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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호 2009년 10월] 기고 감상평

正統과 正體性



 
아시는 바와 같이 서울대총동창회는 지난 3월 정기총회에서 참석동문의 전원찬성으로 통과된 '개교 원년 재조정' 문제를 모교 李長茂총장에게 건의했다. 그런 중에 한 동문의 전화를 받고 이 글을 쓰게 됐다. 이 동문은 그동안 병환으로 총회도 참석을 못했고, 동창회보도 꼼꼼히 읽지 못했다고 했다. 따라서 간단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그토록 복잡한 문제이거나 그 뒤에 어떤 꿍꿍이 속셈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억지춘향'식으로 校史를 엿장수 엿가락 맘대로 늘리듯 재조정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처음 이 문제가 동문간 화두에 올랐을 때 林光洙회장은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하셨다. 먼저 동창회보를 통해 '紙上贊反討論'을 벌였으며, 한편으로는 본회 회장단, 본보 논설위원, 기고자 및 집행소위원들과 10여 차례의 모임을 갖고 난상토론을 거쳤다. 또 史學의 李泰鎭원로교수(모교 前인문대 학장·現명예교수)에게 위탁해 무려 2백83쪽에 달하는 '연구보고서'를 작성 제출케 했다. 이를 토대로 高宗의 칙령으로 1895년 5월 6일 설립된 法官養成所의 개설일을 모교의 개교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는 '컨센서스'를 얻게 됐다.

 세계의 모든 대학이 개교 원년을 설정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單線型'인 경우다. 대학의 역사가 단선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아무리 미미한 시작이라도 그 연원부터 따져 역사를 그대로 이어내려 오는 경우다. 교사 1명에 학생이 9명밖에 안 되는 목사양성소가 하버드대의 鼻祖다. 국내에서는 중앙대가 종로 중앙교회에서 창설한 중앙유치원을 그 모태로 삼고 있다.

 둘째는 '統合型'인 경우다. 대학이 성장과정에서 독립적인 대등한 기관들과 통합하는 경우이다. '카네기'공대와 '멜론'연구소가 통합해 만들어진 '카네기·멜론'대는 그 개교 원년을 통합시기인 1969년으로 하지 않고 역사가 더 긴 '카네기'공대의 개교 원년인 1905년을 '카네기·멜론'대의 개교 원년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는 연세대가 1957년 '연희대'와 '세브란스'의대가 통합해 설립됐다. 하지만 개교 원년을 1957년으로 하지 않고 '연희대'보다 역사가 긴 '세브란스'의대의 설립연도인 1885년을 '연세대'의 개교 원년으로 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모교인 서울대는 두 번째인 統合型 케이스다. 해방이 되자 미군정은 법령 102호로 10개 기관(9개 전문대와 1개 대학)을 통합해 국립 서울대학교를 설립했다. 따라서 10개 학교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서울 법대의 鼻祖 法官養成所의 개설을 개교 원년으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正統을 지키며 正體性을 바로 세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법관양성소는 첫 해에 50명이 입학해 47명이 졸업했으며, 李 儁열사와 咸台永 前부통령이 제1회 졸업생이었다. 당시 신문명을 수용하기 위한 기간 인재양성 교육기관으로서 그 규모와 질에 있어서 어느 나라 대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또 혼동하기 쉬울 것 같아 이 한마디를 꼭 첨언해야겠다. 소위 '國大案'이 채택되기 전에 '綜大案'이란 게 일시적으로 계획된 적이 있다. 이 안은 '경성대'를 중심으로 확대해 7개 대학과 1개 대학원의 종합대학교로 개편하려는 구상이었다. 만일 '綜大案'이 채택돼 오늘에 이르렀다면 개교 원년 재조정이라는 말조차도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일제가 京城帝國大學을 설립한 1924년을 개교 원년으로 복원한다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영락없이 일제 망령의 부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말하는 개교 원년 재조정은 이와 전혀 다른, 日帝 殘滓의 淸算작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토록 떳떳하고 중요한 문제를 왜 여태까지 내버려뒀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있었던가. 恒産者에게 恒心이라고나 할까.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락구석에 처박혀 있던 족보를 꺼내 먼지를 털고 정리하는 격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自畵像이 아니던가.

 모교는 지금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유장한 역사와 막강한 재정력을 가진 명문대학들과 경쟁해야 한다. 동창회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선 반토막난 校史라도 제대로 찾아 보탬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이 충정을 동문들이 헤아려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