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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2009년 1월] 문화 꽁트

世宗과 핸드폰



상제님, 지상을 떠날 무렵인 지금에서야 통신이 터지다니! 아무리 대한민국에 지피에스가 많아 위성통신이 어렵다지만 그동안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이 핸드폰은 애간장이 다 녹는 줄 알았습니다.

 첫 날 아침 여의도 의사당으로 내려보낸다던 문지기 영감이 전송 각도를 살짝 비껴잡을 때부터 시련은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출근 시간인데다 A국회의장에 특별경호까지 붙어 길을 비키던 사거리의 차량들이 서로 뒤엉킬 무렵 두루마기 차림의 세종 어르신과 제가 의전차량 앞으로 불쑥 뛰어들었으니까요.

 사이드카에 탔던 경찰들이 막 달려오고 어르신의 멱살과 목덜미, 양팔이 사정없이 꺾어질 때 아, 못난 저는 주머니에서 튕겨져 나와 바닥을 부딪고 까무러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글쎄 저 혼자 중앙분리대의 풀밭에 팽개쳐져 있지 뭡니까.

 허둥지둥 어르신의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죠. 그러다 제 좁은 소견으로 생각한 게 있었습니다. 세종 어르신이 제 몸의 기억장치를 이용해 이곳의 소리와 모습들을 담아가려 했으니, 저 혼자라도 부지런을 떨어보자. `분별력은 그리 기대할 수 없지만, 7일간의 일정에 따라 국회로부터 구청과 세무서, 검찰청, 경찰서, 법원, 법무법인, 구치소와 헌법재판소를 옮겨 다닐 수야 있지 않느냐, 그러다 그 분을 만날 수도 있고.'

 그런데 상제님, 이번 시찰 중점이 法이라 하셨죠? 저는 익숙한 게 잘 듣는 법, 잘 보는 법, 수다 떠는 법 같은 것이어서, 탄핵, 수도이전, 종부세 같은 말이 법하고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늘에서 듣자니 그 사건들마다 법이 문제가 돼 소란스러움이 자못 심할뿐더러, 특히 요즘엔 절망을 호소하는 백성들이 날로 많아져 조선에서 법치의 기초를 놓은 세종 어르신이 직접 사정을 살피러 오신 거라지요?

 법을 만든다는 국회에 와 보니 제일 시끄러운 곳은 계수조정소위원회란 곳이었어요. 듣자니 십 몇 년간 방청허가 신청이 거부되다가 올해 방청이 허가됐다는군요. 장내에선 “울산 포항 고속도로 예산은 보류하자" "그럼 전주 광양 고속도로도 보류하자" "원안대로 2천억 주세요" "1천5백억 깎고 5백억으로" "그러면 1천억원 감액으로 합시다"며 말이 오가다가 결국 小소위라는 걸 열어 비공개로 심의를 마무리한다나 봐요.

 법사위라던가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전단계인 곳에 두루마기 입은 노인이 힐끗 보여 혹시나 하고 보았지만 그이는 소수파 의원 대표로 “단상 점거" "물리적 충돌 불사"란 말을 즐겨 쓰더군요. 지상에서의 첫 날 늦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보니 여기 국회의원들도 참 잠이 없는지 밤 11시에 다수당만 모여 법안을 통과시키는가 하면, 날밤을 새우고 예산을 표결처리하기도 해, 꿈인지 생시인지 뒤숭숭한 하루였습니다.

 둘째 날은 입력된 대로 B구청과 C세무서를 찾아가 보았어요. 초대형 청사를 짓고 뇌물 수수로 구속돼버린 전임 구청장을 이은 B구청장은 청사 내에 매점 영업허가를 내주고도 시설 사용허가 신청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했지요. 견디다 못한 매점 주인이 소송을 통해 무응답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아내자 기껏 응답을 해준다는 것이 허가를 거부한다였어요. 화가 난 매점 주인이 다시 소송으로 거부를 철회하라며 다투고 법원이 주인의 말을 들어줄 듯 하자 B구청장은 거부의 이유를 처음과 달리 그럴듯한 것으로 바꿔버렸지요. 민원인 숫자가 늘어나 새로운 대기실이 필요해졌다고 말입니다.

 C세무서에서는 이런 얘길 들었죠. 어떤 사람이 현금과 주식을 섞어 출신 대학에 2백10억을 기부했는데, 일 년이 지난 뒤 세무서에서 1백40억을 증여세로 내라 했다더군요. 이유인즉 주식 기부가 세금을 면하려면 100%이어야 하고, 학교에서 회사를 경영하기 어렵다며 10%라도 남겨 놓으면 기부액의 6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법규에 적혀 있다는 겁니다.

 셋째 날의 방문처는 검찰청이었죠. D검사가 후배 검사에게 요령을 일러주는 걸 보았는데, 피의자에게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걸 고지할 때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하지 말고 웅얼거리며 후루룩 말해 버리라는 거였어요. 어쨌든 진술거부권은 고지한 셈이니까요.

 D검사에게 한 변호사가 찾아와 항의하는 걸 보았는데, 피의자가 수사 과정에 변호인의 입회를 요구하고, 변호사도 검사에게 참여를 요구했지만 시간을 오래 끈다는 이유로 변호인의 참여를 허가하지 않아서였어요. 그날 밤 D검사는 후배 검사와 앞뒤 가림 없는 세태를 한탄하며 폭탄주를 들이켰지요. 이 근래엔 무국적의 테러용의자가 법관을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판이라며 혀를 차더군요.

