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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호 2009년 2월] 문화 꽁트

농 부



 사위가 희끄무레한 새벽, 고두석은 말 달구지에 몸을 싣고 집을 나선다. 헌 달구지에는 쟁기가 실려 있다. 말발굽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깬다. 늦가을의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말(馬)은 시키지 않아도 두석의 밭까지 스스로 알아서 찾아간다. 두석은 쟁기를 내려 말에 걸고 담배를 꺼내 문다. 연무가 깔려있는 비행장터가 내려다보이고 그 앞으로 바다가 은색 비늘처럼 반짝인다. 동쪽으로는 희뿌연 한라산이 아스라이 보인다.

 두석은 반쯤 타 들어간 담배를 밭에 휙 내던지고 나서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는 쟁기를 잡는다.
 "이랴."

 꿈적도 않고 주인의 하는 양을 곁눈질해 보던 말이 천천히 쟁기를 끌고 전진한다. 쟁기날이 닿자 흙더미가 한 방향으로 실그러진다. 쟁기를 잡아 누르는 두석의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고 그의 주름진 까만 얼굴에 금방 땀방울이 맺힌다. 성성한 백발이 갈대꽃처럼 바람에 휘날린다.

 두석은 이 사래 긴 밭에 보리를 파종하고 있는 것이다. 보리가 싹을 트고 무성히 자라 누렇게 익을 때까지 겨우내 봄내 두석은 밭에서 산다. 흙을 돋고 보리를 밟고 검질을 매기도 하지만 헐 일 없을 때에는 밭둑에 앉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없는 식물을 내려다본다.

 초여름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보리이삭이 마파람을 따라 물결칠 때가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보리는 영글어갈수록 더욱 고개를 꼿꼿이 세우는 모습이 고집불통인 자신을 닮은 것 같다고 두석은 생각한다.

 보리를 거두자마자 그 자리에 바로 조를 파종한다. 이때도 밭 갈기는 말의 몫이다. 주위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경운기를 마다하고 말이 끄는 쟁기로 밭을 가는 두석을 답답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의 아내조차도 그를 바보영감이라고 흉을 본다. 자신은 밭 근처에 얼씬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초가을 조가 말꼬리만한 이삭을 척 늘어뜨릴 때는 참새들이 떼지어 몰려온다. 여기저기 허수아비를 세워두지만 새들은 오히려 허수아비 팔에 앉아 고개 숙인 우스꽝스런 모습을 조롱한다. 두석은 새를 쫓느라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아니 새보다는 사람 쫓기에 더 여념이 없다. 사진을 찍는다며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내린 관광객들이 조 이삭을 한 다발씩 움켜 치마폭에 숨겨가기 때문이다.

 그가 이 밭에 번갈아 보리와 조를 고집스럽게 심어온 세월이 40년에 이른다. 보리가 동해를 입어 쭈그렁 보리쌀조차 건지지 못해도, 조가 익어갈 무렵 태풍에 쓰러져 실한 낟알을 못 얻어도 아랑곳 않고 그는 해마다 보리와 조를 심었다.

 그가 일곱 살 때인 1948년, 소위 4ㆍ3사태가 일어난 때였다. 그의 부모는 한라산 중턱에서 火田을 일궈 보리와 조를 심어 왔었다. 토벌대들이 공비의 소굴이 될 수 있다며 10여 호 되는 화전마을을 불지를 때 할머니는 어린 두석을 데리고 대숲에 숨어들었고 그의 부모는 엉겁결에 산으로 도망치다 토벌대의 총에 희생돼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업고 친정인 모슬포로 내려와 살았으나 일년도 못돼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남의 집에 얹혀 살던 두석의 신세는 머슴살이로 이어졌다. 그는 알뜰히 돈을 모아 밭을 샀고 물질하는 비바리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아들 하나, 딸 둘을 낳아 탈없이 키워 출가시켰고 그들은 지금 육지에 살고 있다. 아내는 전복과 소라를 따, 살림에 큰 보탬을 줬으나 요사이는 전복의 씨가 말라 그녀는 물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농사에는 경험이 없는 터라 그녀는 모슬포 시내의 식당에서 주방 일을 돕고 있다.

