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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 2009년 6월] 문화 꽁트

내가 酒仙이 된 사연




 너는 술 한 잔 못하는 이 애비가 왜 酒仙이라는 멋진 별호를 갖고 사는지 궁금할 것이다. 오늘 그 사연을 알려 주마.

 서울대의 본부 캠퍼스가 동숭동에 있을 때니 지금부터 40년 전쯤의 얘기다. 나는 그때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복학해서 문리대 국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 정치학과에 다니던 김상기란 고등학교 후배 하나가 문리대 학생회장에 출마하게 됐지.

 김상기가 나한테 와서 이러더라.

 “형님, 복학생 형님들 표 좀 몰아주세요. 제가 당선되면 형님 술값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또 형님들한텐 제가 책임지고 장학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김상기를 위해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복학생들이 단결이 잘 되는 데다 내가 제대군인들을 몰고 다니는 편이어서 그들의 표를 얻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는, 내 한 표는 물론 한 사람 앞에 다섯 표씩을 몰아오기로 했다.

 그 결과 김상기는 당선됐다. 그러나 17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단다. 그러니까 이건 누가 뭐래도 이 애비의 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나와 함께 몰려다니던 제대군인 30여 명과 그들이 몰아 온 적어도 1백여 표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은 당선 근처에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임 학생회장은 이 애비를 극진하게 모시게 됐다.

 우선 학생회를 구성할 부장 몇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말하자면 대통령 당선자가 장관 몇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주위에 있는 후배와 제대군인 하나를 추천해서 문예부장과 섭외부장을 만들었다. 그렇게 되니 각종 문학행사와 대외행사는 내 손 안에 있었다. 그러는 사이 술값도 많이 받아썼다. 그 바람에 나는 술은 못 마시지만 여기 저기 술값은 많이 내고 다녔다.

 그러나 학생회장도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있었지. 2학기가 됐는데 제대한 복학생 30여 명한테 장학금을 다 마련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학생과를 열심히 들락거리더니 독지가들이 보내온 돈에서 10명분의 장학금을 어떻게 받아왔다. 그러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형님, 미안합니다. 이 다음 학기에는 나머지 형님들 것도 다 받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되니 더 좋은 면도 있었다. 나를 따르던 30여 명의 복학생 가운데 10명을 고를 권한이 나한테 쥐어지게 된 것이다. 그걸 미끼로 나는 복학생들을 더 말 잘 듣는 자들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이럴 즈음에 가을이 왔다. 학생회장이 또 미안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나한테 왔다.

 “형님, 술 마시기 대회를 열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나는 얼른 대답했다.

 “아 좋지. 그냥 무지막지하게 퍼마시는 건 대학에서 할 일이 아니지. 새로운 음주문화의 전형을 우리 문리대에서 만드는 거야. 이태백처럼 시도 읊고 풍악을 즐기면서 신선처럼 마시는 사람을 뽑는 거야!”

 “바로 그겁니다, 형님!”

 그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형님, 심사위원장을 누굴 모시면 좋겠습니까?”

 내가 잠시 생각하곤 말했지.

 “아무래도 양주동 박사가 좋겠지.”

 “저도 동감입니다. 형님, 그런데 형님이 섭외 좀 해 주셔야 겠어요. 형님은 지난번 세미나도 같이 하셔서 잘 아시잖아요.”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양주동 박사는 동아방송 재치문답의 연사로, 또 각종 문학특강의 강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때였지만, 나도 학생문인이랍시고 몇 번 한 자리에서 모신 적이 있어서 아는 척하기가 쉬운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당시 혜화동인가 명륜동인가 양 박사님 댁을 찾아갔더니 뜻밖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 천하의 양주동 박사가 개집에 들어가 앉아 있지 않은가!

 비스듬히 열린 그 댁 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조그만 정원이 있었다. 현관 옆에 제법 큰 개집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양 박사가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서 “그 누구요?”하면서 나를 내다보더구나. 양 박사한테 자리를 뺏긴 큼직한 개 한 마리는 개집 밖에서 나를 보고 컹컹 짓다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더라.

 양 박사는 내가 아는 척을 하면서 온 뜻을 말했더니 이러시지 않은가.

 “자네도 여기로 들어와 봐. 여기가 더 시원하니까. 내가 어딜 갔다 와 보니 마누라가 현관을 잠그고 나가버렸어 글쎄.”

 내가 양 박사의 청을 어길 수 없어서 개집 안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으니까 양 박사가 한마디 하셨는데 이게 명언이었어.