 넷째 날 경찰서에선 E형사에게 불려온 전과자가 울부짖는 걸 보았어요. E형사는 정보원을 잘 관리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요즘 관내에 검거율이 저조하다는 평가가 돌자 전과자에게 절도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현장에서 검거하자는 계획을 세웠대요. 정보원을 시켜 전과자에게 접근한 뒤 절도를 권유하자 재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며 완강하게 거절했지요. 그렇지만 정보원이 집요하게 유혹하자 전과자는 함께 담을 넘었고, 현금을 들고 나오려는 순간 현행범으로 체포됐지요.

 고소감이 안된다며 풀려나는 사람도 보았는데, 건축 현장에서 일하다 중상을 입은 근로자가 F설비업주를 고소한 거였죠. 이 사람은 근로자가 평소 지지대가 허술하다고 말했는데도 보수를 미뤄왔어요. 마침내 지지대가 무너져 근로자가 중상을 입자, 새로운 설비업체를 세워 이전 업체의 사업을 모두 물려받게 한 뒤, 예전 업체는 부도로 처리해 버렸죠. 근로자는 손해배상을 받으려 해도 받을 데가 없어져 버린 겁니다.

 다섯째 날 법원을 가 보니 G판사가 판결을 내리는데 피해자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어요. 법원이 촉탁한 신체감정 결과는 노동능력이 일생 동안 40% 상실됐다는 것이었는데, G판사는 5년간 20% 노동능력이 상실됐다고 판단했죠. 자유심증주의라나요? 변호사가 자의적인 판단이지 않냐고 따지자, “그럼 감정인한테 가서 재판을 받지 그러냐"고 되받더군요.

 여섯째 날 H법무법인에 가니 온갖 법률사건이 백화점의 물품처럼 들어차 있어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전 그 중 간단해 보이는 사건 하나만을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때쯤엔 저도 에너지가 떨어져 초저속 모드로만 활동을 이어나갔죠. 기억에 담은 사연은 어느 부부와 제3자간의 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입원하자 부인은 병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남편의 인감도장을 이용해 남편의 승낙 없이 남편 명의의 부동산을 제3자에게 팔고 이전등기까지 마쳐줬습니다. 그런 뒤 퇴원한 남편이 새삼 그 거래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겁니다. 아무리 부부사이라 해도 등기부에 남편 재산으로 돼 있는데, 인감도장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부인이 정당하게 팔 권리가 있다고 어떻게 믿느냐는 겁니다.

 지상의 마지막 날인 어제는 I구치소에 갔었죠. 면회실 구석에 놓여 온종일 거기서 오가는 이야기를 듣노라니 이 땅에서의 한살이들이 애달프기도 하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사업실패 후 무위도식하며 폭행을 일삼던 남편이 실족해 뇌수술을 받게 되자 아내가 의사에게 퇴원을 강청해 마지못해 퇴원을 허가한 의사들이 살인죄 방조범으로 재판받은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사형수의 범죄였습니다. 그이는 어머니와 함께 외딴 암자에서 주지승의 집안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거기서 쫓겨난 뒤로 원한을 품고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외박을 나오자 늦은 밤 복면을 하고 그 암자를 찾아갔습니다. 주지승을 해치려 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고, 식구들만 남아 있었죠. 그를 알아본 큰딸을 절굿공이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 후 석유곤로에서 퍼온 기름으로 집 둘레를 두른 다음 불을 붙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문밖으로 나오려 몸부림쳤지만 그는 문을 밖에서 걸어잠근 채 그 앞을 지켰답니다.

 오늘 아침 드디어 돌아갈 시간이 다 되도록 저는 세종 어르신을 만나지 못했는데, 조금 전 헌법재판소 안으로 들어가는 남루한 사람이 어르신으로 보여 저는 순간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두루마기는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고,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제비집을 지었으며, 신발 또한 폐품수집통에서 막 건져낸 것 같은 운동화였습니다.

 대기실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세종 어르신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두루마기를 걸친 사람이 국회의장의 차를 막아서서 테러용의자로 국정원의 수사를 받았다고 했죠. 변호사와의 접견을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고, 법관 대면을 청구해도 거부됐을 뿐더러, 대한민국 국적은 물론 어떠한 외국 국적도 없는 무국적자로 본국 송환마저 할 수 없는 이런 사람에게도 법적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지가 법조계의 논란이 됐다고 했습니다. 오늘 재판은 이례적으로 무국적자의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이 신속하게 받아들여져 이뤄진 것으로, 무국적자에게도 법관 대면권이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될 수 있을지 판결이 기대된다더군요.

 떠도는 얘기를 다 들었을 무렵 재판정 저 편에서 세종 어르신이 흐뭇한 얼굴로 걸어 나오시더군요.

 “아직은 희망이 있어. 저 법관이 이걸 건네더라고." 그 분은 제게 쪽지를 내밀었죠.

 〈우대언 鄭淵이 계하기를 “이제 어떤 사람이 御駕 앞에 뛰어 들어온 자가 있사오니, 율에 의하여 絞刑에 처함이 마땅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매우 옳지 않다. 만일 그런 법률이 있는 줄을 알고도 감히 뛰어들었다면 율이 응당 이와 같으려니와, 무지한 사람이 어리둥절해 갈 바를 모르고 뛰어든 자를 역시 이런 율로 죄를 준다면 어찌 옳겠느냐, 다시 율문을 참고해 아뢰라" 하다.〉 - 세종실록 11년(1429년 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