 그녀가 오며 가며 듣자 하니 남편은 모슬포 바닥에 어리석은 농부로 소문나 있었다. 아직도 말을 부려 쟁기질하고 화학비료가 지천인데 보릿짚을 돼지똥에 이겨 돗거름을 만들어 쓰고 남들은 경운기로 수확을 하건만 허리를 구부려 낫으로 보리와 조를 베는, 깨이지 못한 남편이 바보천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석 또한 아내를 소 닭 보듯 대했다. 그는 오히려 그의 충직한 반려자인 말과 친해지고 있었다. 3대에 이어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말을 그는 아내보다 더 사랑했다. 그는 허구한 날 말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말과 대화를 나눴다. 그가 말에게 말을 걸면 말은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힝힝 하며 웃어주기도 했다. 그는 말을 부려 쟁기질을 하고 말 달구지로 거름을 실어 밭에 나르고 곡식을 실어 공판장에 내다 팔곤 했다. 장에 갈 때면 말을 타고 다녔고 가끔은 해안가를 따라 말을 달리곤 했다. 한식에는 말을 타고 지금은 폐촌이 된 옛 집터를 다녀오곤 했다. 거기에는 그때의 대숲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보리이삭이 연두색으로 물오르는 사월, 땅거미가 대지에 깔리는 늦저녁에 두석이 초원에 매어둔 말을 풀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였다. 구멍가게에서 마을 이장이 툭 튀어나오더니 기역자로 꾸벅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장도 벼슬이라고 평소에는 고개를 뻣뻣이 젖히고 거드름을 피던 그가 오늘따라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삼촌, 막걸리 한 대접하시지요."

 제주도에서는 웃어른을 삼촌이라고 부른다. 마침 출출하던 터라 두석은 망설임 없이 따라 들어갔다. 그때 간이의자에 앉아 있던 허여멀겋게 생긴 양복쟁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양복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개발 기획실장 김상규입니다."

 "고두석이라 하오. 난 농사꾼이라 명함이 없수다."

 두석이, 낯선 양복쟁이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막걸리 한 대접을 들이켜고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이장이 황급히 두석의 두 손을 잡아 주저앉히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개발에서 호텔부지를 물색하던 중 삼촌 땅이 경관이 뛰어나서…, 말하자면 앞으로는 바다가 훤히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산방산 그리고 한라산이 그림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김 실장이 말을 가로챘다.

 "선생님 땅 2천평은 호텔 부지로 넓이가 알맞고 더욱이 4차선 도로에 물려 있으니 주변지가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이장도 알다시피 그 땅이 어떤 땅인데요? 마누라 아니, 내 목숨과도 안 바꿉니다. 괜히 헛수고 말고 딴 데나 알아보슈."

 두석은 이장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풋감을 씹은 듯 입안이 떨떠름했다. 돌아서는 두석의 뒤통수에 대고 이장이 중얼거렸다.

 "아주머니는 파시겠다는데."

 집에 드니 저녁상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에는 회 접시가 놓여 있고 구운 전복이 지글거린다. 아내는 차조로 빚은 오매기 술을 들고 와 두석에게 엉덩이를 들이댄다. 늘 자물통을 달고 다니던 그녀의 입이 헤 벌어져 있고 눈매에는 어색한 애교가 지어진다. 아직도 부아가 안 풀려 씩씩거리는 남편의 심기를 읽지도 못하는 주제에.

 "땅 안 팔아."

 두석은 상을 뒤엎어버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내는 매일 어르고 조르고, 울고 볶으며 밤낮으로 성화를 해댔다. 그럴 때마다 두석은 휑하니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종국에는 육지에 사는 아들, 며느리 그리고 딸, 사위까지 동원됐다.

 "아버지도 낼 모레면 칠십이오. 낚시나 즐기시고 말 타고 다니시며 노후를 편히 지내세요."

 "어머니가 늙은 나이에 남의 집 종살이하는 게 안타깝지도 않으세요? 장터에 국밥집이라도 차려 드립시다."

 그러나 두석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냥 밭으로 나가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일이었다. 아내는 달포나 넘게 입을 자물쇠로 더욱 굳게 잠그고 밤에는 돌아누워 훌쩍였다.

 보리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두석은 잘 영근 보리를 베어 타작하고 공판장에 팔아 넘긴 다음날 쌀쌀하기만 한 아내에게 육지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섰다. 사흘 후 밤늦게 돌아온 두석은 아내를 덥석 끌어안았다. 부부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운우의 정을 나눴다.

 다음날 아침 아내의 머리맡에는 수표뭉치가 놓여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든 아내는 밭으로 내달렸다. 보리가 베어나간 황량한 밭에는 남편도 말도 없었다. 다만 `xx호텔 부지'라고 쓴, 페인트가 마르지 않은 팻말만이 꽂혀 있을 뿐이었다.

 고두석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한라산 산록에 백발의 노인이 탄 말이 신출귀몰하더란 풍문이 제주도에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