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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호 2009년 4월] 문화 꽁트

머나먼 만남





 세상에 나온 지 두 달이 조금 못 된다고 했다.

 "한 배에서 난 다른 녀석들보다 이 녀석이 제일 실하고 착하게 생겼지요. 예방 주사 다 맞혔고, 밥은 이거 주시면 됩니다."

 주인은 얼굴을 보여주며 이 정도면 잘 생기지 않았느냐, 눈곱 하나 없이 건강한 녀석이니 아예 값을 깎을 생각 말라고 했다.

 막내 딸 유미가 요즈음 부쩍 강아지 타령을 했다.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사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은 아니어도 세대수가 많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강아지는 장차 어른개가 되는 동물에 불과하지 애완견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장날 어머니의 광주리에 실려 가거나, 목걸이가 채워져 마당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거나, 어쩌다 동네에 개장수가 나타나면 어디론가 팔려가곤 하던 그런 존재였다. 우리가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치우거나, 그로 인해 배설물로 개집 주위를 어지럽혔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 강아지를 집안에 들여놓고, 함께 지낼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애완견을 키우는 모험을 감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 이유는 집사람이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들 정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아이들이 강아지 타령을 할 때면, 아내는 아이들에게나 나이든 사람들한테도 애완견이 좋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은근히 응원하고 있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눈치다.

 인터넷을 뒤져 털이 잘 안 빠지고 온순한 종류를 물색했다. 주인은 생일과 예방 접종 기록이 담긴 종이와 함께 어린 시추를 건네줬다.

 차를 타고 가면서, 집에 전화를 했다.

 "유미야 네 생일 선물로 뭘 샀는지 알아 맞춰봐."

 딸 유미는 내가 집에 가는 동안 지금 어디쯤 오느냐고 세 번이나 전화를 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강아지 이름은 정해져 있었다. 아파트 1층 입구에서 강아지를 받아들면서 그들(아내, 아들, 딸)은 `초롱'이라 불렀다. 초롱이는 어느덧 아이들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물론이고, 뺨을 부비는 것도 예삿일이 됐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생활이 활기가 넘치는 듯했고, 아내는 이제 자식 대신 키우는 셈이 되었다고 기뻐했다. 한 생명체로 인해 가족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디에서 알았는지, 배설물을 가리는 훈련법을 초롱이에게 능숙하게 시행했다. 훈련이 효과가 있었는지, 초롱이는 화장실 바닥에 배설물을 척척 쏟아낼 수 있게 됐다.

 "아범아,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형편 어떠니. 너희 집에 가려는데…."

 어머님이 형님 댁에서 우리 집에 오셨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님을 뵙는 듯했다. 아니 `오랜만에'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매년 돌아오는 명절 때는 물론이고, 특별한 날 예컨대 아버님 추도식이라든지, 친척 애경사에서도 빠짐없이 뵀다. 그리고 가끔은 아들네 집들을 순회하셨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뵙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처음 뵙는 순간 어머님이 낯설었다. 이 어찌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있는가.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낯설어 하다니.




 
진동으로 돼 있는 핸드폰에 아내의 전화 번호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전화를 여러 번 했네. 무슨 일인데."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위독하셔요. 빨리 병원으로 오셔야겠어요."

 "어쩌다 그렇게 되셨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셨나 봐요."

 초롱이가 화장실 바닥에 배설을 하고 나면, 물을 뿌려 치우곤 했다. 아마도 누군가 배설물을 치우면서 뿌린 물기 때문에 어머님은 넘어지셨을 것이다. 이제 여든을 넘기신 어머님은 늦가을 마지막 잎새와 같아서 순발력이 떨어지셨을 터이고, 그것은 곧 치명적인 사태로 치달을 수 있을 것이었다.

 어머님은 희미한 의식을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었다.

 "뇌진탕입니다. 왼쪽 뇌가 손상돼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술 중 잘못될 확률이 높습니다. 연세가 있으시니…. 결정을 하시지요."

 "좀더 경과를 두고 볼 수는 없는지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서…."

