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370호 2009년 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10년 안에 50여 자회사 설립해 1조 매출 기대



 - 서울대는 어떤 계기로 오셨어요. 한창나이니깐 돈 많이 주는 기업도 많았을 텐데.
 “사기업에서는 그만 일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1월 현대상선을 그만뒀는데, 1년 정도 쉬고 퍼블릭서비스 분야에서 기여할 기회가 생기면 가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지난해 3월 중순 서울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하루 고민하고 결정 내렸습니다."

 - 공채에 응모한 것은 아니었네요.
 “그렇죠. 추천 경위는 저도 잘 몰라요."

 - 교수직을 겸임하는 건가요.
 “처음 여기에 올 때 총장님께서 교수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가려면 교수직이 있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별로 관심을 안 뒀어요. 지난해 10월 회사가 출범할 때 다시 한 번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직원들은 얼마나 되나요.
 “12명입니다. 그 중 네 분은 모교 산학협력단에서 일을 하던 분들이고요."

 - 기술지주회사란 용어가 생소합니다. 어떤 회사고 설립배경 등을 설명해 주시죠.
 “기술지주회사는 법적으로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지주회사가 있는데, 우리는 순수지주회사입니다. 자회사를 통해서만 영리활동을 할 수 있는 회사죠. 지난해 2월 개정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대학에서도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어요. 주식회사 형태고 전문가를 초빙해 산학협력, 특히 기술의 사업화를 전담합니다. 쉽게 말해 교수들의 연구성과를 수익사업에 활용하는 기업이죠."

 - 재원은 어떻게 마련됐나요.
 “산학협력단에서 자본금 69억4천3백만원(기술현물 39억4천3백만원, 현금 30억원)을 출자했어요. 매년 5~6개의 자회사를 세우기 위해서는 최소 자본을 투입한다고 해도 경비를 포함해 15억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더욱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은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은 투자만 이뤄져 초반 단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가느냐가 큰 문제죠."

 - 정부에서 특별한 지원은 없습니까.
 “정부에서 좋은 의도로 만들었지만, 현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처음 도입한 거라 걸림돌이 많아요. 순수지주회사의 업무영역이 엄격히 제한돼 있어 경비를 보존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게 큰 문제입니다."

 - 칭화대 등 해외 대학의 성공사례가 있는데요.
 “칭화대 기술지주회사의 경우 정부에서 2천억원 이상의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정부에서 적극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유니서비스란 회사는 역사가 오래돼 대학 기부금 등으로 조성된 자금이 꽤 있었고요. 우리는 대학 기금도 적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 2017년까지 50개 자회사를 만들어 총 1조 규모의 매출을 기대한다고 들었는데,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그동안 학생과 교수들이 창업한 회사가 상당히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크로젠과 SNU프리시젼인데, 이 둘의 경우 시가총액이 상당한 규모예요.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입니다."

 - 올해도 몇 개의 자회사를 설립해야 할텐데, 가시화 된 게 있나요.
 “1월말에 출범예정인 회사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약대 교수님들의 기술을 활용해 국내제약회사의 외주회사(CRO : Contract Research Outsourcing)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기계 사출 관련 회사인데, 중소기업과 모교 교수들의 기술을 결합해 출범시킬 계획입니다."

 - 위에서 말씀하신 프리시젼, 마크로젠 등을 편입시키는 방안은 생각해 보셨나요.
 “그 두 회사는 이미 성공한 회사로 규모가 워낙 커서 편입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바이로메드나 출범단계에 있는 회사의 경우는 사업성 여부를 검토해서 편입여부를 고려하려고요."

 - 벤처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까.
 “자신 있습니다. 서울대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어디서 하겠습니까. 지적재산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곳이 서울대잖아요. 10여 년 전에 벤처붐이 일고 금방 꺼졌던 이유가 경영을 전문가가 안 했기 때문이에요. 기술만 가지고는 사업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술만 가지고 경영에 뛰어 들었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졌고 또 하나는 개발자가 경영에 뛰어 들다 보니 계속 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키지 못한 게 실패의 요인이었죠. 오랫동안 기업에서 경영자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학교에 돈을 많이 벌어드리고자 합니다."

