게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온 林憲政교수의 새해 소망은 무엇일까.

 "부천홀이 완공될 때까지 열심히 지휘하고, 재능 있는 후배들을 발굴하는 데 매진해야죠. 내가 좋아서, 행복해서 음악을 하는 것이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새로운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거고요."

 약속한 시간이 다되자 林憲政교수는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한 뒤 경쾌한 걸음걸이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옆방으로 향했다.〈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