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379호 2009년 10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연구비 지원 때 학교·지역 안배없이 능력중심으로 평가"



 - 초대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출발선에 서신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장기화되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지식창출과 인재양성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학술 진흥과 연구개발의 선진화를 이끌어야 하는 한국연구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십니까.

 "우선 통합 연구지원 전문기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 선진화된 기초 연구지원시스템을 확립하고 연구자의 만족도를 높이도록 애쓰겠습니다.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지면 다양한 국제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다섯 가지 실천과제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선 모든 학문 및 연구 분야에 대한 균형적이고 종합적인 지원체제를 구축하고, 연구자 중심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려 합니다. 다음으론 선진형 연구관리전문가(Program Manager) 제도를 조기에 정착시켜 연구관리의 품질을 높이는 한편, 연구성과의 사회적 활용을 증대시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연구재단 조직 운영의 선진성과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 과거 과학재단이나 '학진'은 그 자체로 거대 기관이었고, 또 나름대로 엄청난 지원사업을 해 와서 각기 헤게모니가 있었을 텐데요. 따라서 단기간에 물리적 통합은 됐지만 화학적 통합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실 지 가장 관심거리인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직원들을 배치할 때도 1, 2, 3지망을 써내라고 했습니다. 물리적 통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려 한 것이죠. 다 반영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맞추려 애썼습니다. 사실 물리적 통합도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에요. 지금 대전 청사에 건물을 짓고 있는데 완공되면 서울 청사에는 국제협력센터만 남게 됩니다. 일단 다 모이면 체육대회를 한다든지, 등산을 한다든지 어떻게 해서든 화학적 결합도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결국은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 통합과정에서도 말이 많았던 게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결합이란 말이죠. 그래서 초대 이사장이 어느 분야에서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죠. 과학기술 분야의 이사장이 와서 인문사회 분야가 홀대를 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코디네이팅할 계획이신지.

 "우선 5E 원칙을 정했어요. 탁월성(Excellence), 형평성(Equity), 효율성(Efficiency), 전문성(Expertise), 소통성(Exchange)의 머리 글자를 딴 것이죠. 그 중에서 형평성에 대해 많은 분들이 염려해요. 하지만 형평성이란 나눠먹기가 아니라 모든 분야를 골고루 지원하겠다는 것이거든요. 또 지적하셨다시피 인문계가 걱정이라고 한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중요한 것은 요즘 같은 융합시대엔 인문사회와 자연과학이 같이 가지 않으면 새로운 창조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인문사회와 이공계가 융합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요. 또 그렇게 가야하고요."


 - 성공지상주의 연구지원도 문제인데.

 "저는 실패를 허용하는 분위기를 만들겠습니다.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할 때 그게 1백% 성공한다면 그건 연구가 아닙니다. 창조적 연구는 더욱 아니고요."



 - 이번 '나로호' 경우도 마찬가지이겠죠.

 "그럼요. 실패를,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허용해야죠. 'High risk, High return' 아닙니까. 그런 방향으로 분위기가 조성되겠죠. 특히 독창성이 뛰어난 연구 제안서를 우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려 해요. 그래야 실패를 무릅쓰고 과감한 독창과 예측을 갖고 올 테니까요."


 - 2조6천억원이라는 예산은 정말 막대한 규모입니다. 공정하게 분배돼야 할 텐데요.

 "한국적인 현실이긴 합니다만, 이사장이 되니까 대학 총장님들을 비롯해서 여러 분들이 전화해서 '안배'를 이야기하시더군요. 그래서 '우린 안배라는 것이 절대로 없다'고 했어요. 공학연구센터(ERC)나 과학연구센터(SRC)에 지원한 총장들인데, 어떤 분들은 찾아오겠다고 해요. 그래서 찾아오지 마시라고 했어요. 안배로는 학문을 발전시킬 수 없거든요. 연구비를 따려면 실력을 키워서 하라는 거죠. 그래서 과거의 나눠 먹기식, 이미 다 했던 것을 다시 제출해 연구비를 타가던 관행을 이번 기회에 싹 없앨 거예요."


 - 연구재단의 역할 중에서 '사후평가'를 엄격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연구재단이 연구비 분배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다행히 제 자신이 대학 총장도 했고, 재단에 연구비 신청도 많이 해봤고, 평가도 해 본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게 잘못이고 문제인지 잘 알아요. 그래서 상근 연구관리전문가(Program Manager) 21명과 비상근 PM 2백80명을 뒀어요.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재단 안에서는 이사장이 절대로 뭐에 안배를 한다거나 학연, 지연 등을 따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났어요."


