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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2009년 7월] 문화 꽁트

落葉선생 회상기




 3월은 二分法으로 풀 수 없는 계절이다. 아직도 찬 기운이 옷깃에 숨어들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새 눈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을 쫓아낼 봄은 먼 산허리에 엷은 안개를 보일 뿐 멈춰버렸다. 두 계절은 당분간 공존하고 있다가 봄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겨울은 서서히 꼬리를 감춰버릴 것이다.

 이런 시기에 나는 서울 도심지에서 조금 빗겨 서 있는 S여고의 신임 교원 임명식에 참가했다.

 일요일 아침 7시였다. 대학에서 동문수학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직 자고 있니? 오늘 3시에 거기서 만나자. 이력서와 사진을 가지고 나오너라.”

 결국 이 이력서가 신임 교사의 길을 열어줬다. 그리고 거기라는 곳은 종로에 있던 `르네상스'란 고전 음악 감상실이다. 늘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라고 표현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명동에 `돌체'라는 감상실도 있었으나 거기는 순수성이 적어서 선호의 대상이 못됐다. `르네상스'는 주인이 자기가 소장하고 있던 명곡판을 많은 사람들과 나눠서 듣기로 결심하고 감상실을 열었다고 한다.

 S여고에 부임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 학생들이 내 별명을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시간에 반장에게 물었다.

 “반장, 내 별명이 무엇이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장은 감히 말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괜찮으니 어서 말해 봐.”

 “낙엽입니다.”

 “나와 낙엽이 무슨 상관이지?”

 “잘 모르지만 선생님의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가 봅니다.”

 별명이란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어 놀려주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는데 대머리라고 부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오히려 시적 이미지를 간직한 시어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나는 즉석에서 20세기 초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구르몽(Remy de Gourmont, 1858∼1915)의 `낙엽'이란 시를 생각해냈다.

 `시몬, 나뭇잎 떨어진 숲 속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좁은 길을 덮었다

 시몬, 너는 낙엽 밟는 발소리가 좋으냐….'

 이 시는 우리나라의 근대시인 金 億과 金素月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이렇게 제자들이 나에게 낙엽이란 이름 하나를 지어줬다. 2주 후에는 전교생에게 알려졌고, 그 후
부터는 내 이름을 몰라도 낙엽선생으로 통하게 됐다.

 그 무렵 고등학교에는 특별활동반이란 것이 있어서 여러 반을 조직해 지도교사를 배치했다. 나는 웅변반을 맡아서 희망 학생의 지원을 받았더니 10여 명이 찾아왔다.

 그 해 가을에 K대학에서 전국 고등학생 웅변대회가 있어서 소질 있는 학생을 선발해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대회에 첫 출전해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았다. 전교생 조회가 있던 날 교장선생께 우승컵을 헌납했다. 교장선생의 찬사가 있었다.

 “낙엽선생이 지도한 웅변반 학생들이 우승의 영예를 차지해 학교의 이름을 드높인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교장선생마저 낙엽선생이라고 부르니 어찌된 일인가. 평소에 근엄한 그 분이 오늘은 기쁜 날이어서 학생들을 한 번 웃겨 보려는 심산이 깔려 있었다. 일제히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생각을 30년 전으로 돌리니 잊지 못할 수난사건 두 건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이웃에 사진 작가인 동향인이 살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사진 작품활동을 같이 하자고 이끄는 것이었다. 몇 달 후에 자기가 쓰던 `라이카'라는 독일제 카메라를 주면서 열심히 해 보자고 권유했다. 그 친절에 힘입어 언제나 촬영에 동행했다.


 풍경 사진을 찍을 때에는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을 조화롭게 융합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아침 바다의 해돋이를 찍을 때는 바다 위에 갈매기나 고깃배가 지나가는 것을 넣어야 하고, 중심 피사체는 가운데 배치하면 너무 정직한 구도가 돼 긴장감만 있고 여유나 멋이 없다. 인물 사진도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안 된다. 얼굴이 평면적이 되니 15도나 30도 정도 돌린 위치에서 잡아야 입체적이고 지성적인 표정이 된다. 이렇게 사진 촬영에 대한 기초지식 공부를 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에 나는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 작품활동에 동참하게 됐다.

