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호 2009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한글 전도사' 언어학과 李豪榮교수
"대학시절 한글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신 許 雄교수님께서 우리 민족은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데, 이는 금속활자, 거북선 그리고 한글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훌륭한 문화유산이 사장된 채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깝다고 하셨는데, 가슴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더라고요. 한글을 다른 나라에 보급하는 길은 없을까? 그때부터 가진 소망이 드디어 이뤄진 셈이죠."
지난해 7월 인도네시아 동남부에 위치한 술라웨시주 부톤섬의 바우바우시는 모교 언어학과 李豪榮(언어81-85)교수가 이끌고 있는 훈민정음학회와 '한글 보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재 인구 6만명인 바우바우시의 찌아찌아족은 정식으로 채택된 한글교과서로 찌아찌아어를 읽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기록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쾌거는 지난해 5월부터 李교수를 비롯한 5명의 언어전문가들이 '한글 보급의 세계화에 앞장서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력해온 결과이다.
"한국의 문화 알리는 게 목표"
"이전에 여러 교수님들께서 태국과 중국 등의 소수민족을 찾아가 한글을 가르치고 보급에 힘썼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어요. 모두가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한글이 세계 어느 문자체계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 인도네시아 전문가인 교수께서 바우바우시를 갔다왔다고 해요. 거기 시장도 한국 마니아고, 주민들도 한국을 좋아하니 괜찮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글교과서로 학생들을 교육하고, 코리아센터를 만들어 한국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안을 작성해 보냈더니 일주일만에 흔쾌히 승낙하더군요."
이후 가장 시급한 것이 제대로 된 한글교과서였다. 민간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라 정부지원도 없었다. 李교수는 지난해 12월 추운 겨울, 2명의 현지 교사와 함께 귀국했다.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한파에 온 몸은 얼지, 음식은 입에 맞지 않지, 가족 생각에 마음도 지치지…, 결국 교사 한 명을 조기 귀국시키고 가빗 아비딘 씨와 정말 어렵게 한글교과서를 완성시켰습니다."
李교수는 앞으로 한글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현지에 연수회를 열어 교육을 이수한 교사를 한국에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이는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국가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언어는 있는데 글이 없는 민족이 몇 천 개에 이릅니다. 한글이 로마문자에 비해 엄청난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세요? 핸드폰으로 영어 문장 써보세요. 오타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리잖아요. 한글로는 문자조합이 얼마나 잘돼요.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만 알지 우리국민이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글의 우수성을 실감하게 됐잖아요. 이렇게 수많은 민족에게 한글이 보급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앞으로 그는 동남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에도 한글 보급을 위해 앞장설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까. 이제는 살만큼 사는데 주는 게 별로 없잖아요. 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돈만 주면 감동이 없어요. 좋은 문화도 함께 전파해서 나라간 벽을 허물고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죠. 좋은 문화유산을 보급해 철학이 있고 존경할만한 가치관을 가진 나라로 인정받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영어로 말하는 로봇도 개발
李교수는 북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새터민들의 지역적응을 돕기 위해 지난 3월 노원구 공릉동에 개소한 서울 북부 하나센터에서 발음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새터민의 언어 적응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요.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말이 안 통한다는 거예요. 취업을 하고 싶어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주로 3D업종에서 열악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조금이라도 남한 말을 배우고 싶어서 새벽에 들어와 TV를 켜놓은 채 잠잔다고 하더라고요. 이들이 표준어를 하루빨리 잘 구사할 수 있도록 내가 맡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음성학 전문가라서 영어로 말하는 교육용 로봇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로봇과 직접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범사업이에요. 걸어다니고, 춤도 추고, 거기에다 로봇이 영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며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굉장한 일이죠. 이 사업이 잘만 된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에 수출도 가능합니다. 일본이 2015년까지 각 가정에 이러한 로봇을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우리가 먼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李교수는 런던대에서 음성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천직인 언어학과 교수의 길을 걷게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영어학원을 몇 개월 다녔어요. 선생님께서 발음과 말하기 훈련을 가르치는 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학원에 손님이 오면 저를 불러다 놓고 영어 말하기를 시키면 곧잘 따라하곤 했죠. 그때부터 언어학에 매료됐던 것 같아요. 언어학과 첫 수업시간을 듣는 순간 운명적으로 '이건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죠.
스물아홉에 교수로 부임
아무리 좋은 것이고, 능력이 뛰어나도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선 시기를 잘 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20살이나 더 많았다면 한글 보급작업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앞으로 10년간은 전성기라고 생각해요. 불황이지만 가장 뚜렷한 회복을 보이고 있잖아요. 자부심을 갖되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한글을 많이 사랑하고 보급하는 데 전 국민이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오는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세계 곳곳의 나라들이 우리와 함께 한글날을 기념할 것이라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진다. 〈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