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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2009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寃故 解故에서 시작해야



 부산의 공공기관 간부들은 해가 바뀌면 동래에 있는 충렬사를 참배한다. 충렬사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宋象賢과 부산진 첨절제사 鄭 撥 등 부산에서 순절한 선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마치 서울 국립묘지를 참배하듯, 부산을 지켜 준 영령들에게 헌화한다.

 부산에는 이런 의미 있는 곳이 또 하나 있다. 바로 6ㆍ25(한국전쟁)때 우리나라에 와서 자유를 지키다 숨진 유엔군들의 유해를 모신 유엔기념공원이다. 고국을 떠나 머나 먼 이국 땅에 누워있는 2천3백명의 참전국 영령들은 그러나 그동안 외로웠다. 해마다 6월이나 유엔군의 날이 있는 10월에 추념행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곳처럼 새해에 참배를 받지 못했고,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엷어진 상태였다.

 필자는 KBS부산총국의 간부들과 함께 올해 초 충렬사 참배 일주일 뒤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우리를 위해 숨진 데에 무슨 내외국인 구별이 필요할 것인가? 부산총국은 또한 유엔기념공원에 얽힌 갖가지 사연과 아픔을 본격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6월 25일 전후 부산과 전국으로 각각 방송했다. 말하자면 이들 영령들을 解寃해 준 것이다.

 필자는 동베를린간첩사건에 얽혀 고생을 하다 한국과 멀어진 파리의 顧庵 李應魯화백과 베를린의 尹伊桑선생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1989년 1월 6일 KBS 1TV로 방송한 바 있는데, 방송이 나간지 나흘만에 李應魯선생이 타계해 그 방송도 顧庵선생을 마지막으로 해원시켜드린 셈이 됐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찍이 甑山 姜一淳선생이 지적한 대로 `원한이 맺히고 쌓여 넘치매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는' 시대처럼 보인다. 툭하면 자신의 목숨을 던지고 남을 고통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맺혀있는 寃과 恨을 풀어주는 일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신분격차, 빈부격차, 전쟁과 폭력 등으로 몇 천 년 동안 누적된 원한을 모두 풀어야, 생명을 살리고 서로가 잘되게 하는 相生의 새 세상이 열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해원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 가까이에서 억울하고 외롭고 힘든 사람의 형편을 그들 편에서 생각하고 이를 풀어주려 노력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엘리트인 모교 동문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