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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2009년 1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安 哲 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좌교수



 -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어젯밤 두바이에서 귀국해 아침 7시 반에 조찬모임에 참석했습니다. 11시부터 안철수연구소 신입직원들과 간담회, 12시엔 Working Lunch 회의, 1시부터 연세대 학생들과 만날 예정이고, 2시에 대학교수님과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전으로 내려가 5시부터 시작되는 학과 설명회에 참석해야 돼요."


 - 식사는 하시나요.

 "(웃음) 네. 그 이후부턴 책을 쓰거나 개인적인 일을 주로 합니다. 안철수연구소 CEO일 때 책 10권을 집필했는데, 자투리 시간이 없었으면 아마 못 썼겠죠."


 - 오늘 신입사원과 학생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실 계획이세요.

 "흔히 사람들은 질문을 하면 제가 답하기를 바라는데, 저는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창의력은 좋은 질문에서부터 나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이 듣고 싶어하는 답을 만드는 데만 익숙하지 좋은 질문에 대한 가치나 질문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실력 있는 경영자인데, 좋은 답을 하는 사람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니 이런 것들이 고쳐져야 우리나라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질문을 진짜 잘해야겠네요. 아이고 부담스러워라(웃음). 얼마 전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는데, 만족하셨나요.

 "그날 네 시간을 촬영했는데, 방송에 나온 건 한 시간이었어요. 심각한 내용은 많이 잘렸고(웃음), 가벼운 터치로 진행됐던 것 같아요. 제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젊은 사람들이 도전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과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사회도 한 번 돌아보는 사회적 책임을 알리는 거였는데 이 두 가지는 잘 전달된 것 같습니다."

 安교수가 지난 2005년 안철수연구소 CEO에서 물러나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를 받고 KAIST 석좌교수로 오게 된 것도 바로 이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 여기까지 오게 해준 인생의 멘토는 어떤 분들인가요.

 "그동안 제 직업을 보면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영자, 작가 그리고 현재는 교수로 있으니 다섯 개인데, 책을 통해서 직업별로 롤모델을 많이 접했습니다."

 安교수는 술, 담배, 골프를 하지 않는다. 이에 버금가는 취미는 책 읽는 것과 영화 보는 정도. 그래서인지 인터뷰의 절반은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도전정신과 심지있는 철학 그리고 겸손함이 책과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정말 실패할 것을 막았다'고 할 분이 있다면.

 "교수로서 저의 롤모델들은 와튼스쿨 시절의 교수님들인데, 제 평생 처음으로 '교수가 저렇게 멋있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죠."



 - 한두 분 소개해 주세요.

 "창업마케팅을 가르치는 랜 로디쉬 교수님은 뛰어난 학자일 뿐만 아니라 창업도 하시면서 서른 개 정도의 회사를 직접 도운 분입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떤 학생이 사업계획서를 들고와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수표 한 장을 건네주더랍니다. 창업할 생각이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당장 거기에 올인하라는 뜻이었죠. 그래서 그 학생은 일종의 창업지원금을 받아 열심히 회사를 운영했고, 이를 책으로 발간했는데 그 책이 소개되면서 알려지게 됐죠.

 또 다른 교수는 변호사 시절에 경영이 부실한 회사를 매입해 잘 성장시켜 이를 되파는 Private Company Acquisition을 주로 담당하면서 상당한 부를 축적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가르치는 것이 너무 좋아 와튼스쿨에 오셨는데, '한 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라는 말처럼 자신의 제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돕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파이낸스를 가르치는 교수 한 분은 터키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며 국영기업을 매각하는 사업에 참여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그 경험들을 강의하시더라고요. 이렇게 현장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강의를 하니까 배움의 깊이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크죠."


 - 安교수의 저서에는 이런 현장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저는 대부분의 생을 현장에서 보낸 사람이지만 제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 원칙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강조하지는 않아요. 저는 고생했다고 토로하거나 성공했다고 떠벌리는 스타일도 아니고, 현장 경험담을 하면 결국 제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렇게 잘난 사람이 됐다는 얘기밖에 안되니 잘 안 하는 편이에요."


 - 열한 번째 책은 언제 나오나요.

