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호 2009년 3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간호사 단상

간호학과에 발을 디딘 지 40년이 가까워 온다. 나이팅게일을 꿈꾸며 대학원서의 지원학과 란에 `간호학과'라고 쓰던 일, 3학년 초에 `일생을 의롭게 살며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하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면서 가슴 뭉클했던 일, 졸업 후 첫 출근 날에 까만 줄 있는 간호사 캡을 쓰면서 자랑스럽고 설레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떠오른다.
필자는 간호학을 선택한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미국유학을 하던 시절에는 대학원 다니면서 간호사로 취업해서 미국사람 수준의 월급을 받아 학비걱정 안하며 지낼 수 있었다. 내가 대학에 교수로 취업한 것도 간호학을 전공한 덕을 본 것이다. 30년 전에 여성취업의 벽이 높은 시절이었는데 간호학과는 여성끼리의 경쟁이라 남성에 밀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인기 있는 대학의 학과에 진학한 여학교 친구 중에 대학에 직장을 얻은 친구는 매우 드물다.
내가 간호학에서 얻은 가장 큰 혜택은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일찍 깨달은 것이다. 간호학과에서는 3ㆍ4학년에 병원과 보건소 등에서 실습을 하게 되는데 아픈 사람, 임종을 앞 둔 사람들과 그 주변에서 같이 아파하는 가족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겨우 20살이 된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정말 드문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험을 통해 생명이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일찍 알게 됐다.
해마다 우리 학과에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 중에는 간호학과 동문의 딸이 상당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즉, 동문의 남편)들이 딸이 엄마처럼 간호학과에 가기를 강력히 원해서 간호학과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간호학과의 교과과정은 다른 어떤 대학보다도 학생 입장에서 고생스럽다. 취득해야하는 학점이나 실습이 많아서 3ㆍ4학년 때는 주 40시간 이상의 빡빡한 시간표를 견뎌야 하며 졸업 시에 간호사자격 국가고시도 통과해야 한다. 간호사로 취업하면 환자 돌보기가 어려운 것을 절감해야 하며 순번제로 밤 근무도 해야하는데 그렇다고 의사처럼 고액의 연봉에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들은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딸이 간호학과 가는 것을 말리거나 `별로'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들은 왜 딸에게 간호학과를 권할까?
이 대답으로 아버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간호사가 국가 자격증을 받는 전문직이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이지만 이 외의 대부분은 간호사들의 성격과 태도에 대한 것이다. 간호사는 성실하고 믿음직하고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해 주고 또한 사람 사는데 필요한 중요한 것들(연령에 따른 건강관리 방법,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능력, 그리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편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다. 간호사는 직장에서 환자나 간호대상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직업인데 가족에게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하고 산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어쩌랴 이것이 40년 전의 나이팅게일 선서 탓인지, 타고난 팔자인지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한 것을…. 사실 내가 간호사로 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간호사가 옆에 있어서 위안이 됐다'고 하는 말을 환자로부터 듣는 순간이었다.
나이팅게일처럼 훌륭하고 큰 일은 못한다 해도 요즘 같이 경제가 어렵고 삭막한 시기에도 취업 걱정 없고 평생 동안 옆에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직업이 간호사라면 정말 괜찮은 직업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