 - 李明博정부 들어서 과학기술계의 피해의식이 큰 것 같아요. 한국연구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그런 부분을 불식시키고,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드릴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신 게 있으신가요.

 "제가 李明博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했고, 당선 후 당선인 정책위원, 과학기술특보를 하지 않았습니까. 李대통령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인식하고 계세요. 선거 때도 '경제를 살리자'고 하실 때 제가 옆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수긍을 하셨거든요.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칠 때 대통령의 의지는 그게 아니었어요. 교육부의 업무 중 초·중·고 관련 일은 지방자치단체로 보내고 고급인재 양성기능을 과기부와 합쳐서 좋은 인재양성에 힘을 쏟자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실천이 안 되는 거예요. 대통령께서는 과학기술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교육과학기술부 초대 장관으로 공학자를 기용하셨죠. 아깝게도 장수하지 못했지만…. 어찌됐든 대통령께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계세요."


 - 인문사회 분야 분들과 스킨십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스킨십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인문사회 분야를 우대하려고 해요. 제가 컴퓨터 분야 중에서도 가상현실 분야를 공부했지만, 지금 컴퓨터 분야는 완전히 융합이라 인문사회와 자연 이공계가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또 저희 재단에 융복합단이 있어요. '학진' 때보다 좀 더 세분화해서 지원을 많이 하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자연과학 80%, 인문사회 10%, 공동비용 10% 등 예산을 갖고 얘기하시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이공계는 기기, 장비가 무척 고가입니다. 사실 과제 수는 오히려 인문 쪽이 더 많습니다. 연구재단이 인문 쪽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더 노력해야죠."






 - 대한민국이 가진 일종의 강박관념이지만 노벨 과학상에 대한 꿈이 커요. 우리나라의 국력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면 조만간 한 분쯤 받았으면 하는데, 이사장으로 오시면서 이에 대한 기대나 바람이 있는지요.

 "노벨상 받는 사람들은 수십 년의 연구업적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러니까 젊고 미래가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6·25전쟁 이후 경제를 살려야 돼서 기초과학을 완전히 무시했는데, 그 당시 일본은 패전국인데도 기초와 연구개발 쪽을 같이 지원했거든요. 그래서 현재 매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된 거죠. 생명과학을 연구하고 계신 미국 UC버클리의 金聖浩(화학60졸)교수를 비롯해 BT 분야가 제일 유망하지 않을까 싶어요. IT쪽은 상이 없으니까. 아무튼 젊은 교수들, 장래가 유망한 사람들을 지금부터 자꾸 길러야 돼요. 우리가 스타 과학자를 만들어야 돼요."


 - 예전 얘기 좀 하죠. 재미과학기술자협회(이하 재미과협)가 주축이 돼서 해외 인재들을 규합하고 상당수가 이를 통해 국내 유치 과학자로 들어와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는데, 이사장님께서도 많은 일을 하셨죠.

 "197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초창기에 왔어요. 1회 입학생부터 4회까지 가르치다가 1976년 여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후 1989년 12월에 포스텍(당시 포항공대) 金浩吉(물리56졸)총장이 불러서 다시 들어왔죠. 같이 재미과협에서 활동하던 시절 우리가 약속한 게 있어요. 그때 우리가 밤낮 이야기한 게 '왜 한국에는 중앙에만 좋은 대학이 있느냐, 지방에 좋은 대학이 생기면 다같이 나가서 일하자'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몇 년 후 金浩吉박사가 총장이 돼 우리보고 '이젠 약속 지켜라. 훌륭한 학교가 될 테니까 나오라'고 해서 李貞默(조선항공54 - 58)박사와 저를 비롯해 재미과협 회원들이 여럿이 왔어요. 워싱턴 마피아라고 불렸죠.(웃음)"


 - 화학공학을 전공하셨는데 컴퓨터공학으로 바꾸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화공학과 시절, 첫 학기인 1960년 2월에 '화공학자를 위한 수학' 과목을 수강하던 중에 교수님의 오류를 발견한 것이 인연이 돼 같은 해 9월 학기에 공과대학 교수님들을 위해 개설한 컴퓨터과목을 듣게 됐습니다. 그 이듬해 메릴랜드대에 처음 도입된 컴퓨터실에서 거의 매일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면서 컴퓨터에 빠져들었죠. 이후 컴퓨터를 활용해 공학 석·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메릴랜드대 전자계산학과 조교수로 부임하게 됐죠."