 - 오랫동안 현대에 계신 것으로 아는데 얼마나 계셨죠.
 “31년 근무했습니다."

 - 현대에서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도 맡으시는 등 요직을 거치셨어요. 당시 성과, 자랑거리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현대에서 오랜 시간을 구조조정본부에서 보냈죠. 鄭周永명예회장을 서포트하는 일이었어요. 현대전자 등 여러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지만 구조조정 업무를 총괄하면서 일부 회사를 정리하는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보람된 일은 5년 반 동안 현대상선에 있으면서 세계적인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일입니다. 부임했을 때만 해도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하나도 없었고 존립자체가 상당히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나올 때는 예금 1조원 이상 되는 회사로 탈바꿈했습니다. 직원들이 일치단결해서 얻은 결과죠. 운도 따랐고요."

 - 해운회사 가운데 현대상선은 어느 정도 규모인가요.
 “외형으로 보면 한진해운이 조금 큽니다만, 시가총액은 한진의 3배 정도 됩니다."

 - 현대상선 계실 때 감성경영으로 유명하신데, 여기 와서도 직원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눕니까.
 “예. 특별한 일 없으면 점심을 전체가 같이 모여서 먹습니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저녁을 같이 하면서 스스럼없이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어려운 회사일수록 구성원간에 신뢰가 깨진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상선에서 `호프day'도 열고 편지도 쓴 건 감성경영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직원들간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함이었죠.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한 마음이 됐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학창시절 겨울방학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1~2학년 때는 영등포 문래동에서 야학을 했어요. 3~4학년 때는 과대표를 맡았는데 데모가 많던 시절이라 특별히 한 게 기억이 없네요."

 - 그 때와 비교해 지금 관악캠퍼스는 어떤 것 같아요.
 “상전벽해입니다. 마지막 4학년을 관악캠퍼스에서 보냈는데, 그때는 허허벌판이었죠. 지금은 더 이상 건물 지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발전을 했어요. 학생들 분위기도 훨씬 밝아졌고요."

 - 하숙을 하셨나요.
 “고등학교 때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고등학교를 다녔죠. 부모님이 삼청동에 집을 구해주셔서 동생들이랑 함께 있었어요. 2남5녀의 장남입니다."

 - 친한 분들이 누구죠.
 “현직으로 알려진 분들 중에는 KB금융지주회사 黃永基(무역71~75)회장, 종근당 李章漢(AMP 37기)회장, 朴晙雨(법학72~76)주 벨기에?EU대사 등과 친해요."

 - 50대 중반에 들어섰는데, 우리나라에서 50대는 어떤 세대인가요.
 “낀 세대죠. 저보다 7~8년 선배들이 우리 사회 팽창기에 기업 활동을 열심히 한 분들이라 승진이 굉장히 빨랐고 그 자리에 오래 계셨어요.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세대에서는 사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상당히 적어요. 그런 상황에서 아래 세대가 치고 올라오니 어려운 점이 많았죠. 지금도 어디 모임에 가면 말석인 경우가 많습니다. 선배들 모시는 정신이 있어서 총무 직책을 맡은 친구들이 많아요. 아직은 대접을 못 받고 여전히 선배들을 모셔야 하는 낀 세대입니다."

 -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로 우리나라도 어려운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동문들에게 덕담 한 마디 해 주시죠.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있다면 위기가 기회였던 점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어요. 李長茂총장님이 오셔서 발전기금 모금운동도 활성화되고 있고 `비전 2025'를 세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기술지주회사도 장기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이날 인터뷰는 점심식사로 이어지면서 활기를 띄었다. 盧政翼사장은 백세주 한 병을 주문했다.

