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호 2009년 4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春來不似春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구나'
당나라 시인 東邦叫가 중국 절세의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가련한 王昭君을 소재로 쓴 시가 이 글의 출전이다.
한나라 元帝는 침략을 일삼는 흉노 왕을 달래려고 궁녀를 한 명 주기로 했다. 궁중화가에게 궁녀 초상화를 그려놓게 했던 원제는 가장 못난 궁녀를 찍었다. 궁녀들은 황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을 예쁘게 그려 달라며 뇌물까지 바쳤다.
하지만 미모에 자신만만했던 왕소군만 예외였다. 괘씸하게 여긴 화가는 그를 못나게 그렸고 오랑캐 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뒤늦게 땅을 쳤다. 봄은 왔건만, 꽃도 풀도 피지 않는 동토의 땅, 그곳에서 왕소군이 뼈저리게 느낀 망향의 아픔을 형상화한 이 시의 첫 구절은 `胡地無花草'이다.
나라의 산과 들판에 울긋불긋 꽃이 피고, 풀도 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그러나 계절의 봄은 왔건만, 진정 마음에서 봄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미증유의 경제대란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두려워하고 있다. 정치지도자들 역시 뾰족한 대책을 세울 수도 없는 현 상황에 당황한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선진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작금의 이런 상황을 `無知의 소용돌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관료를 지낸 한 지인은 지난해 연말 섬뜩한 전망을 내놓았다. 내년에 경제 규모 15위권 안에 있는 1~2개 국가가 국가부도(default)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50위권까지 내려가면 10여 개 국가가 그런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뚜렷한 근거를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모골이 송연해졌다. 국가부도를 맞게 되는 15위권 내의 국가로 바깥에선 대한민국을 유력하게 꼽는다는 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비관론이 꼭 들어맞진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 물샐 틈 없이 대비해야 한다. 서울대 동문들이 미증유의 경제대란을 극복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해줬으면 한다.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잘되는 일은 없다. 水滴石穿(물방울이 돌을 뚫는다)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한데 모으고 힘을 합쳐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 위기를 돌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