 “여기서 저 개 좀 보게. 이게 易地思之란 말야. 우리가 언제 개 입장이 돼 봤나? 저 개가 우리를 개로 보고 있네.”

 이렇게 해서 문리대의 주선대회가 깊어 가는 가을밤에 동숭동 캠퍼스 마로니에 광장에서 열리게 됐지. 양주동 박사는 호방하게 심사의 원칙을 발표하셨어.

 “술 마시고 객기부리고 떠드는 자는 그저 酒客이야. 술을 많이만 마시는 자는 酒王이야. 술을 마시고도 신선처럼 즐기는 이는 酒仙이지. 그 위에 하나 더 있어. 술을 마시고도 안 마신 것처럼 담담한 사람은 酒佛인데 그건 천하에 나 하나밖에 없어. 그러니 여기선 내 아랫자리인 주선만 뽑는 거야. 누가 이태백에 가장 가깝게 술을 즐기면서 마시는지 그 사람이 주선이 될 거야.”
곧 삼삼오오 둘러앉아 술판이 벌어졌다. 심사위원들도 이 판 저 판을 돌아다니며 합석해서 술을 마셨다. 나는 미리 주선으로 뽑히기로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에 점수관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유를 가지고 못 마시는 술이지만 조금씩 받아 마셨다.

 술이 한 순배 돌고 나서 학생회장이 나한테 와서 귀에다 대고 속삭였지.

 “형님, 지금까진 형님이 1등입니다. 술친구들과 여유 있게 어울리는 모습이 점수를 딴 것 같습니다.”

 나는 더 너그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 복학파 술친구들과 술잔을 주고받았지. 그런데 그때였어. 여기저기서 시를 읊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니. 중문과 학생은 이태백의 시를 중국어로 읊질 않나, 영문과 학생은 롱펠로우의 시를 읊조리질 않나, 독문과 학생은 “두 비스트 비 아이네 불루메” 어쩌고 하질 않나, 점입가경이었지. 나는 나도 모르겠다 하고 국문과 학생답게,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도 하고, “달하 노피곰 도다샤” 하기도 하고, “한 잔 먹세그녀 또 한 잔 먹세그녀”를 씨부렁거리기도 했지. 이렇게 왁자지껄한 틈에 또 학생회장이 와서 내 귀에다 속삭였어.

 “형님, 중국어로 이태백 시를 꿰고 있는 저놈이 1등이고 형님이 지금 2등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제가 바꿔 놨습니다. 그러니까 형님이 아직 1등입니다.”

 곧 술판은 개판이 됐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누가 신선처럼 술을 마시는지 알아 볼 수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고성방가가 터져 나왔다. 아수라장이 됐다. 심사위원들도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이런 개판 중에 학생회장이 좀 비틀거리며 다가와 큰 소리로 말했다.

 “형님, 수상소감 준비하십쇼. 이런 판에 무슨 심사가 되겠습니까. 형님으로 다 결정됐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멋진 소감을 준비하느라고 눈을 깜박였다. 술을 안 마신다고 했지만 그래도 몇 잔 받아먹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치사량이었지만 때가 때인지라 정신을 수습하며 소감을 정리하느라고 머릿속이 부산했다.

 초조한 가운데 심사결과가 발표됐다. 양주동 위원장은 비틀거리며 나와서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결과를 발표했다.

 “주객,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철학과 이호승!”

 그래도 박수가 와글와글했다.

 “주왕, 이건 돼지 같은 자야, 독문과 박남수!”

 이번에 더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 이젠 내 차례다. 나는 잔뜩 긴장했다. 복학생 내 친구들도 승리의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하느라고 주먹을 말아 쥐고 내 이름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자, 오늘의 패자 주선은,”

 나는 앉아 있다가 일어나기 좋게 다리를 조금 일으켜 세웠다.

 “영광의 주인공 주선은, … 정치과 김상기!”

 어, 이게 뭐야, 저 자식 학생회장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술기운이 한 순간에 몰려와 하늘이 뺑 돌았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결국 복학생들이 나를 업어서 집에까지 데려다 줬지.

 그날 이후 나는 술 못 마시는 주선이 돼 지금까지 무명의 관을 쓰고 영광스럽게 살고 있단다. 너도 알지, 그 김상기 의원? 그자가 3선까지 해 먹고 무슨 부정사건에 걸려 감옥까지 갔다 오더니 지금 뭐 별 수 없잖니. 그때 나하고 약속을 지켰더라면 못 돼도 국회의장은 됐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