 - 이사장님은 가상현실 전문가이신데요. 그 분야야말로 융합 아닙니까. 영화, 건축, 예술 분야가 다 연관이 되고 부가가치가 높아 산업화도 가능한 분야죠. 중책을 맡으셨지만 관심 분야를 손놓고 계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포스텍 총장을 하면서도 다른 것은 안 해도 가상현실 분야는 꾸준히 연구해 왔습니다. 북한 평양정보센터(PIC)와 공동으로 7년간 연구했어요. 가상현실 분야에서도 건축분야죠. 북한이 '산악'이란   캐드(CAD)시스템을 개발했어요. 북한은 3차원은 '산악', 2차원은 '들'이라고 해요. 재미있죠. 하여간 3차원 컴퓨터 보조설계 프로그램이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오토캐드2002' 보다 절대 떨어지지 않아요. 가격은 몇 십 분의 1인 반면에. PIC 소장이 건축을 한 분이에요.

 건물 설계를 하면 설계한 건물이 항상 뭔가 잘못된 곳이 있거든요. 그래서 집을 짓고 보면 '아, 이거 설계가 잘못됐다'고 해서 돈이 굉장히 많이 들죠. 그것을 컴퓨터 가상현실로 미리 체크해 보는 거예요. 'Walk through'라고 하죠. 들어가서 사이버 상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서 진짜로 집을 지을 때는 하자를 줄이는 겁니다. '워크스루'는 포스텍에서 개발했어요. 그래서 같이 7년을 했습니다. 지금도 포스텍에 제가 시작한 실험실이 있어요. 가끔 그쪽에 가면 들르죠. 실제로 연구는 못하고요. 제자들이 하고 있죠."


 - 남북한 IT교류를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관심을 갖게 된 동기와 현재 추진상황이 궁금합니다.

 "북한의 IT에 대한 관심은 1990년 중국 옌볜에서 북한 과학원의 려철기 교수를 만난 후부터 시작됐습니다. 제가 북한과의 IT교류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통일이 되면 남북한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IT를 포함한 과학기술 분야의 교류·협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대비해 계속적으로 북한과 교류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저는 '북한의 정보통신기술(2003)'과 'IT로 말하는 통일 한국의 미래(2005)' 등 북한 IT관련 저서를 공동으로 집필하고, 2001년 설립허가를 얻은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꾸준히 남북한 과학기술 교류를 추진해 왔습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이 남북한 과학기술 교류·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간 과학기술 협력의 거점을 점차 확대·다변화하고 있는 추세이므로, 북한과의 기술교류를 위한 연구지원도 점차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 연만하신데도 현역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어 행복하실 것 같아요.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세요.

 "웃는 게 건강의 비결이에요. 저를 보면 다들 기분이 좋아진데요. '一笑一少 一怒一老' 아닌가요. 게다가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저는 모교 기독동문회에도 관여를 하고 있어요.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 모교에 하고 싶은 말씀은.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이공계로 압축해서 보면 결국 세계 수준급이란 데가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이잖아요. 저는 묘하게도 다 연관돼 있어요. 서울대 동문이고 카이스트 초창기에 와서 4년을 가르쳐서 현재 제자들이 카이스트 중견교수들이고, 포스텍에서 거의 18년 가르쳤으니 3개 대학 동문인 셈이죠. 그래서 모두 다 잘되길 바라죠."


 - 모교 교수진이나 후배들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은.

 "오래 전 한 공익재단에서 해마다 교수해외연구 지원사업을 하는데 과학기술심사위원장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서울대 출신들이 내는 제안서는 심사위원들이 보자마자 집어 던져요. 정성을 안들이고 타자도 안하고 대충 써왔더군요. '우리 실력 있다' 이런 자만심이 강했던 거죠. 그런 태도가 참 보기 안 좋았어요. 특히 서울대인은 윤리와 인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바른 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드 스킬도 중요하지만 소프트 스킬이 받쳐 주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니까요. 저는 포스텍 총장일 때도 졸업 학점 1백20학점 중 29학점을 인문사회학을 택하게 했어요. 입학식 때도 신입생들에게 늘 '전문가가 되기 전에 인간이 돼라'고 강조했죠. 인간이 된 다음에 전문가가 돼야지, 인간답지 못하면서 전문가가 되면 '사회악'이거든요. 마지막으로 서울대 출신의 기라성같은 과학자들이 많이 배출돼 과학계의 잃었던 신망을 되찾아 줬으면 좋겠어요."

 〈사진=李五峰논설위원·정리=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