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호 2009년 1월] 뉴스 본회소식
`모교 개교 원년 찾기' 지상토론
먼저 정신적 뿌리 찾기가 되기를

서울대학교의 개교 원년 또는 서울대의 역사, 서울대의 법통에 대한 몇 분의 논의를 읽은 바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러한 논의에 한 자리 끼어들어서 새로운 주장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다. 가볍게 부탁을 받고 생각해보니, 이러한 논의는 신중하게 여러 가지 자료를 검토하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야 할 문제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의 생각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학문을 하다 보면 자신이 전공하는 학문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인문학의 여러 분과들 역시 근대적인 체제로 들어서면서 발전한 것이니, 대개는 일제 강점기의 경성제국 대학에 뿌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의 성과를 계승해서 오늘날 이렇게 발전된 흐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의 강점에 의한 제도 속에서 그러한 학문이 영위되었을 때 제도적 차원에서 학문적 법통을 운위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 놓인다. 왜냐하면 경성제국대학의 어떤 분과들을 우리의 법통에 놓는다는 것은 바로 그 제도를 설립하고 경영한 제국 자체를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제국의 후손 중의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식민지 경영으로 뒤쳐진 우리를 발전시켜 주었다고 강변하지 않는가?
어떻게 보면 식민지 시대 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학문분과의 성격과 내용에 대해 우리들은 아직 심각하게 그 의도와 문제점들을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다. 계승의 측면에만 골몰하게 되면 그러한 문제점들을 파헤치는데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을까 하는 의중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경영에 유리한 방향을 택했을 것이다.
따라서 법통찾기나 `개교 원년' 찾기는 제도적 측면과 그 제도를 설립하고 경영한 정신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온 몇 분의 논의 중에 서울대 전신을 1895년 고종 칙령으로 설립된 `법관양성소'로 하자는 의견과 고구려의 `太學'으로 하자는 의견 등이 있다.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모두를 설득하려면 각기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법관양성소'를 최초로 할 수 있으려면 그 기관이 점차 확장되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끌어모은 중심적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과연 그랬는가 하는 부분에서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고구려의 `태학'을 법통으로 삼는다면 서울대의 역사가 1천6백년 이상이 되니 좋기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신라와 백제의 교육기관이 아니라 왜 꼭 고구려의 교육기관이 법통이 돼야만 하는가에 대해 확실한 논리를 세울 수 없다.
법통은 그 법을 만든 정신이 무엇인가를 따질 때 그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서울대학교 법통을 따지기 이전에 서울대학교의 이념과 정신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 인문학자로서 나는 우리의 교육이념이 지식과 법과 제도를 익히고 응용하는 학생들을 만드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새로운 것들을 창출할 수 있는 인재들을 키우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창조적 측면을 키워주기 위해 정신적 훈련을 시켰던 참된 교육제도는 역사상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교육기관들은 그 어떤 것이든 서울대학교의 법통 속에 끌어넣을 필요가 있다.
제도만의 연속성을 따져 기원을 찾는 문제는 몇몇 분과끼리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고, 그 자체가 연속성의 논리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없어 미궁에 빠지기 쉽다. 나는 좀더 다양한 논의들이 나와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으로 이 `개교 원년' 찾기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기를 바란다.
▷지난해 9월호부터 모교 개교 원년 찾기와 관련해서 모교 법학부 曺 國교수, 교육학과 韓基彦명예교수, 李相赫변호사, 대한민국 헌정회 朴衡圭이사 등의 기고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모교 국어국문학과 申範淳교수의 옥고를 싣습니다. 이 밖에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고견과 기고를 기다립니다.

