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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호 2009년 5월] 문화 꽁트

나는 왜 네가 좋을까



 병원에서부터 타고 왔던 버스에서 하차했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대도시의 유흥가 앞의 한 보도를.

 지금으로부터 약 1시간 반 전 - 나는 버스를 탔고, 내가 탄 셔틀버스는 목적지인 병원 앞까지 굴러갔고, 나는 찾아간 의사한테 약을 처방 받아 병원 앞 약국에 들러서 약을 받고 가방에 넣었고, 병원 앞에서는 셔틀버스가 새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버스를 타고 1시간 반 전에 출발했던 애초의 지점으로 방금 전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버스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타려고 나는 도시의 보도를 잠깐 걷는 중이다. 딴 볼일이 없어 집으로 가려는 것이다.

 봄이 닥쳐오고 있었다.

 매력적인 계절과 계절 사이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2월과 3월 사이에.

 1년 중에는 네 계절과…, 네 환절기가 있다. 계절이 깊을 때보다 계절이 갈리는 이런 때, 나는 흥분이 된다. 남들은 잘 모르겠지만, 하느님의 속치마에 싸이기라도 하는 기분이 된다. 계절을 바꿀 때, 우주의 비밀은 가장 많이 들킨다. 지금 거리의 많은 사람들 식물들 물건들도 나와 똑같이 이 계절에 빠뜨려지고 있다. 나는 나날이 예뻐지려고 하는 계절을 느끼고 있었다.

 한 버스에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나는 '보도'라는 물건을 누구한테 잠시 빌리는 듯한 기분이 되는 정도다. '이거 좀 사용해도 될까요?' 누구한테라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남의 집 마당을 몰래 지나는 것처럼 약간 실례하는 마음이 돼 나는 걸었다. 이런 이상심리도 아름다운 계절의 설렘 때문이리라. 죽다 살아난 목숨이 생각커니 매순간이 놀라워서이리라.

 바야흐로 오후 4시가 돼가고 있다.

 그런데 보도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잘못 날아온 비둘기 한 마리가 사람들의 발에 차일 뻔하다가 이크! 하고 통통통 잘 달아났고, 8차선 대로에서 이면도로로 진입하려고 차 한 대가 보도를 가로지르려고 하는 것이어서 몇 사람이 걸음을 멈췄고 나도 그랬고, 트럭은 이면도로로 쉽게 들어갔고 사람들이 다시 걷기 시작했고 나도 그랬고, 그리고 건대추를 늘어놓은 할머니가 좌판 안쪽에 앉아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고 있었다. 늦은 점심이 아닐 수 없다. 무섭게 늙어버린 한 인생의 그 막바지에 깜짝 놀라 눈을 떼어내는데, 바로 그때였다. 길바닥에서 반짝하는 것이 있었다. 뭐지?

 빛이었다.

 나는 빛을 지나쳐 몇 걸음을 더 갔고, 뒤늦게 빛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걸음을 멈췄다. 잠깐 생각했다.

 누가 내게 눈을 깜빡하지 않았나?

 길바닥에서 누가 윙크라도 했단 말인가?

 작고 가녀린 소녀의 윙크라고 나는 계속 생각이 됐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지만, 소녀는 녹이 슬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낮별이라도 떨어진 것일까, 방금 저 하늘에서 이 길바닥으로. 그러니 반짝 빛이 났던 것 아닌가. 나는 청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였던 길바닥의 지점으로 가기 위해, 그러니까 운석의 잔해를 확인해보기 위해, 나는 스무 걸음 정도 후퇴했다. 이쯤이었으리라. 아닌가? 좀더 가야 하나? 분명 이쯤에서 반짝했는데? 헤매어봐도 그것은 다시 발견되지 않았다.



 반짝였던 실체 자체가 없다. 여기쯤 아닌가? 아니, 지점을 지나친 것 같은데? 하면서 나는 돌아섰다. 해를 등지는 것과 맞받는 것이 다르지. 길바닥에서 반짝였던 것은 실은 저 하늘 해의 빛을 지구 위에서 반사한 것임을 왜 모르랴. 나는 해의 각도를 의식하며 다시 걸었다. 다이아몬드일리 없지만 자, 아까처럼 다시 반짝여라!

 그러나 정녕 흔적조차 없다.

 길바닥에 객관적 실체가 없다.

 막상 가보면 실물이 없는 사막의 신기루, 이 비슷한 것이었나? 나는 지나온 길바닥을 한번 더 샅샅이 그러니까 저인망처럼 해 눈알이 빠질 듯이 보며 걸었다. 그럼에도 바닥에는 반짝이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구 발길에 채여 굴러가 버렸나.