 "젊은 사람 같으면, 당장에 수술을 하겠는데…. 하루 이틀 경과를 두고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될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참으로 오랜만에 神을 찾았다.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드릴 순 없었다. 거친 손마디와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만큼이나 세월을 모질게 살아오신 어머님을 이 세상에서 한 순간이나마 더 보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머님은 오랜 침묵을 깨고, 내가 두 아이를 두고 세상에 惑하지 않을 나이가 돼서야 당신의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는 위로 오빠가 여섯인 집 막내로 태어나셨다. 오빠 다섯은 6ㆍ25때 남한군으로 전사했고, 당신은 징용을 피하려는 양반 가문의 아들에게 열 여덟의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됐다. 해방이 되고 어느 날 빨치산이 들이닥쳐 곤욕을 치르게 됐는데, 전 남편은 그 길로 빨치산을 따라갔다고 한다. 빨치산이 물러가자 경찰로부터 빨치산을 도왔다는 이유로 어머님과 시집 식구들은 또 한차례 곤욕을 치러야 했단다. 그 뒤로 시집 부모를 모시고 10년을 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을 하게 됐단다. 전 남편과 어머니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그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네 동생네 집에 갔다가 그 아들과 통화한 적이 있는데…, 어디에 산다고 했는데, 잊었다 …, 아들 어릴 때 사진이 어디 있었는데, 이사 다니면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어머님은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는 눈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어미된 자로서 아들이 어디에 사는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동안 자식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마음 고생하셨을까. 어머님은 인생의 겨울을 넘기는 시간에 어떻게든지 이 일을 해결하고 싶으셨던 게다.

 이제 홀로 남으셨던 오빠마저 몇 년 전 세상을 뜨고 말았고, 재혼한 남편마저 떠나보낸 지 오래됐다. 아들 녀석들이 장성했건만, 떠나보낸 망자들만큼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님 이야기 좀 해주세요. 많이 알지 못해서요."

 나는 아버님의 형제가 어떻다는 이야기만 알고 있던 터에, 아버님 집안 내력이 궁금했다.

 "네 작은아버지는 6ㆍ25전쟁에 참전해 후유증으로 얼마 안 있어 돌아가셨다고 하고, 큰아버지와 큰고모, 작은고모는 전쟁 때 후퇴하면서 북으로 갔단다…. 네 아버지는 북으로 간 형제들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지…. 어떻게 살아남아서 수리 조합에 다니면서 입에 풀칠은 하게 됐고…."

 나는 병상을 형님에게 맡기고, 집으로 향했다. 어머님의 커다란 전화번호 수첩을 기억해냈다. 어머님은 거기에 자식들의 전화번호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적어놓으셨던 것이다. 어쩜 수첩에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두셨던 아들의 전화번호가 있을 것만 같았다. 늘 변함없이 몇 십 년을 들고 다니시는 가방에는 성경책과 안경 그리고 손수건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가방 바닥에 깊숙이 놓여 있는 전화번호 수첩을 꺼냈다. 거기에는 어머님의 손때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낯선 이름을 보고, 어머님의 흔적을 좇아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화기에서는 어딘지 외로워 보이지만 당차 보이는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김순옥 씨를 아시는지요?"

 "누구신지요?"

 "김순옥 씨가 위독하셔서…."

 육십이 훨씬 넘어버린 그는, 아니 나에게는 형님인 그는 병원 중환자실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중환자실 입구에서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복도의 공기는 지나버린 세월만큼의 무게로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형님은 잠시 어머님의 모습을 보시더니, 이내 고개를 떨궈 어깨를 들먹거렸다.

 어머님의 눈이 가느다랗게 뜨이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님은 당신이 잡으신 손길만으로도, 전해오는 숨결만으로도 아들의 존재를 느끼고 계셨던 것이리라.

 "다행히 경과가 좋습니다. 보통 이 정도 상태면, 젊은 사람도 어려울 터인데, 정말 초인적인 인내를 하고 계십니다."

 의사는 좋아지고 있으니 좀더 지켜보자고 했다.

 병원을 나서는 형님의 뒷모습에서 난 어딘지 낯익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