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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2009년 1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블루사이코'의 추억




 라면 한 그릇에 1백원 하던 시절을 얘기하면 후배들 눈이 둥그레진다. 그냥 라면은 1백원, 계란라면은 1백50원…. 20년도 더 전인 1986년 서울대 학생회관 라면 값이 그랬다. 공깡(공대식당)에서 여름마다 팔던 1백50원짜리 비빔냉면도 줄서서 먹는 명물 중 하나였다.

 당시 서울대에는 은근히 명물이 많았다. 이태원 나이트클럽 춤 대회에 나가서 당당히 2위에 입상, 보기에도 민망한 새빨간 스타킹을 부상으로 받아왔던 경영학과 댄스제왕은 괴짜나 명물 축에도 못 끼었다. 단과대별로 명물, 괴짜들이 어김없이 한두 명은 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 때 학교 전체를 통틀어 누구나 다 아는 명물이라면 단연 '블루사이코'였다.

 서울대 도서관 1층 명당에 자리잡고 앉아 지나가는 여학생들한테 관상도 봐주고 각종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블루사이코'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말 새파란 색으로 휘감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파란색 바바리와 바지, 구두와 양말을 샀을까 의문이 들만큼 파란색 일색이었다. 자기의 사주팔자에 파란색이 이롭기 때문에 온몸을 파랑으로 감싸고 다닌다는 설명이었는데 친구들끼리 '블루사이코'의 속옷은 파란색일까, 흰색일까 내기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 서울대에선 이른바 명물이나 괴짜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고2 혹은 고3 여름방학 때까지 학교 담장을 넘나들며 각종 괴짜 짓을 서슴지 않다가도 정작 시험 때 바짝 공부해서 서울대에 당당히 입학하는 '괴짜 천재'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최소한 초등학교 5∼6학년부터 엄마의 지도편달아래 내신관리 엄격하게 하고 각종 외부대회 수상실적을 쌓아 놓지 않고는 서울대는 꿈도 꾸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들 표현에 의하면 "받아쓰기만 잘할 뿐 2시간 강의 내내 질문 한마디 안 하는 표준형 '범생이'들만 들어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회사에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을 봐도 서울대생들 특유의 반짝반짝하는 총기, 남다른 날카로움, 톡톡 튀는 발상의 전환 같은 장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푸념이 많다. 서울대 들어가기는 20년 전부터 5∼6배는 어려워진 것 같은데도 서울대의 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괴짜, 천재, 명물이 사라진 서울대는 어려서부터 엄마 스케줄에 따라 학원으로 뺑뺑이 도는 이 시대 입시전쟁의 결과가 아닐까. 새삼 입맛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