 봄과 가을에 동호회원 전시회가 있어서 한 사람이 3점씩 출품하게 돼 있었다. 사진이란 본래 셔터만 누르면 되지만 예술작품의 경우는 백 장에 한 두 장이 나오기도 힘들다. 예술적 안목과 꾸준한 노력이 절실함을 깨닫게 했다. 전시회 날짜는 다가오는데 만족할만한 작품이 아직 없다. 일요일마다 교외로 나가 피사체를 구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천 근처에 있는 주안에 다다랐을 때 기하학의 도형 같은 염전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서 작업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자전거를 탄 순경이 나타났다.

 “마을 사람의 신고가 있어서 왔습니다. 같이 가야 하겠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몸수색부터 시작했다. 심지어 신발 깔창 밑까지 열어보고 나서 다시 심문이 시작됐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군 시설을 탐지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이 아니고 전시회에 출품할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신분증을 보여 주십시오.”

 “집에다 두고 왔습니다.”

 “직업이 무엇입니까?”

 “학교 선생입니다.”

 “전화번호를 불러 주십시오.”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당직 교사만 학교에 있었다.

 “S여고입니까? K라는 선생님이 있습니까? 인상착의를 말씀해 주십시오.”

 순경은 전화를 내려놓고 껄껄대고 웃다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했다. 인상착의를 물었을 때 전화 받는 사람이 대머리라고 대답했던 모양이다. 평소에 고민거리가 됐던 대머리가 나의 신분증명서의 구실을 분명하게 해냈다는 것은 분명 나만의 고유 권한이다. 덕분에 나는 무죄로 석방됐다.

 전시회 날은 가까워 오는데 작품이 없어서 카메라를 들고 창경궁에 갔다. 그때는 궁 안에 동물원이 있었다. 두루미 무리를 발견하고 `이거다'하고 초점을 맞추려 하나 계속 움직이고 있어서 원하는 구도대로 되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나서야 세 마리 두루미가 하나의 다리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역광으로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소한 날 추위에 손발이 동상에 걸렸다. 작품이란 작가의 고통을 강요하는 것을 체험으로 알았다. `휴식'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뜻밖에도 `월간사진화보'에 크게 소개됐다. 그후 이 화보의 사진을 보고 중학교 문법 교과서에 삽화로 실은 것을 발견했다. 작가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모두 제멋대로였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니 나에게도 변화가 왔다. K대학으로 직장을 옮겼다. 대학생들은 교수의 별명을 짓거나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낙엽선생이란 이름은 사라지고 본래의 내 이름으로 살게 됐다.

 사진 동호회의 가을 전시회 날짜가 가까이 오고 있었다. 출품작품이 없어서 마음이 초조할 무렵 동호회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자 모델을 구했으니 오는 일요일에 촬영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날 버스를 타고 한탄강 유원지로 갔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10분 정도 촬영하다가 회장은 모델에게 누드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설득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설득은 계속됐다.

 “여자는 남편 앞에서, 다음은 의사, 그리고 화가와 사진 작가 앞에서 옷을 벗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모델은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였다. 앵글 맞추기에 열중하고 있을 때 순경이 나타났다.

 “풍기 문란죄로 파출소를 가셔야 하겠습니다.”

 파출소 안에서는 열렬한 토론이 전개됐다.

 “성행위가 아니고 사진 작품을 만들기 위한 것뿐인데 그게 죄가 됩니까?”

 우리는 거세게 항의했다.

 “대낮에 옷을 벗는 것만으로 죄가 성립이 됩니다.”

 “숲 속에 숨어서 촬영했는데 마을 사람이 봤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까?”

 밤 10시가 돼 상부 관서에 전화를 걸더니 시말서를 쓰게 하고 우리를 풀어줬다. 통행금지 시간은 가까이 오는데, 서울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지나가는 트럭을 붙잡아 타고 12시에 서울에 왔다.

 사진 촬영 때문에 곤욕을 치른 두 사건의 공통점은 시민들의 고발정신에 있었다. 관청에 협조하려는 정신은 좋으나 과도하면 시민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전시회 날짜에 쫓기면서 덕수궁을 찾았다. 그때는 중앙박물관이 여기 있었다. 석조전에 들어가자 거대한 불상이 앞을 막았다. 너무 근거리여서 앵글 속에는 반신만 들어왔다. 2층에 올라가서 렌즈로 내려다보니 너무 단순해서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있는데 천재일우로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이 시주를 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금상첨화 격으로 부처님 머리에 햇빛마저 비쳐서 `瑞光'이란 제목을 달아 출품했다. 사진 기자들이 우수 작품으로 선정해 `동아일보'에 실린 영광을 얻었다.

 해마다 봄이 찾아오면 나뭇잎마다 무성하게 피어나지만 낙엽선생 나무에는 올해도 새 잎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