 - 건강해 보이세요. 저는 술 문화는 좋은데 술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불혹의 나이가 지났는데 혹을 겁내는 건….(웃음) 저도 무작정 많이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술을 빨리 마십니다. 술자리에서 2시간 이상을 안 끌어요. 평생을 오전 7시 전에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술자리에 가면 2차는 거의 가지 않아요. 노래방도 잘 안 가고요. 술 마시고 노래방 가면 서로 어울려 노는 문화가 아니라 어떤 사람은 죽어라 노래만 부르고 어떤 사람은 열심히 떠들고 있고. 마음에 안 들어요. 함께 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다들 제 각각이니 갈 마음이 안 생기죠.
 기술지주회사 와서 직원들과 어쩔 수 없이 노래방을 가야 했는데, 보이지 않게 통제를 했어요. 연달아 노래를 부르려는 직원에겐 쉬라고 은근히 압박하고 다 같이 들어 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죠. 젊은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나이든 분들, 특히 계급장 못 뗀 사람들이 마이크 독점이 심해요.”

 - 특기가 색소폰ㆍ단소 연주라고 들었어요.
 “2001년에 회사를 1년 정도 쉰 적이 있어요. 그 때 문화센터에서 그림, 단소를 배웠습니다. 색소폰은 당시 친했던 모 신문사 사장님이 계셨는데 그 분 따라 배우게 됐고요. 친구들 모임에 가면 같이 분위기 띄울 정도의 수준은 됩니다. 동양화 사군자를 배웠는데 200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선까지 했어요. 그림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아호도 만들어 주셨어요. `華溪'라고 `맑은 물'이란 의미입니다. 사주에 水가 많은데 그것까지 생각하고 지어주셨어요. 호가 있으니깐 친구들끼리 술잔을 주고받을 때 참 좋습니다. 퇴직 때 명함이 평생을 가잖아요. 부장으로 퇴직한 친구들은 영원히 부장이 되다 보니, 부르기가 뭐해요. 호를 부르기로 한 다음부터는 그런 어색함이 사라졌죠."

 - 2001년이면 한창 때인데 왜 쉬셨어요.
 “그때는 쉬고만 싶었어요. 회사 분위기가 좀 어수선한 면도 있었고요. 평생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갔어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1년 푹 쉬었죠. 그러면서 배운 게 참 많아요. 사실 40년 이상을 삼청동에서 살면서 동네에 누가 사는지 몰랐어요. 어느 날 동네 골목을 걸어가는데 어떤 분이 새벽 모임에 나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를 아마 아셨던 모양이에요. `꽃물주기 모임'이었는데, 삼청동 오시면 아시겠지만 길가에 화분이 참 많습니다.
 새벽 6시에 만나 꽃에 물주고 생태집에 가서 밥 한 그릇 먹고 헤어지더라고요.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끼리 동네에 사는 독거 노인도 돌보고요. 벌써 7년 됐어요. 그 모임에 참석하면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을 모르고 산다. 지역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에 참여하는 분들도 다 생업에 바쁜 분들인데 참 열심히 봉사활동 합니다. 요즘 가장 즐거운 모임이 동네 분들과 술 먹는 모임이에요. 여름에는 구멍가게 앞에 좌판을 벌이고 삼삼오오 모여 고기도 굽고 막걸리도 한 잔 마실 때가 많아요. 집에 가다 말고 소주박스 위에 앉아 같이 하는 거죠. 어떤 분들은 순대 들고 오고 어떤 분들은 고기 들고 오고.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 동네가 좋네요.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꿈꿀 수 없는 풍경입니다.
 “그렇죠. 아파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옆집에 법무사 한 분이 계신데, 저보다 10살 정도 위예요.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다 사무실, 차 기사를 정리하고 대중교통 이용해 다른 법무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계신 분이에요. 곱게, 멋있게 늙으려면 계급장부터 떼야 한다고 늘 말씀하세요. 장관, 사장하다 나온 동기, 선배들은 그걸 못해요. 쭈빗쭈빗 하고, 또 어떻게 노는 지도 모르고. 왔다 갔다 할 줄만 알았지 세상물정은 몰라요. 대화주제도 얼마나 빈곤한지 부동산, 주식 뭐 그런 게 전부예요. 돈도 있을 만큼 있는 분들이 돈, 돈 해요. 동네 분들과 술자리를 하다 보면 인생에 대한 모든 주제가 올라오거든요. 아까 위기는 기회란 말을 했잖아요. 현대에서 나왔을 때 인생에 대해 배웠으니 일찍 배운 셈이죠."

