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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호 2009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세 켤레면 충분해요"




 지난 8월 8~13일 아시아기자협회 초청으로 한국에 온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62세) 변호사는 구두가 모두 세 켤레뿐이라고 한다.

 부족해서 혹시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거면 충분해요. 하나가 해어질 때쯤 새로 준비하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11일 오후 소나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빈민촌인 강남구 구룡마을을 찾은 그의 구두는 물에 퉁퉁 불어있었다. 그는 "정말 고맙다. 방문하는 나라마다 좋은 호텔에, 맛난 음식만 대접해주니 보통사람들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여기 와서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을 봤다"고 했다. 이번이 두 번째 한국방문인 시린 에바디는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불굴의 투지와 열정, 그리고 겸손과 당당함이 그를 엿새간 밀착 동행한 필자의 결론이다. 이슬람 여성에게 강요된 히잡을 일찌감치 벗어던진 그다웠다.

 8일 오후 5시 13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내신 4곳, 외신 1곳 등 5개 언론사 인터뷰를 소화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한 언론사 인터뷰를 시작으로 청계천 답사, 鄭鎭奭추기경 면담과 경동교회 강연, 삼성동 봉은사 및 이태원 이슬람사원을 방문했다.

 시린 에바디는 이날 밤에도 언론사 두 곳과 인터뷰를 해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독실한 이슬람 신도인 그는 봉은사에서는 명진 주지스님과 함께 부처님께 큰절을 올리고, 경동교회에선 기독교인들 앞에서 유머 섞인 강연을 했다. 유연하면서도 당당한 태도에 절이나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후 그는 13일 오전 한국을 떠날 때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조찬간담회, 金炯旿국회의장 면담, 여성의 전화 특별강연, 서울대병원 소아암센터 위문, 아시아기자협회 만해사상실천선양회 공동주최 만찬, 외신기자회견, 한국기자협회 방문, 삼성전자 방문, 만해평화상 수상 등의 일정을 거뜬히 해냈다. 그는 만나는 자리에 따라 연설문을 따로 준비하고, 가는 곳마다 자신의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국문판)에 일일이 서명해 나눠줬다. 필자가 물었다. "너무 피곤하지 않습니까?" 그가 답했다. "내가 조금 피곤하더라도 상대방이 행복하면 나는 기꺼이 피곤한 걸 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