 환전 가능한 귀금속 같은 것이 아니다. 쇠로 된 것이었다. 사람의 몇 발걸음 사이의 보도에 떨어져 있었던 그것이 십 몇 초만에 사라졌다. 누가 그새 주워갈 게 아니다. 너무 작고 너무 얇은 것이라 발에 채이기도 불가능해.

 나는 찾는 것을 그만두고 가던 길이나 계속 가기로 한다. '체, 내 불알이라도 잃어버린 것이 아니잖아.' 대낮에도 감각의 현혹이란 것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54번 버스를 타는 정류장 쪽으로 간다. '참, 그 전에 육교를 건너야 하지.' 나는 육교 위에서 연산역 인근의 거대한 유흥가를 내려다보았다. 4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허허벌판이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처녀가 되고 첫 처녀를 잃고 마음이 부러지고 이곳에 와서 돈을 위해 함부로 봉사하고 있는가.

 왠지 마음 아파지는 듯하며 나는 육교를 내려갔다. 그럼으로써 반짝임에서 나는 계속 멀어지고 있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는 정류장 앞까지 갔다. 54번이 금방 왔다. 버스를 타자마자 엔진이 폭발하면서 바퀴가 회전하는 것이어서 반짝임이 있었던 지점에서 나는 대단히 빠르게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1백m, 3백m, 7백m….

 버스는 정류장을 5개 지나쳐 한 전문대학 정문 앞에 섰다. 내가 내릴 곳이다. 나는 내렸고 시내버스는 제 갈 길을 계속 갔다. 이제 나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연립주택 단지를 지나 미용실과 슈퍼마켓을 지나 집 골목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길에 이르렀다. 길 한쪽에 하수구 철망이 있었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이쪽에 모여들고, 물은 흙탕일 때가 많고, 물이 철망 아래로 빠져나가면서 조금씩 데리고 온 흙을 남기고, 흙 알갱이는 턱마다 쌓여갔고, 어느덧 바닥이 다져져 흙더미처럼 돼가고, 거기에 풀 씨가 날아들고 뿌리를 내려 잡초 등으로 자라나면서 하수구 철망 가장자리는 도톰한 생명의 터가 돼 있었다. 우리 집 앞 골목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지점이다. 나는 그것을 지나쳤다. 발이 철망을 건너뛸 때, 그때 가장자리에서 또 반짝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바로 알아보고 멈춰 섰다.

 녹이 슨 소녀를 나는 손으로 집어 올렸다. 아까와 똑같은 물체다.

 연산역 부근 보도에서 똑같은 것을 보았지만 놓쳐버렸는데, 여기 또 있다. 쇳덩어리를 녹인 쇳물, 뜨거운 그것을 식혀서 얇게 국수가닥처럼 뽑고 일정한 길이로 자른 것, 그걸 잘 구부려놓은 것. 이 곳에 떨어진 뒤 바람과 비에 시달려 어느덧 녹이 조금 슨 것. 손가락으로 튕겨보면 아직 탄탄한 것. 이 탄력으로 쓰임새가 생기는 것.

 용수철 아님. 가로 1cm 세로 3cm쯤 되는 것. 한 개로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 그만큼 하잘것없는 것. 하나는 10원이나 될까, 20원이나 될까. 수백 개 들이로 묶어 판매하는 것. 재질은 니켈 합금인 것(대충 '쇠'라고 하면 됨). 쇠의 직선과 곡선의 조합인 것. 모양은 번데기 같은 것.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나기도 하는 것. 내 눈에 빛을 쏘면서 발견돼 내 손바닥 위에 지금 놓인 이것. 누가 버린 것. 누가 잃은 것. 나는 왜 네가 좋을까.

 호치키스를 대신해 쓸 수 있는 것.

 이 종이 저 종이로 옮겨다니는 것.

 이것의 발명자가 태어났던 나라의 독립 운동에서 투쟁의 상징이 되기도 했던 것. 대한독립만세의 태극기처럼, 북유럽의 한 나라에서 국기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

 그 가장 간결한 원리로 그 가장 분명한 쓰임새로 빛이 나는 인류의 아이디어, 이것.

 세상 사람 누구도 주워가지 않는다. 조선시대 사람들처럼 너의 혁명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천재적인 물건은 이렇게 간명해야 함을.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 부르는 순간, 너는 객관적으로 하잘 것 없는 존재가 돼버릴 것이기에. 이 아름다운 계절, 아름다운 목숨의 나날에는 지금이야말로 기도와 같은 주관의 시간이기에.

 어디에 사용할까. 나는 어떻게 사용할까.

 나는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마지막 길을 내처 올랐다. 다른 것은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집 앞에 이르렀다. 대문이 열렸다. 흙 마당이 벌어졌다. 나는 클릭클릭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흙 마당은 반짝임으로 무수하다.

 전부가 똑같다.

 바닥에 떨어진 천상의 것들이여.

 반짝반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