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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호 2009년 10월] 문화 꽁트

위 인 전




 김 아무개 하면 여러분은 언뜻 '병 속에 든 새'로 문명을 떨친 바 있는 소설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소개하려는 김 아무개 씨는 물론 다른 사람이다. 연배가 다르고, 용모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인품이 다르고, 처지가 다르다. 한마디로 살아온 길이 다르다. 게다가 이름도 한글로는 같지만, 호적에 박히는 한자로는 가운데 글자가 다르다. 그러니 구태여 동명이인이랄 것까지도 없겠다. 그러나 새삼 흥미를 가지고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둘 사이에 비슷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 굳이 따지고 들자면 꽤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인연이라고 말하면 어불성설이 될 테지만, 세상 이치가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니냐는 소회쯤 나올 법도 하다.

 저쪽 김 씨는 절(寺)집·돌(碁)집·글(文)집 등 三家를 들랑거리며 육십갑자를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쪽 김 씨는 이른바 三房을 어릴 적부터 뒷간 드나들듯 출입하며 마침내 대가의 반열에 오른 위인이다. 그 삼방이란 곧 노름방·낚싯방·계집방이니, 평생을 다 바쳐 한 구멍을 파도 문턱에 겨우 이를까 말까 싶은 장삼이사들로서는 기가 타악 막히고 맥이 절로 풀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천지간 만물이 다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어 생겨났다는 선현의 말씀을 곧이듣고, 그 미혹된 위안에 기대어 불우한 처지를 그런대로 견디며 살아온 이들 중에는 김 씨 같은 걸물이 이 세상에 더불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왠지 속아 살아온 듯한 기분에 들끓는 부아를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하고 텅 빈 하늘에다 감자를 먹이며 고래고래 악을 쓰는 축도 더러는 있을 터. 하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늘에서는 위로의 한 마디는커녕 눈물 한 방울 내려주지 않는 것을. 아니, 더럽게 재수 좋은 이라면, 날벼락은 아니더라도 거품을 문 입에 떨궈지는 새똥 한 점쯤 천상의 선물로 받을지도 모르겠다.

 범속한 무리들은 한 가지만 챙겨도 남부러울 게 없는 터에 김 씨가 그 찬란한 세 분야에서 각각 일가를 이뤄 절대 無比의 독보적 경지에 도달했음을 생각하면, 본인의 신상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거기에 얽힌 사연에 대해서도 자못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알려져 있지 않거니와 어쨌든 그 기량과 기예가 얼마나 높고 깊은 수준인지, 항간에 떠도는 토막말이나마 듣는 사람 치고 찬탄과 경악으로 숨넘어가지 않는 이가 드물다.

 우선 노름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는 장소불문·종류불문·상대불문의 3대 불문율을 신조로 삼고 있는데, 그러니까 앉았다 하면 그곳이 판이고, 쥐었다 하면 그것이 패고, 만났다 하면 그가 짝이다. 판을 벌임에 있어 높은 데 낮은 데 진 데 마른 데 가림이 없고, 패를 만짐에 있어 모나고 둥글고 부드럽고 딱딱함의 구분이 없으며, 짝을 이룸에 있어 남녀노소는 물론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 말하자면 그는 꿈속에서 황진이를 만나 하룻밤 수작에 목숨을 걸고 한 판 벌일 수 있는 위인이다.

 언젠가 잠깐 얻어들은 바에 따르면 그는 부친의 씨주머니속에 들어앉아 있을 때부터 패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벌써 2억에 달하는 경쟁자들과 판을 벌여 제비뽑기로 예선을 통과하고, 뺑뺑이 돌리기로 16강전, 마작으로 8강전, 고스톱으로 4강전, 도리짓고땡으로 준결승전을 돌파한 다음, 단판 승부의 포커로 결승전을 장식함으로써 마침내 지존무상의 지위와 함께 대망의 생존권을 쟁취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현신한 뒤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가는 곳마다 판쓸기를 거듭하니 어느 누가 그와 대적할 마음이 나겠는가.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다들 고개를 틀거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리는 바람에 상대할 짝이 없어져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처지가 돼버린 지금에 와서는, 변두리 시장 바닥에서 박보장기판을 기웃거리거나 뒷골목 빈터에서 동네 조무래기들과 동전치기를 하면서 노름꾼의 본능을 달래고 있다.

 낚시 솜씨로 말할 것 같으면, 두 가지 사례를 드는 것으로 족하지 싶다. 한 번은 동네 앞 개골창에서 팔뚝만한 갈치를 주렁주렁 낚아 올렸고, 또 한 번은 인천 앞바다에 놀러 갔다가 갓난애 몸뚱이만한 가물치를 쌍낚바늘에 각각 한 마리씩 걸어 올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전설처럼 항간에 떠돌고 있거니와, 민물에서 바닷고기를 잡고 바다에서 민물고기를 잡아냈으니 이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벌어진 입을 끝내 다물지 못하고 그 어긋난 턱뼈를 교정하기 위해 정형외과로 달려간 숫자가 반,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하고 어리둥절한 채 넋을 놓고 있다가 물에 빠지거나 뚝방 아래로 굴러 떨어진 숫자가 반이었다.