 "지금 쓰고 있는 책은 '경영자가 잘못 알기 쉬운 경영상식 50가지'(가칭)입니다. 다시 찾은 와튼스쿨에서 공부하면서 지난 10년간 CEO를 했는데도 제가 반대로 알고 있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과목마다 메모를 하니까 50가지 정도 돼요."

 아직 발간되지도 않았는데 내용을 공개해 누가 인용하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그렇지 않아요. 주제가 다른데요"라고 가볍게 넘겼다.

 "'기업가 정신'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를 '경영자 정신'으로 잘못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기업가 정신은 경영자 마인드가 아니다'라고 썼어요. 또 하나는 벤처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시장에 먼저 진입해 제품을 팔아야 성공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엉성한 제품을 내놓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역시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을 담았어요. 그리고 지난번 이사회 때 어느 기자 분께 이렇게 물어봤어요. '이사회가 경영기구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그랬더니 '이사회는 경영기구는 아니지 않느냐'고 해서 '지배구조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모았습니다. 그동안 강의 때문에 정리할 시간이 없었는데 방학동안에 마무리짓고 내년 초에 발간할 생각입니다."


 -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소설책 보는 재미에 빠져있습니다. 참 이상하더라고요. 중ㆍ고등학교 때 소설만 읽다가 의대시절엔 전공서적과 컴퓨터 관련 책들, 경영자일 때는 경영서적을 많이 봤었는데 작년부터 어릴 때처럼 소설책이 손에 많이 잡히는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도 봤는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孔枝泳씨의 '도가니'도 읽었고, 제임스 패터슨의 원작소설들도 봤고요. 또 스웨던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을 읽었는데 깊이 있고 좋더라고요."


 - 책은 출판사 서평을 보고 고르세요.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작이 나오면 무조건 사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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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작가들인가요.

 "'티핑 포인트', '블링크' 등을 저술한 뉴욕 칼럼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의 작품은 다 봅니다. 이번에 1년만에 책을 냈는데, 제목이 'What the Dog Saw'에요.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간접경험하고 싶은 속성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종합병원의 의사생활을 드라마나 소설로 만들면 잘 팔리잖아요. 그래서 이 책도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내용인데 어제부터 읽고 있습니다. 또 토머스 L. 프리드만의 책들은 대부분 좋아하고요.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는 존 그리샴, 그리고 이번에 마이클 크라이튼의 마지막 유작이 나오는데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安교수의 상상력은 독서에서 나온다고 봐도 되나요.

 "요즘엔 안 그런데, 어릴 때는 책의 줄거리는 보지 않고 작가나 주인공의 입장이 돼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더 흥미가 있었어요. 주인공이 제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 '왜 그랬을까'하고 사람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니 다 읽은 다음에는 누가 줄거리를 물어보면 기억이 안나요(웃음). 저는 책의 이야기들을 당시에 제가 처한 상황과 연관지어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중에 회사경영을 할 때 조직생활을 한 번도 이끈 경험이 없는데도 나름대로 잘했다고 생각해요."


 - 교수 다음 직업은 생각하신 적이 있으세요.

 "현재의 일이 저에겐 가장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직은 없습니다. 저는 대학강의만 하기 위해 교수직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넉 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외부강의만 백 번 정도 했습니다. 한 학기에 백 번이니까 5년간 하면 천 번이잖아요. 그 정도 하면 제가 전달하고 싶은 두 가지 메시지가 사회 전반에 걸쳐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릎팍도사'에 나간 것도 이런 이유였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봐서 지금은 외부강의를 잘 안 합니다."


 - 외부강의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카네기멜론대의 랜디 파우치 교수가 마지막 강의에서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100% 동의하거든요. 강의 주제는 다양합니다. 우선 안철수연구소에서 10년간 경험한 내용과 컴퓨터 보안 강의를 비롯해 대학생들이 컨버전스 시대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는 이유와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등 10개 정도됩니다."


 -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내용은.

 "결국 인생에서 안정이란 것은 없으며, 인생의 본질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험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 안전한 것 같지만 결코 안정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주변에서 흔히 보잖아요. 제가 와튼스쿨을 졸업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월스트리트에 취직했지만 반년도 안 돼서 금융위기로 많이 해고되더라고요."


 - 그렇다면 대학교에선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세요.

