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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호 2009년 3월] 문화 꽁트

산다는 것



 "어디까지 가세요?"

 차에서 막 내린 노인네 소리나는 쪽을 본다. 30대 초반 여인의 초조한 목소리다.

 "서울이오."

 "저 좀 태워 주실 수 없어요?"

 "왜 그래야 해요?" 그가 그녀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묻는다.

 "차편이 없어서요."

 노인네 머뭇머뭇하다 말한다. "그렇게 하시오."

 "고맙습니다."

 여인이 서둘러 다른 차 뒤에서 여행용 가방 두 개를 가져온다. 그가 트렁크를 열고 그녀가 가방을 싣는다. 여자가 뒷자리를 쳐다본다.

 "앞에 타시오!"

 노인네는 하고많은 차 중에서 왜 내 차인가 하고 머리를 흔든다. 그에게는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일전에도 한 젊은이가 배고파 그런다며 돈 좀 달라고 해서 몇 푼 준 적이 있다. 허우대가 멀쩡한데 웬 동냥이냐는 소릴 할 수 없었다. 안 주면 그만이지 주고받아야 되는 이유를 묻고 답할 계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요즘은 전쟁 끝난 상황이나 마찬가지로 경제가 어렵지 않은가. 천하장사라도 일거리 없으면 놀고 배 곪는 수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내가 그렇게 물렁하게 뵈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가 운전석에 앉는다. 여인이 앞자리 밑에서 카메라를 집어들고 엉거주춤해 하자 노인네가 받아 뒷자리에 놓는다. 그가 늘 필수 휴대품처럼 갖고 다니는 카메라다. 노인네 차 시동을 걸려고 하다 멈춘다.

 "아참, 내 정신이라니! 예서 기다리시오! 5분 있다 오겠소. 차 몰고 가지 마시오!"

 "예."

 노인네 안내소에 가서 인터넷 이메일을 서핑한다. 그렇게 하려고 휴게소에 들렸다가 그 여인 때문에 까맣게 잊은 일이다. 돌아온 노인네 운전석에 앉자마자 여인에게 묻는다.

 "운전할 줄 아시오?"

 "예, 잘합니다. 아주 잘합니다."

 그가 운전대에 꽂혀 있던 키를 돌려 엔진시동을 건다. 가속페달을 밟으며 경부고속도로 옥산휴게소를 떠난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속도로 진입하고 한참 달리고 난 후에야 남자가 묻고 여자가 답하는 식으로 대화가 간간이 이어졌다. 여자는 옥산휴게소에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왔으나 약속하고 달라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남편이 무얼 하길래 여자가 일거리 찾아 나서냐고 남자가 묻자, 이혼했다고 여자가 답했다.

 운전하던 남자가 혀를 끌끌 차며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의 프로필이 조금 길다 싶었고 아까 휴게소에서 보았을 때 여자의 검은 외투가 어쩐지 짧더라는 첫인상이 되살아났다.

 아이 둘은 할머니한테 맡겼다 했다. 그동안 무얼 했냐고 하자 미술학원 강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혼한 남자는 클래스메이트였는데 직장생활을 힘들어했다고 했다. 학교친구로 연애하고 결혼했는데도 그렇게 남자를 몰랐냐고 묻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인용했다. 하긴 지가 저도 모르는데 남을 어찌 아냐고 남자가 퉁명스레 말했다. 사는 게 힘이 든다고 여자가 투덜댔다. 특히 이혼하고 그렇다고 했다. 대화가 끊어지자 여자가 꾸벅꾸벅 졸았고 남자도 졸음이 와 안성휴게소로 차를 몰았다.

 운전대에서 키를 뽑아 간 남자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한 잔을 여자에게 줬다. 여자는 이를 받아들고 피로하실 텐데 한숨 주무시고 가시라고 남자에게 권유했다. 남자는 시동을 걸었던 엔진을 끄고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여자가 남자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라고 생각하고 남자도 그렇게 웃으며 컵 홀더에 놓여있는 사과를 여자에게 권했다. 그리고 서울로 향했다.


 `수원­신갈 지체'라는 도로 위 사인보드를 본 것은 휴게소를 떠난 지 30분이 지나서였고 그래서 그런지 차의 흐름이 느렸다. 그들은 서울톨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성격이 그렇게 수동적인 걸 보니 혈액형이 A형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O형으로 바꾸게. 그리고 활달한 척 하게, 배우 연극하듯."

 셀폰에서 인터넷서점 `알라딘' 책 배송 음성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책을 읽나?"

 "아니요. 시간이 없어서요. 가끔 잡지를 보긴 합니다."

 "인터넷 이용하나?"

 "아니요. 직장 따라 다니기 때문에 이용 못합니다."