 낚시에 있어서도 그는 예의 3대 불문율을 신조로 삼고 있으니 바늘을 쓰기는 하되 미늘 없는 바늘을 쓴다는 것이 그 하나요, 동물성이건 식물성이건 광물성이건 미끼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둘이요, 물고기를 잡은 뒤에는 반드시 상처 하나 없이 되돌려 보낸다는 것이 그 셋이다. 그의 손에 걸렸다가 살아서 돌아간 숫자가 적어도 시 단위 인구는 될 터인데, 그가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그 절반은 두 번 이상 잡힌 것들이고, 때로는 1호 바늘 하나에 메기 3대가 줄줄이 걸려 올라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수면 위로 올라와 눈알을 껌벅이는 모양만 봐도 그 녀석이 언제 어디서 잡혔던 놈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노름방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슬슬 달아나 버리는 것과는 반대로 그가 낚싯방에만 나타나면 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것은, 물론 그의 절륜한 기술을 한마디나마 귀동냥하기 위함이다. 온갖 질문과 함께 펼쳐진 성찬 앞에서 그는 마치 오랜 고행을 마치고 저잣거리에 나타난 수도승처럼 지긋한 눈길로 주위를 일별하고 나서 마침내 일갈하니, 그 말씀이 이러했다.

 "태초에 물고기 있었고, 물고기가 있고 나자 사람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 말의 깊은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자 없으매, 그가 가슴을 치며 탄식하기를 "주 용왕님, 저 어리석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부르짖은 다음, 물고기보다 더욱 멀뚱한 눈으로 앉아 있는 이들을 향해 벼락같이 화를 내며 다시 가로되, "용궁에나 다녀들 오셔!" 했다.

 그러자 그를 에워싸고 앉았던 이들은 우르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랫골목에 새로 들어선 술집으로 몰려갔는데, 그 집 이름이 용궁싸롱인가 그랬다.

 끝으로, 그의 계집방 출입에 대해서는 다른 사설 늘어놓을 것 없이 그의 왼쪽 콧방울 위에 팥알만한 점 하나 도도록이 앉아 있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으리라. 이 사마귀에는 메기 수염만한 터럭까지 한 올 달려 있어서, 이 모양을 보는 사람마다 자못 궁금해하는 것이 있으니 누구는 곁눈질하고, 누구는 흘겨보고, 또 누구는 빤히 쏘아볼지라도, 그들이 하나같이 던지는 질문은 거기에도 그런 게 달려 있느냐는 것인바 그와 하룻밤 자고 난 여인네 치고 만리장성을 쌓다가 끝내는 까무러치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는 사실이 그 성능에 대한 설명이 될 터이고, 그 크기에 대해서는 그가 직접 대꾸한 말을 소개하면 족할 것인즉, "임자 녀석의 기분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가 그 대답이었다. 능소능대하다는 암시인데, 그러나 그의 연장을 직접 목격한 남정네가 없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반신반의의 답답함을 애써 삼키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라는 콧방귀와 함께 앵돌아져 떠나기 일쑤였다.

 하나 더 덧붙일 것은 그가 한때 세 여자를 동시에 거느리고 살았는데, 그 셋이 아옹다옹 다투기는커녕 친자매 이상으로 사이좋게 지내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로 서방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다가, 마침내 기진해 한날한시에 코피와 하혈을 쏟고 세상을 하직했다고 한다. 그 뒤로 그는 생판 딴사람이 되어 여자 보기를 돌보듯 했다.

 그 연유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풀이했다. 세 여자가 임종의 자리에서 남편에게 간청하기를, "애고애고, 우리가 죽고 나면 어느 누가 서방님을 보살필꼬. 마음 같아서는 저승까지 함께 가서 영원토록 모시고 싶소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부탁인데, 죽기 전에 마지막 시중을 드리고 싶으니 우리의 간절한 청을 뿌리치지 말아주오."

 그리하여 세 아내의 애틋한 수작을 받으며 사흘을 밤낮 없이 보낸 다음, 손톱 끝까지 밀려온 피로를 이기지 못해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세 여자는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나란히 누운 그녀들은 각각 터럭 한 올과 윗사마귀와 아랫사마귀를 입에 가득 물고 있었다. 터럭과 사마귀는 다시 돋아났지만 그 후로 그는 계집방 출입을 영영 그만뒀다는 것이다.

 이 미담은 아직도 누항 도처에 떠돌고 있으니 이를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 같이 전설 따라 삼천리를 대하듯 하는 것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허구이기를 바라는 심사의 반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