 - 나중에 기술지주회사 잘 키워놓고 삼청동장 하면 좋겠어요.
 “하라고 하면 할 용의가 있어요. 봉사하려고 구의원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월급제가 되면서 희망자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안되겠고. 이 동네에 애정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얼마 전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밤이었는데 동네 분이 문을 두들겨서 나가 봤더니, 盧사장 아들이 저기 골목에서 어느 아가씨와 키스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거예요.(웃음) 동네 분들이 그렇게 가까워요. 상추도 나눠 먹고, 팥죽 쒔다고 같이 먹자고 하고."

 -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동문이 있나요.
 “아내와 아들, 딸 있어요. 딸아이가 모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어요. 노경희(05졸)입니다. 얼마 전에 동네 분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어요."

 - 현대 다니시면서 돈은 많이 벌어 놓으셨나요.
 “봉급쟁이가 다 그렇겠지만, 사장을 지냈으니 조금 나은 편이죠. 욕심을 안 부리면 사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 자격증도 몇 개 갖고 있다고 들었어요.
 “공인회계사, 증권분석사, 선물거래중개사를 취득했어요. 공인회계사는 88년에 땄는데, 당시 회사 다니면서 취득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몇 십 명 안 뽑을 때인데, 나이도 가장 많았다고 해요. 실력에 비해서 시험을 잘 봐요. 고3때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재수를 하기도 했지만요."

 - 노후 계획은 세우셨나요.
 “얼마 전 로타리클럽 모임에서 어느 신문의 칼럼니스트로부터 `멋지게 늙는 법'이란 강의를 들었어요. 그 분 말씀이 자기 나이에 0.7을 곱한 나이대로 살라고 하더군요. 60이면 40처럼 살라는 거죠. 요즘 평균 수명대로만 살아도 80 이상을 사는데 예전처럼 생각하고 살면 큰 손해예요.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시어머니가 어느 날 불러서 내가 몇 년을 살 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그랬는데, 그러고서 30년을 계속 그러고 사신다는 거죠.(웃음) 그 시어머니가 그러시더라 해요.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다면 바퀴벌레라도 연구해 전문가가 될 걸.'
 옛날에는 환갑 지나면 언제 죽을 지 몰랐으니깐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 또래 중에도 무얼 하면서 지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오전 10시쯤 헬스클럽으로 간 다음 하루종일 그곳에서 운동하고 시간 되면 저녁 먹고 그게 일상인 경우가 많죠. 문화에 대해 훈련받은 게 없어서 그렇죠. 주변에 문화센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서 강의 등록하고 여러 가지 배웠으면 좋겠어요. 저도 배우다 만 단소를 더 익힐 생각이에요. 시간이 되면 다시 그림도 그리고요.”

 - 마지막으로 더 하실 말씀이라면.
 “우리가 가진 사람에 속한 반면 분명한 역할 모델이 돼주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선배, 리더가 되지 못했죠. 말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쳤지 실천이 따르지 못했어요. 사실 봉사는 없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해요. 봉사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하는데 모두 핑계입니다. 뭐 한 다음에 봉사하겠다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보다 10년 이상 윗 세대 분들 중에 회장, 사장으로 퇴직하신 분들은 재산도 꽤 있으실 거예요. 물질로든 경험으로든 행복한 사회를 위해 지금 당장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李五峰논설위원ㆍ정리=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