 "그래도 인터넷을 이용하면 직장 구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살아남으려면 많이 참고 고생해야겠구먼. 힘들어도 책을 읽게.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보다 자네 마음이 삐뚤어질까봐 하는 소릴세."

 "예."

 "그리고 용기를 가져. 아직 젊으니까."

 그는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가난은 6ㆍ25이전 1~2년부터다. 미 군정청에서 나오는 밀가루나 설탕배급을 받아먹던 시절, 6ㆍ25전쟁기간 그리고 50년대 내내 이어지던 궁핍, 하위중산층으로 미국에서 살던 중 만났던 IMF환난도 겪었고 현재도 진행형 중인 궁기, 미국과 한국에서 이산가족으로 살아가는 처지 등 몇 초 사이에 그의 가난에 대한 역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는 헛기침을 한다.

 "내 생각에는 말일세" 하고 그는 그녀의 침묵이 자기 때문이라도 되는 양 변명하듯 말한다.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가?"

 "미술학원입니다. 미술이 전공이고 경험도 약간 있어 학원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 그런 목표가 있으면 됐네. 문제는 돈을 모아야하는 게로군."

 "예."

 "2~3년 눈 딱 감고 남의 밑에서 억척스레 일해야 되겠군. 그리고 말일세. 영어도 좀 배우게. 학원도 차별화해야 살아남는 게야. 무슨 말이냐 하면, 그림만 가르칠 게 아니고 영어도 섞어서 가르쳐야된다는 거지. 왜 경쟁력, 경쟁력 하잖나. 그리고 영어, 영어 해쌌고. 학부형의 허영심을 조금 만족시켜준다고 할까. 그 효과야 의문시되지만 역효과는 없는 게 아닌가. 그러니 어렵더라도 틈틈이 영어교습법을 익혀 학원 낼 때 경쟁력 있는 학원이 되도록 계획을 세우게."

 "헤어진 남자는 결혼했나?"

 "모릅니다. 조금 있는 집 사람인데다 혼자 살기에는 의지가 약해 모르기는 해도 재혼했을 거예요."

 "아, 그래?"

 "위자료로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받았을 뿐 아이들 양육비 등 돈은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아니 싸우기 싫어 안 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디 갔다 오시는 길이에요?"

 그녀가 그의 마음, 그러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자꾸 캐묻는 것이 미안하다 하면서도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라도 했는지 화제를 돌린다.

 "응, 시골에 사시는 형님하고 누님을 뵙고 의정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시골 어딘데요?"

 "옥천이야. 충청북도 옥천. 대전 바로 밑이지."

 "아, 그래요? 저는 부산이 고향입니다. 대학졸업 후 그곳을 아주 떠났지만요."

 "부산 좋은 도시지, 옛날만은 못해도."

 "선생님은 고향이 옥천이에요?"

 "그려, 대대로 살아오던 곳이지. 누님은 붙박이처럼 고향에 사시고 형님은 서울서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하시다 은퇴하신 후 낙향하신 거고."

 "좋으시겠어요. 형제분들이 계셔서."

 "왜, 자네는 형제가 없나?"

 "예, 저 혼자예요."

 "그거 안 됐군."

 그는 고향으로 떠나기 전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 들고 간 큼지막한 생대구를 받고 좋아하시던 형님과 누님 얼굴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짓는다. 그리고 가다가 먹으라고 누님이 싸주신 트렁크 안에 실은 두 개의 홍시 생각이 나서 그걸 그녀와 나눠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구나 아까 그녀에게 아침 먹었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먹었다고 답했지만, 대답이 신통치 않았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선생님, 왜 웃으세요?"

 그녀가 웃으며 묻는다. 그가 옆을 보니 그녀의 희미한 미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채였다.

 "으응, 형님과 누님 생각이 갑자기 나서. 옛말에도 노인 되면 도로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있잖나. 그분들이 어린애가 돼 가시는 것 같아.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말이야. 나도 조금 더 나이 들면 그렇게 되겠지."

 저 앞에 서울톨게이트가 보인다. "톨게이트에 누가 나온다고 했던가?"

 "예."

 "자, 다 왔네."

 "그런데 선생님, 연락처를 주실 수 없으세요?"

 "왜?"

 "나중에 여유 있으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

 "됐네, 이 사람아. 잔소리는 이것으로 충분하네."

 그가 톨게이트를 지나 차를 세우고 그녀가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낸다. 그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뒷주머니 지갑을 꺼내야할지 말지 망설인다.

 그녀가 말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가 짐짓 놀란다.

 "어여, 가게!"

 그녀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그가 그녀를 부른다.

 "여보게, 잠깐!"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그가 말한다.

 "하이파이브라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