 "제 수업시간에는 교과서 내용을 요약해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기업가 정신' 강의에서는 중요한 질문 3가지를 던집니다. 첫째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가, 둘째 어떤 사람들이 기업가가 돼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그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사업을 해야 되는가를 묻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답을 찾는 데 많은 자료들을 제공합니다. 한 학기동안 Harvard Business Case 7개와 책 4권을 읽게 하고 기말리포트로 '내 인생의 비즈니스 플랜은 무엇인가'를 작성하게 하는데, 학생들의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산을 정복할 때 사실 정상에 있는 시간은 짧고, 대부분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내려가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정상만 보잖아요. 나머지는 인고의 과정인데…. 그래서 그 과정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할 시간을 주려고 하죠."


 - 앞으로 20년 뒤에 자신을 되돌아볼 때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되돌아보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계속 앞만 보고 달려왔고요. 후회할 일들도 있겠지만, 괜한 감정소비로 시간을 허비하거나 자만에 빠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나오는 기사들은 잘 안 보는 편이에요. '무릎팍도사'도 몇 달 후에 한 번 봤어요."


 -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된 바 있는데.

 "지난 2001년 모교에서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주셨는데, 저를 선정할 때 말들이 좀 있었다고 해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인데, 이 상을 주고 나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상이 부끄럽지 않겠냐는 거였어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정말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朴婉緖선생님과 함께 인촌상을 받을 때 '이 상을 벌로 생각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 연구소 입구에 보니 여기저기서 받은 훈장, 아니 '벌장'이 많던데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전주의 어느 조그마한 시민학교에 강의하러 간 적이 있는데, 강의료를 안 받으니 이분들도 너무 미안하니까 강연 도중에 어디서 구했는지 고구마 한 상자를 준비해서 주시더라고요. 제 딸이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어 고구마 한 상자를 부부 둘이서 석 달 동안 정말 맛있고 고맙게 먹었어요. 그런 게 훈장이죠.(웃음)"

 벤처기업가이자 차세대 리더로서 한 마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 벤처기업의 신화이신 만큼, 우리나라 벤처기업에 대해 정부의 역할은.

 "중요한 것은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벤처기업들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도 병행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실제 회사업무를 적용해볼 수 있는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대기업에서 정년 퇴임하거나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전문가들을 멘토로 활용하는 것이죠. 중소기업과 대기업 및 공공기관 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도 철저히 조사해 투명하고 공정한 시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의 앞으로 5년을 어떻게 전망하세요.

 "위기의 크기에 비해 문제의식이 분산돼 있어서, 즉 해법이 너무 제각각인 것이 진짜 위기라고 봅니다. 지금은 경제위기지만, 5년 내에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대기업이 잘돼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환난 때 증명됐듯이 대기업과 벤처ㆍ중소기업은 서로 공존해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대기업 근로자가 1백30만명, 공무원이 약 1백만명인데, 나머지 4천만명은 어디서 먹고 살아야 하나요? 대기업이 국내에서 상당부분의 이익을 내면서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는데, 국내 소비자가 사줬기 때문에 기술이 안정되고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경제위기를 맞은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벤처ㆍ중소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합니다."


 - 2010년의 목표는.

 "이곳 KAIST에 와서 과학자나 엔지니어 학부생들에게 경영에 대한 시각을 넓혀 준 것이 굉장히 보람되고 좋았어요. 우리나라는 기술투자는 많은데 상업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다 보니 막대한 재원이 낭비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점을 정부가 깨닫고 엔지니어들을 훌륭한 기업가로 육성시킬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을 세우는 데 지원해 줬습니다. 얼마 전에 첫 신입생을 뽑았고, 내년부터 강의할 예정입니다."


 - 동문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원하든 원치 않든, 이왕 갖게 된 능력은 합당한 일에 사용해야 된다는 의미인데요. 저도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봐주셔서 남다른 책임감을 가지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혜택을 받는 자리에 있을 때는 그 혜택에 상응하는 일을 해내거나 그만한 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만 있고 할 일을 안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마지막으로 '安哲秀'는 왜 '安哲秀'입니까.

 "사실 제가 가진 모든 생각들은 책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이 엮여서 제 생각처럼 자리잡게 된 것 같습니다. 독일의 문호 마틴 발저가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한 것처럼 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진=李五峰논설위원ㆍ정리=表智媛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